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 [문학가 산책] 어느 야행성 부나비의 변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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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노정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19-01-31 14:13 조회1,281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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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노정(露井) / 시조시인(캐나다한인문학가협회)
밴쿠버의 우기철 겨울은 유난히 길어
이슥한 밤 불빛 찾아 고개 드는 날갯짓
'찻집도 절도 문 닫았으니 우린들 어떡해'
애먼 저녁술에 또 다른 출근도장 찍으며
들어서는 출입구에선 묘한 기대치의
지폐들이 향수 뿜으며 코로 마중 나온다
빗길 코퀴틀람 하드락 카지노란 데엔
바깥을 내어다 볼 창문마저 없었고
흔한 벽시계조차 없는 시간에 갇혀
쉴 새 없이 요행을 기다리는 손가락들
액수 따라 크고 작은 손 바뀜 사이에
들이대면 먹기만 한 전자하마도 고단한지
부나비들이 대개 돌아간 이른 새벽녘엔
영양가 없는 뱃속 지전은 도로 뱉어내고
허기로 지친 배터리를 재충전해 넣지만
값진 웃음 노다지로 따내는 친구들이라곤
동남아서 영주권 얻어 온 어느 청소부나
식당에서 알바 하는 앳된 여학생이거나
눈먼 배당 영수증 처리하는 직원뿐이다
거덜 낸 뒤 가족 앞에 무릎깨나 꿇었을
노숙자나 다름없는 남루한 중년 사내의
콧수염 체면 살린 애증 깃든 쓴웃음도
고비사막 막 건너는 바람처럼 실려 갈 때
'서울은 지금쯤 몇 시나 되었을까'
두고 온 식솔 사진 낡은 지갑 뒤적이면
현금카드 인출기 잔고증명 흩날리고
미세먼지 까무룩 달무리 속 낯익은 얼굴
한강보다 덜 푸른 프레이저강에 베낀 뒤
돈줄처럼 막힌 변비통 궁리 짜도 시원찮아
잭밧을 꼭 터드려야 할 이유 저마다 댄다면
얼마나 많은 사람에게 또 얼마나 될는지
'새해부턴 숫제 이곳 발길 끊을 거란다'
늘어나는 수신거부 답신 없는 카카오톡에다
혀끝에서 떨리는 음색 에둘러 그려도 보고
힘차게 뒷일 본 갈매기 울음 엮는 새 아침
탐닉의 알 낳던 볼기짝 골몰히 눌러 앉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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