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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 | [퇴근후야행] 인간에겐 물·불·바람·흙, 그리고 제육볶음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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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중앙 쪽지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19-02-14 23:00 조회1,23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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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림동 '제육원소'

[퇴근후야행] 쌍림동 제육원소. 장충동 주변에서 유명한 '수정약국' 골목 안에 있다. 바로 옆에 있는 방앗간 풍경도 정겹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물·불·흙·공기를 만물을 형성하는 4가지 기본 원소라고 규정했다. 이 주장을 기본으로 프랑스 영화감독 뤽 베송은 영화 ‘제5원소’를 만들었다. 미래 인류를 구원할 제5원소(배우 밀라 요보비치)를 우리의 '크리스마스 맨' 브루스 윌리스가 지킨다는 내용이다.  

그리고 한 달 전, 서울 중구 쌍림동의 작은 식당 하나가 인간의 삶을 즐겁게 하는 요소로서 제6원소를 주장하고 나섰다.  

[퇴근후야행] 쌍림동 제육원소. 제육볶음을 주 메뉴로 한다는 의미와 '맑은 술과 고기를 으뜸으로 하는 곳'이라는 두 가지 의미를 가진 상호명.

이름하며 ‘제육원소’. 고기, 그 중에서도 제육볶음을 끔찍이 좋아하는 사장 김동영씨가 맛있는 술과 안주를 먹을 수 있는 작은 식당을 차리면서 붙인 이름이다. 적어도 뤽 베송의 영화 ‘제5원소’를 아는 세대라면 무릎을 탁 칠만큼 기막힌 이름이다. 물론 언론 등의 인터뷰를 준비해(이건 기자의 농담이다) 고상하고 우아한 뜻풀이도 만들어 뒀다. 한자로 맑은술 제(醍), 고기 육(肉), 으뜸 원(元), 바 소(所). 맑은술과 고기가 있는 으뜸인 곳이라는 의미다. 

[퇴근후야행] 쌍림동 제육원소. 돼지고기 뒷다리 살에 고춧가루와 이국적인 향신료를 섞어 만든 제육볶음. 위에 올려주는 고수와 함께 먹으면 맛있다.

당연히 이곳의 주 메뉴는 제육볶음이다. 김 사장의 원칙은 딱 두 가지. “어디 식당가서 제육볶음 시켰는데 양파볶음 나오는 걸 정말 싫어하거든요. 그래서 양은 푸짐하게 드리자는 게 첫 번째 원칙이에요.” 제육볶음 한 접시의 가격은 1만5000원. 가격은 저렴하면서 양은 푸짐하게 하려니 삼겹살 같은 비싼 부위는 못 쓰고 대신 뒷다리 살을 썼다. 좀 더 값을 내리기 위해 생고기를 사와 일일이 손으로 자른다. “물론 생고기가 맛도 좋은데, 기계로 자를 수 없다는 게 단점이에요. 큰 식당이라면 사용하는 양이 많으니까 정육업체에서 잘라오지만, 우리 같은 작은 식당은 그러면 비용이 또 발생하니까 제가 아침·저녁으로 직접 손질하는 거죠.”  
두 번째 원칙은 양념의 세계화다. 고추장을 쓰면 맛이 텁텁해서 고춧가루만 사용하는데, 이것만으로는 맛의 차별화가 어려워 세계 여러 나라의 매운 맛 향신료들을 적절히 배합한 ‘비법 소스’로 제육볶음을 만든다. 여행문화의 발달로 이국적인 식문화에 대한 저항이 없어진 덕이다. 덕분에 돼지고기 특유의 누린내는 당연히 없고, 씹을수록 혀를 적당히 압박하는 매력적인 향과 맛을 즐길 수 있다. 여기에 고수를 듬뿍 얹어낸다. 고수를 싫어한다고 미리 말하면 참나물로 대체 가능하다.  

[퇴근후야행] 쌍림동 제육원소. 제철 식재료를 사용한 생굴 메뉴.

제육볶음 외에도 안주는 여럿 있는데 메뉴판은 좀 색다르다. 일단 식재료를 적고 괄호 안에 조리법을 여러 개 적어놓았다. 손님이 좋아하는 식재료와 조리법을 선택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굴(생굴·전·튀김)’ 메뉴가 적혀 있다면 굴을 3가지 조리법 중 손님이 원하는 방법으로 제공한다. 매생이(전국), 꼬막(삶은무침), 오징어(삶음찜탕튀김), 새우(구이튀김)와 각종 전, 스테이크, 카스테라 달걀말이가 있다.        

[퇴근후야행] 쌍림동 제육원소. 카스테라처럼 달달하고 부드러운 달걀말이.

[퇴근후야행] 쌍림동 제육원소. 일반적인 소주와 맥주를 비롯해 전통주, 한국와인, 위스키 등 다양한 주종을 즐길 수 있다.

제육원소의 또 다른 특징은 다양한 종류의 술을 마실 수 있다는 점이다. 일반 소주와 맥주는 물론 전통주(막걸리·약주), 위스키 등도 준비했다. 가장 흥미로운 주종은 ‘한국와인’이다. 한국 양조장에서 국산 과일들을 이용해 만든 것으로 종류는 꽤 다양한데, 제육원소에선 약 10여 종을 판매한다. 
이 색다른 술 메뉴를 구성한 데는 제육원소의 또 다른 멤버 백문영씨의 몫이 컸다. 와인21닷컴의 객원기자이자 라이프스타일 칼럼니스트인 백문영씨는 김 사장이 종로에서 주점을 할 때 손님으로 들렀다 친구가 된 사이다. 제육원소에서 그는 본업을 살려 술 메뉴를 구성하고 손님이 원하는 음식과의 페어링도 조언한다. 소주와 맥주를 제외한 색다른 술들은 잔술로도 판매한다. 다만, 두 번째로 갔을 때 똑같은 술이 없을 수도 있다. 정식 술 리스트를 결정할 때까지 다양한 술을 테스트 중이기 때문이다.  

[퇴근후야행] 쌍림동 제육원소. 흰색 타일 벽에서 휴대폰으로 사진을 찍으면 꽤 근사한 결과물을 얻을 수 있다.

[퇴근후야행] 쌍림동 제육원소. 따뜻하고 편안한 분위기를 위해 멤버들이 힘을 모아 꾸민 실내.

마지막으로 제육원소의 자랑거리는 ‘작지만 있을 건 다 있다’는 점이다. 화장실까지 포함해 식당 크기는 총 9평(29.75㎡). 2인용 테이블 5개, 벽에 붙은 긴 바에 앉을 수 있는 의자가 5개. 사실 굉장히 단출한 규모지만, 요즘 분위기에 맞는 센스와 감각은 골고루 갖췄다. 제육원소의 마지막 멤버인 최희석씨의 활약 덕분이다. 미대 출신인 그의 역할은 디자이너다. 
실내조명부터 인테리어, 명함, 스티커 사진 등의 분위기를 꾸미는 게 그가 몫이다. 일단 멤버들이 직접 붙인 흰색 벽 타일과 푸른색 바닥 타일은 사진을 찍으면 꽤 모던하고 감각적인 배경이 된다. 작은 램프 아래 놓인 팔각형의 유엔 성냥은 중장년층을 울컥하게 만드는 복고풍 아이템. 그 밑에 제육원소를 운영하는 세 멤버들의 캐릭터 스티커를 올려 놓았다. 요즘 젊은층에서 유행하는 문화를 반영한 것이다. 창가쪽 유리벽 앞에는 개업축하 선물로 들어온 화분들로 나름 요즘 트렌드인 그린 인테리어도 꾸몄다. 

[퇴근후야행] 쌍림동 제육원소. 공간은 작지만 소소한 소품 하나까지도 이야깃 거리가 되도록 신경 쓴 것이 눈길을 많이 끈다.

[퇴근후야행] 쌍림동 제육원소를 이끌고 있는 세 명의 멤버. 왼쪽부터 김동영 사장, 백문영 라이프스타일 칼럼니스트, 최희석 디자이너.

김동영 사장은 “제육원소가 친한 친구들끼리 모여 맛있는 안주·술과 더불어 수다도 맘껏 떨 수 있는 살롱 또는 사랑방 같은 곳이 되길 바란다”고 했다.  
영업시간 점심은 12시~2시, 저녁은 5시~9시30분. 토요일은 저녁만, 일요일은 휴무다. 쇠고기 무국과 밥은 무한리필이다.  
 
글과 사진=서정민 기자 meantr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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