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뷰티 | 쓰다 남은 아이섀도·립스틱, 이만한 물감도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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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중앙 쪽지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19-01-29 00:00 조회1,217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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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장을 해본 사람은 안다. 화장품, 특히 아이섀도·립스틱 같은 색조 화장품처럼 끝까지 쓰기 어려운 물건도 없다는 걸 말이다. 화장품 회사들이 1년에도 몇 번이고 새로운 색과 형태로 무장한 신제품을 쏟아내니 유행에 민감한 사람이라면 계속 새로운 화장품을 사기 마련이다. 때문에 다 쓰지 못하고 유통기한이 지나거나 손이 안 가는데도 아까워서 서랍 속에 묵혀두기 일쑤다. 화장품 용기는 재활용한다곤 하지만 내용물은 재활용 방법이 없는 게 현실이다. 

유통기한이 지나거나 쓰지 않은 폐화장품을 재료 삼아 그림을 그리는 미승 작가. 지난 1월 21일 경기도 김포에 있는 자택 거실에서 자신의 작품을 보여주고 있다. 임현동 기자

 
친환경을 넘어 반드시 환경을 생각해야 하는 '필(必)환경' 시대에 이런 폐화장품을 재료로 삼아 그림을 그리는 젊은 아티스트가 있다. 화장품 그림 작가 미승(26)씨다. 
대학 졸업 후 화장품 그림 작가로 활동한 지 이제 4년 차. 그의 손에 의해 버려진 화장품들은 캔버스 위에서 사람으로, 꽃으로 새 생명을 얻는다. 파운데이션은 우리가 화장하는 것처럼 똑같이 인물화 속 모델의 얼굴을 밝히고, 분홍색 립스틱과 아이섀도는 방금 피어난 싱그러운 꽃잎을 그리는 재료다. 지난 21일 그를 직접 만났다. 

미승 작가의 작품.

미승 작가의 작품.

미승 작가의 작품.

 
-어떻게 폐화장품으로 그림을 그리게 됐나.
"시작은 고2 때다. 미술고등학교를 다녔는데, 서양화 시험에서 아크릴물감으로 인물화를 그려야 했다. 시간은 끝나가는 데 물감으로는 피부색이 잘 살지 않았다. 덧칠하면서 오히려 얼룩덜룩하게 얼룩이 생겨 이를 커버해야했는데 물감으로는 불가능했다. 그때 떠오른 게 가지고 다니던 BB크림이었다. 화장품 파우치에 있던 화장품을 꺼내 발랐더니, 마치 사람 피부처럼 생생한 색감이 났다. 실수를 수습하려고 사용한 화장품이 작품에 도움을 준거다. 성적도 잘 나왔다. 그 후 대학을 졸업하고 본격적으로 화장품 그림을 시작했다."
 
-굳이 화장품을 소재로 선택한 이유는.
"가장 큰 이유는 화장을 좋아해서다. 어릴 때부터 얼굴이 화사해지고 예뻐지는 '작업'이 참 좋았다. 중·고등학교 시절부터 아이섀도며 립스틱을 엄청나게 사 모았고, 대학 졸업 후 사용하지 않으면서 버리지도 못한 화장품으로 그림을 그리며 새로운 세계를 만났다. 청소년기엔 화장한다고 많이 혼나기도 했지만, 결국 그게 지금의 자산이 된 셈이다." 
 
-화장품으로 그림을 그리는 게 어렵진 않나.
"환경만을 생각해 불편한데도 억지로 그리는 건 아니다. 일반 물감에는 없는 질감과 표현을 할 수 있다는 큰 장점이 있다. 예컨대 립스틱은 부드럽고 풍부한 질감이 나고, 틴트는 수채화처럼 맑은 느낌이 난다. 매니큐어는 발라 놓으면 볼록하게 튀어나오거나 빛이 반사되는 것 같은 반짝임을 줄 수 있다. 특히 아이섀도는 가루여서 가장 재밌게 사용하는 재료다. 그 중에서도 빤짝빤짝한 느낌이 나는 펄 아이섀도를 가장 즐겨 쓴다."

미승 작가가 그림 재료로 사용하는 립스틱들.

SNS에서 미승 작가의 작품을 본 사람들이 '자신이 쓰지 않는 화장품을 사용해 달라'며 보내주고 있다.

가장 많이 사용하는 아이섀도와 팩트를 담은 통.

미승 작가가 화장품으로 그림을 그리는 작업을 보여주고 있다.

 
환경문제와 맞닿은 특이한 작업 때문에 그의 그림엔 많은 사람의 관심이 쏠렸다. 작품은 젊은 작가답게 SNS에 올린다. 팬들이 하나둘 늘었고, 최근엔 신세계면세점과 함께 협업 캠페인도 진행했다. 신세계면세점이 내로라하는 유명 아티스트들을 뒤로 하고 신진 작가인 그를 협업 파트로 정한 이유는 '버려진 화장품에 대해 생각해보자'는 공익 활동을 시작하면서다. 버려진 화장품으로 면세점의 상징물인 회전그네와 모델 한효주를 그리는 과정을 영상으로 찍어 유튜브 채널에 올리고, 그 그림으로는 손거울을 만들어 면세점 고객에게 배포하는 이벤트를 열었다. 또 다른 화장품 회사들은 사보에 그의 이야기를 소개하고, 고객과 함께하는 화장품 그림 강좌를 열었다. 
 
-작품 의뢰가 많이 들어오나. 
"초상화 의뢰가 많지만 응하지 않았다. 다른 작품도 판매 의뢰가 왔지만 아직 한 점도 팔지 않았다. 화장품의 변색·변질이 걱정돼서 그렇다. 대신 특강이나 협업 형태로 작업을 많이 하고 있다."  
 

신세계면세점과 진행한 협업 프로젝트 영상 속 한 장면. 반짝이 매니큐어로 그네를 칠해 빛이 반사되는 효과를 표현했다.

-비싼 화장품으로 그림을 그리면 재료비가 만만치 않겠다. 
"지금은 SNS에 올린 그림을 보고 화장품 회사나 개인 기부자들이 많이 보내주신다. 화장품을 받아볼수록 '세상에 참 많은 화장품이 있구나' 놀라게 된다. 버리는 게 정말이지 아깝고 안타깝다."
 
-앞으로 계획은.
"요즘은 인물화 보다 꽃 그림에 집중하려고 한다. 그려보니 화장품이 꽃의 화사함과 생동감을 표현하는데 참 잘 어울리더라. 게다가 쓰임을 잃고 버려진 화장품이 꽃으로 다시 피어난다는 의미도 깊다." 

유통기한이 지나거나 쓰지 않은 폐화장품으로 그린 최근 작품.

 
 
글=윤경희 기자 annie@joongang.co.kr
사진=임현동 기자 lim.hyund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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