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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 [문예정원] 풍경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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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정목일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18-09-28 09:07 조회1,36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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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목일  / 캐나다 한국문협 고문

 

고성 옥천사에 와서 풍경 소리를 듣는다. 

흐르는 바람결에 뿌려지는 그 소리를 듣고 있으면 

시름 같은 건 어느새 사라지고 만다. 

 

풍경은 사찰의 귀걸이―. 

마음의 귀가 하도 밝아 하늘의 소리다 

듣고서 '그래, 알았다'고 대답하는 소리―. 

'댕그랑― 댕그랑―' 오랜 명상으로 길들여진 여유 속에 

넘침도 모자람도 없이 낭랑이 울리고 있다. 

몇 백 년 묵은 고요의 한 끝에 달려 있다가 내는 소리일 듯싶다. 

 

유현(幽顯)한 그 음향은 그 자체만의 소리가 아니다. 

풍경과 산의 명상이 만나서, 

풍경과 바람이 한 순간에 만나서 내는 소리―. 

이럴 때 대웅전의 부처는 한 번씩 미소를 지을지도 모른다. 

한밤중에도 기와지붕 외곽에 달려 있는 풍경만은 잠을 깨어 

홀로 '댕그랑― 댕그랑―' 소리 파문을 던지고 있다. 

부드러운 바람이 풍경의 붕어를 살랑살랑 흔들어본다. 

 

풍경소리를 들으면 평온해진다. 

달빛 속으로 풍경소리가 닿을 때…… 

풀벌레 소리와 풍경 소리가 만날 때…… 

내 마음속에도 '댕그랑― 댕그랑―' 소리가 난다. 

그냥 움트는 연 초록 산색(山色) 속으로 풍경 소리가 흘러갈 때…… 

추녀 외곽으로 떠 흘러가는 구름을 배웅할 때…… 

진초록 속으로 풍경 소리가 젖어갈 때…… 

단풍 빛깔의 산색 속에 풍경 소리가 불탈 때…… 

그때마다 내는 음색은 저들 마음 편이다. 

들릴 듯 말 듯 찰나를 흔들지만 영원의 소리이다. 

 

기와지붕 단청(丹靑)의 연꽃 향기를 깨워 바람에 날리고 있다. 

이 때문에 하늘도 더 깊어지고 향기로워지는 것 같다. 

산도 눈감고 절도 눈감은 밤에도 

홀로 깨어 마음의 문을 열어놓고 있다. 

고요의 한 음절일까. 

언제나 미소 짓고 있는 부처의 깨달음 

한 음절을 무심결에 들려준다. 

 

수만 광년을 지나 내려온 별빛이 풍경 안 붕어 비늘을 비출 적에, 

어찌 소리 한번 내지 않을 수 있을까. 

'댕그랑― 댕그랑―' 아무도 모르게 빛과 소리가 만나고 있다. 

'댕그랑― 댕그랑―' 매달려 있지만 세월의 강물을 타고 

영원 속에 붕어가 헤엄치고 있다. 

 

그리운 이여, 우리 인생도 

저 풍경 소리처럼 들릴 듯 말 듯 흐르고 있는가. 

그리움도 매양 풍경 소리로 울릴 수 있다면 좋으련만……. 

한 점 바람, 흘러가는 구름, 

다시는 만날 수 없는 물결로 흐른다. 

풍경 소리를 들으면 온유해지고 부드러워진다. 

 

삶의 풍파에 팔랑개비처럼 바삐 돌기만 했을 뿐, 

풍경처럼 낭랑한 소리를 한 번도 내지 못했다. 

듣고 보니 소리의 자비였구나. 

하늘에 올리는 소리의 공양이었구나. 

'걱정 말아라'고 달래 주는 위로의 속삭임이었구나. 

무심(無心)중에도 무심 같은 한 점의 바람인 줄 알았더니, 

용서와 관용의 미소, 깨달음의 득음(得音)이었다. 

 

'댕그랑― 댕그랑―' 우리 인생도 

꽃향기와 같은 의미여야만 한다는 것을 알려준다. 

나도 풍경처럼 한 번쯤 하늘을 향해 

'댕그랑― 댕그랑―' 울어 보고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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