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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 [바나건너 글동네] 동트는 공원의 하르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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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박병호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19-01-03 14:24 조회1,21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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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병호(한국문협 캐나다 밴쿠버지부)  

 

해가 떨어지면 천하 명당 워터프런트 공원도 암흑 공간이 된다. 오늘 오후는 밴쿠버 항 북쪽에선 비가 내리는데 남쪽은 구름 사이로 햇빛이 쏟아져 들어왔다. 공원 나무들은 기대지 않고도 하늘을 찌르듯 서 있었고, 검은 머리 검은 목의 캐나다 거위들은 가족 단위로 단일 대오를 이뤄 푸른 잔디에 코 박고 뒤지며 걸었다. 날아가지도 정착하지도 못하는 새들은 드높이 울음소리를 내며 바다 위 가장 높은 곳에서 태양을 서쪽으로 이끌었다.

 

어떤 사람들은 혼자서 걷고 어떤 사람들은 짝지어 빠른 걸음으로 걸었다. 반백의 머리지만 은퇴 적령기에 이르지는 못해 보이는 ‘남자’가 공원 벤치에 허리를 대고 비스듬히 서서 하늘을 나는 새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바로 옆에는 ‘대한 그룹’이라는 명찰을 발등에 붙이고 얼굴에 작은 공기구멍이 숭숭 난 하르방이 후덕하게 서 있었다. 벤치에는 낡은 국방색 외투를 입은 크지 않은 체격의 ‘영감’이 그 남자와 하르방을 번갈아 보며 앉아 있었다. 

 

낙엽 하나가 곧 겨울이 온다는 소식을 알리며 영감의 무릎에 떨어졌다. “한국에서는 이런 날을 우직한 호랑이와 불여우가 결혼하는 날이라고 하지요.” ‘남자’가 말을 걸었다. “벤치는 앉으라고 있는 거요.” ‘영감’이 어눌하지만, 꽤 유창한 한국어로 응했다. “그렇지만 사람이 기대지 않고 살 수 있나요?” ‘남자’가 웃으며 말했다. “나는 한눈에 알아봤지. 저 돌할방과 당신이 같은 나라에서 왔다는 것을. 저 할방은 제주 아일랜드에서 이곳으로 온 지가 수십 년은 되었는데, 자네는 어디서 언제 왔는가?” 

 

“저는 지리산에서 태어나 서울에 살며 어제 밴쿠버에 왔습니다.” “내가 한국에서 살았던 게 매우 오래전이긴 하지만 산은 도시 이름도 마을 이름도 아니라는 것쯤은 알고 있네.” “두 중요한 도의 경계에 있는 넓은 산입니다.” “그 산속 중간에서 자네 부모가 불륜을 저질러 자네를 낳기라도 했다는 건가?” “아니요, 저는 지리산자락 남원에서 낮에 긴 혼례 절차를 거친 후 짧은 밤에 작업에 들어간 부모로부터 태어났습니다.” 

 

“오, 그곳이 정절의 도시라는 것을 알지. 왜 춘향골이라고 하지 않고?” “라도 사람으로 착각할까 봐요.” “그럼 그곳이 상도 땅이라는 건가?” “저를 기준으로 하면 라도 사람이긴 하지만 할아버지의 할아버지를 기준으로 하면 상도 사람이라서 자신을 ‘지리산 사람’이라고 부릅니다.” “나는 한국에서 11년 넘게 살면서 사방을 안 가본 곳이 없네, 하지만 앨버타와 비시주처럼 두 지역을 가르는 실제의 모습들을 본 적이 없었네.” 

 

“문화적 차이는요?” “정치와 선거에 무관해서 못 느꼈는지 모르지만, 일본이 자국 가까운 쪽에 투자해서 동남쪽이 먼저 산업화되었지만 음식은 남서쪽이 오히려 발달되어 있다는 감을 받았지. 문화는 음식이 최고야.” “회사 학생들 관계는요?” “사랑이 아닌 것으로 관계가 틀어진 적이 없었네, 1970년대 고속 성장기라 누구에게나 관대한 시기이기도 했지만.” “그런데, 왜 돌아오셨어요?” “한 여자를 사랑하지 않았더라면 그런 일은 없었을거야.” “한국 여자분이 결혼해서 한국을 떠나자고 했다는 건가요?”

 

갑자기 시간에 쫓기는 듯 ‘영감’이 태도를 바꾸어 영어로 말하기 시작했다. 빠른 속도였다. 요약하면, 이 영감과 ‘여자’는 스승과 제자로 만났고 띠동갑의 나이 차가 있었지만, 마음속에 사랑이 불타올라 있었다. 당시 한국에 ‘남녀칠세부동석문화’가 남아 있었고, 그들은 통행 금지 한번 어겨본 적이 없었다. 함께 밥 먹고 조용한 찻집으로 옮겨 대화하고 더 시간 나면 극장에 가거나, 남산길, 경농 철학자의 길, 신촌 철길 등을 손잡고 걷고, 여자의 집에까지 바래다주고 오는 것이 데이트의 전부였다. 결혼할 거라고 확신했기 때문에 미신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돌면 헤어진다는 덕수궁 돌담길마저도 손을 꼭 잡고, 사람 안 볼 때는 팔짱을 끼기도 하며 몇 바퀴씩을 돌았다.

 

욕정은 날로 자라나 스스로 몸의 울타리를 만들어 옭아매 왔지만, 결코 무너지지 않았다. 통금 위반이나 경범죄가 두려워서가 아니었다. 순결을 유지해야 한다는 ‘여자’의 생각과 한국의 문화를 존중했기 때문이었다. 대신 결혼을 빨리하고 싶어 집안 어른들과의 상견례를 잡았다. 그러나 ‘여자’의 할아버지가 완고했다. 한 나라인 상도와 라도 사람끼리도 꺼리는데, 말도 풍습도 전혀 낯선 사람들끼리 만나 잘 살기는 하늘의 별 따기라는 것이었다. 국제결혼으로 잘 사는 사람들도 많다는 설득은 통하지 않았다. ‘여자’의 아빠는 딸을 믿고 존중해서 응원군이 되었지만, 할아버지의 굳은 뇌를 이완시키기시지는 못했다. ‘영감’이 결혼 후도 한국에 살면서 한국 문화를 더 배우고 익혀 ‘여자’를 행복하게 해 줄 거라고 해도 무조건적 확증에 편향된 늙은이를 바꿀 수 없었다. 

 

하는 수 없이 그냥 ‘여자’의 할아버지가 돌아가실 때까지 “우리 결혼하지 않고 데이트나 하며 살자,”고 했다. 오히려 만남의 횟수는 많아지고 주말에는 근교 여행까지 하게 되었다. 그래도 여전히 욕정은 손과 손에서만 맴돌았다. 그런데 갑자기 고약한 헛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둘이 밤이면 밤마다 호텔로 들어가는 모습을 보았다, 불러오는 배를 감추기 위해 복대를 메고 다녔다, ‘여자’가 화장실에서 사내아이를 낳아 해외 입양시켰다.’는 소문이었다. 말도 안 되는 거라 초기에는 별 대응을 하지 않았다. ‘사람들은 진실보다 거짓에 환호한다. 인간의 뇌는 단순 반복에 약하다.’ 눈사람 굴리듯 빠르게 소문이 확대 재생산되자 회사 측에서 요청을 해왔다. 거짓이지만 소문의 주인공이 사과하면 세상의 입들이 다물어지는 것이 한국인의 정서라고 ‘영감’을 설득했다. 

 

‘영감’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잘못한 게 없는데 사과하라는 말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자기 고향에서는 잘못하지 않았어도 여론을 잠재우기 위해 사과하면 자기 죄를 인정하는 자백이 되었다. 오히려 자신에 대한 거짓 증거가 되었다. 그러나 ‘여자’가 압력에 못이겨 사내방송을 통해 일을 벌이고 말았다. “물의를 일으켜 죄송합니다. 앞으로 자중하겠습니다.” ‘영감’은 어찌할 줄을 몰랐다. ‘여자’가 한번 자기에게 언질은 주었지만, 자신의 동의도 없이 둘의 문제를 혼자 사과한 것에 대해 이해할 수 없었다. 불신이 자라면 다른 불신을 낳는다. ‘혹시 저 여자가 나 외에 다른 서양인과 정을 통하고 있었나?’ 

 

‘여자’의 사과에도 불구하고 둘의 불륜에 관한 소문은 계속 꼬리에 꼬리를 달았다. 지사와 거래처에까지 퍼져나갔다. 결국 ‘여자’가 또 한번 흔들렸다. 회사를 그만두겠다는 것이었다. ‘영감’이 설득했다. “악과 손잡으면 거짓 소문을 인정하는 셈이 되는 거라고, 악에는 악으로 대항해야 이긴다고, 악은 선을 먹고 자란다고…” 험난한 시절이지만 둘의 사랑은 식지 않았다. ‘영감’은 소문의 근원 자를 찾아 나섰다. 지금 돌이켜 보면 차라리 그때 그런 소문을 핑계로 할아버지를 설득시켜 결혼으로 골인했더라면 좋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는 이런 발상조차 못 했다. 혼이 나가 있었다. 아마도 역이용 시도하다 되치기 당했을지도 몰랐다. 

 

당시 결혼하지 않은 여자가 임신하거나 애를 낳는 것은 가문의 수치였고 그런 인물의 결혼식에 참석할 사람은 없었다. ‘영감’은 당시 둘의 사랑이 깨졌을 때 누가 가장 이익을 보는가를 떠올렸다. 학생 중에 한 여성이 떠올랐다. 그 여성은 경기지사에 근무하면서 영어를 배우는 과장급의 노처녀였다. 자기와 비슷한 나이의 서양 남자인 ‘영감’을 짝사랑하고 있었다. 범인을 그 과장으로 추정하고 몰래 미행하다 들키기도 하고, 겸연쩍어 함께 다방에 들어가서는 심문조가 아닌 다정한 대화 조로 말하기도 했다. ‘영감’은 선생이었지 형사가 되지는 못했다. 

 

날이 어두워지자 ‘영감’이 갑자기 이야기하다 말고 일어섰다. “이야기를 다 듣고 싶습니다.” “내 눈은 못 속이지. 내 뇌가 일찍 못 알아봐서 이제야 알았네. 70년대에 신당동에 살지 않았나?” “네 그렇습니다.” “동생이 확실해. 그녀가 데이트 중 보여준 가족 사진을 본적도 있고 또 저녁에 어렴풋이 대문 앞에서 누나를 기다리고 있던 자네와 악수를 나눈 적이 있지.” “네, 바로 그 선생님이시군요. 이 공원에서 기다리면 해 질 녘 언젠가는 한 번은 뵙게 되리라 확신했습니다. 누나는 선생님이 한국에서 살고 싶으셨는데 돌아가신 것이 자기 때문이라고 마음 아파했습니다.” “내가 고향이 아닌, 학창시절 여행 중에 봐둔 놀밴으로 간다는 쪽지 하나 남기고 와 버렸으니 그녀가 많이 궁금해 했을 거야.” “결국 누나는 몇 년 후 제가 대학을 마치자 대한 그룹에 저를 입사시키고 그만두었습니다.” 

 

“저 돌 할방이 이곳에 오자 매일 그녀를 떠올렸지. 그녀가 아니면 도대체 누가 저 돌을 여기에 놓겠는가?” “네, 누나의 뜻을 받들어 회사에 홍보물을 제안했고 몇 개 도시에 세워지게 되었습니다. 선생님 고향에도 시도는 했습니다. 고향으로 가시게 될까봐.” 하르방이 세워지자 기뻐하던 누나의 모습이 떠오른 ‘남자’가 말했다. “하르방으로 인해 누나가 희망을 품었습니다. 다른 남자와 결혼해도 되겠다는 마음의 여유를 갖게 되었습니다.” “자네가 오늘 일부러 왔는가?” “네, 해외 홍보팀에서 일하며 밴쿠버 돌하르방 관리를 자원해서 맡아 왔었습니다. 은퇴를 앞두고 마지막 방문이 된 것입니다.” 

 

“그런데 여자가 결혼 했다는 말인가?” “혼자 살다가 하르방이 세워지고 나서 결혼 했습니다.” “시간이 진실을 밝혔겠지?” “누나와 선생님이 거짓 소문에 시달렸다는 것을 회사 사람들이 알게 되었고, 누나는 선생님을 닮은 한 서양인의 구애를 받아들였습니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후겠지?” “네, 누나는 잘 사는 모습을 보여 주려는 듯 이를 악물고 살았습니다. 조카 둘을 잘 키우고 행복하게 살고 있습니다.” “그때 헛소문 퍼뜨린 주역들은?” ‘여자’에 관한 희소식에 상기 된 ‘영감’이 화제를 돌렸다. 

 

“반성도 사과도 없었습니다. 선생님도 잘 사시지요?” “음, 다른 한 여성이 밥해 놓고 나를 기다리고는 있네. 그때 이 여성의 눈물을 받아들이지 말았어야 했는데.” “식사는 한국식…?” “응, 시간이 늦으면 며칠은 굶어. 주방 점유권을 빼앗겼거든.” 살날이 얼마 남지 않아 초췌해 보였던 영감이 피가 잘 도는 불그레한 얼굴로 벤치에서 일어섰다. “누나한테 나를 보러 올 생각은 말라고 하게. 그녀의 하얗게 변색된 머리를 보고 싶지 않네.” 

 

잘 가라는 말 대신 ‘영감’은 긴 여운을 남겼다. ‘자네가 노스 밴쿠버에 다시 오면 그땐 동틀 때 오게. 늙은이에게는 사과가 불필요하다는 생각은 말고. 하늘은 그때나 지금이나 젊으니까. 거짓을 만들어 낸 자 보다 거짓을 알리는 자가 더 나빠. 내가 죽은 후에라도 그들의 사과를 받아야겠네, 만물을 붉게 물들인 석양이 어둠을 불러와 세상을 암흑으로 만들어도 내일은 해가 뜨지, 내일부턴 동트는 공원에 나올걸세. 아침 햇살을 받은 넓적한 주먹코가 미세하게 웃는 모습의 하르방이 기다려질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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