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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 [바다건너 글동네] 가을걷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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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조정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18-10-11 14:07 조회10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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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정(한국문협 캐나다 밴쿠버지부)

 

 

 마른 포플러 잎새들이 사선을 그리며 땅으로 내려앉는다. 어느새 메이플 나무에 붉은빛이 돌고, 소슬바람을 타는 억새들은 낮게 몸을 낮춘다. 9월로 접어든 늦은 오후, 콜로니 커뮤니티 팜에서 남편과 당근을 캐고 있을 때, 옆 밭의 짐이 다가와 어제 곰이 나타났었다고 전한다. 작년 이맘때, 곰이 짐네 포도나무를 쓰러뜨린 일을 떠올린 나는, 서둘러 텃밭 그늘막으로 서 있는 포도나무에서 포도를 따기 시작한다. 바삐 손을 움직이니 어느새 포도가 바구니에 가득하다. 알이 작고 씨가 없는 포도는 잼을 만들기에 적당해 보인다. 해가 지기 전 포도, 당근, 토마토, 근대, 깻잎을 큰 바구니에 담고, 텃밭에 한창인 다알리아와 코스모스도 몇 가지 꺾는다. 조바심을 내며 주차장으로 향하는 나와는 달리, 남편은 오늘 거둔 수확물을 느긋하게 카메라에 담는다.

 

 

 가을걷이 후 부엌 일은 어수선한 가운데 분주함의 연속이다. 잼, 피클, 김치, 장아찌를 만드느라 종종대며 부엌을 떠나지 못한다. 한편으론 올가을 심을 마늘씨 준비와 채취한 씨앗들을 잘 말리고, 감자 캔 자리에 무, 배추, 당근, 비트 씨를 파종한다. 가을비가 내리는 날, 규모가 큰 Nursery를 방문해 내년에 심을 작물에 대한 정보를 얻고, 씨앗을 구매한다. 때론 이 훌륭한 학습 체험장에서 고향의 감나무와 대추나무 등, 희귀한 수종을 보는 기쁨을 덤으로 얻기도 한다. 가끔 도서관에서 텃밭 농사에 관련된 책을 빌려 보는 일도 텃밭 농사의 지평을 넓히는 일이다. 최근 빌려온 책 <Down to Earth>는 사계절의 작물 심는 시기, 퇴비 만드는 법, 토양을 비옥하게 하는 법, 조리법 그리고 농부들의 유익한 경험담 등이 실려있다.

 

 

 흙에서의 노동은 삶을 풍요롭게 한다. 오이를 심으면 오이를 얻고 콩을 심으면 콩을 얻는 종과득과 종두득두(種瓜得瓜 種豆得豆)라는 인과(因果)의 법칙대로, 가을은 한여름의 수고가 보상을 받는 계절이다. 맨땅에 씨를 뿌리고 땀 흘려 작물을 키우는 일은 도시 생활의 소비 굴레에서 벗어나, 스스로 먹을거리를 생산하는 보람이 있다. 흙, 햇빛, 바람, 벌, 나비---, 충만한 대지의 기운을 받으며 텃밭에서 자연과 교감하는 일 또한 삶에 온기를 불어넣는다. 순간에 충실하며 생각을 비울 때, 주변의 모든 사물이 친구가 되어 내 마음에 들어온다. 텃밭 농사가 노동이 아닌 몸과 마음을 치유하는 정서적 효과가 있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요즘 나는 수확한 작물을 서로 나누는 이웃들을 만나며, 도시 생활의 긴장된 인간관계가 이완되는 경험을 한다. 감자, 당근, 근대, 깻잎, 오이, 호박, 토마토 등을 들고 이웃 텃밭을 오가는 인심은 달밤에 핀 박꽃처럼 환하고 향기롭다. 

 

 가을 들판에서 나는 장 프랑스와 밀레의 ‘만종' 속 한 사람이 되어, 경건한 마음으로 다짐한다.

 

‘계획하고 희망한 대로 씨앗이 싹 트지 않을지라도, 다시 씨를 뿌리고 정성껏 물을 줄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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