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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 [문학가 산책] 허수아비가 침묵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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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정숙인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18-11-08 13:58 조회1,48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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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숙인 / 캐나다한인문학가협회회원

 

 

 

가을걷이가 끝난 들녘에 홀로 서있는 허수아비가 있습니다

 

헐벗고 비쩍 마른 모습으로

 

이제는 새들을 쫓는 짓 따위는 하지 않아도 되는

 

철 지난 황량한 들판의 허수아비 말입니다

 

나는 혼신의 힘을 다해 새들을 쫓았습니다

 

알곡 한 톨을 지키기 위해 뜨거운 여름을 견디었습니다

 

타는 목마름, 그보다 더한 고독으로 몸부림쳤습니다

 

퀭한 두 눈의 허수아비는 그렇게 침묵으로 두 팔을 벌리고 있습니다

 

찢어진 누더기만 바람에 팔랑거릴 뿐

 

어느 새 한 마리, 어느 사람조차도 곁에 얼씬거리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수 많은 양의 곡식에 즐거워할 뿐

 

그것을 지켜준 허수아비에게는 고마워하지 않았습니다

 

허수아비는 그저 허수아비일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세상은 단지 허수아비는 허수아비대로 살아가라는 것입니다

 

허수아비는 사람들이 말하는 허수아비처럼 살아야한다고 믿어버리고

 

정말로 허수아비가 되어 삽니다

 

어차피 따스함도 온정도 세상의 등불도 가질 수 없는 허수아비입니다

 

그래서 허수아비는 침묵합니다

 

고요히 부끄럼없는 하늘 아래서 두 팔을 벌리고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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