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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 | [김치로드] 이색 김치 식당…꿩김치∙게국지를 아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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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중앙 쪽지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19-02-20 23:00 조회1,59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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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의 밥상에서 김치는 필수다. 음식점에서도 기본 찬으로 빠지지 않고, 무한 리필해준다. 제대로 담그면 공깃밥보다 원가가 비싸다. 하지만 돈을 따로 받지는 않는다. 그러다 보니 음식점 김치는 중대한 변화를 겪고 있다. 제대로 담근 김치는 밀려나고 값싼 중국산으로 대체되고 있다.

안타까운 상황에서도 옛 문헌 속 특수 김치를 되살려 고급화하거나, 특정 지역에 전하는 향토 김치의 옛 모습을 지키는 음식점이 있다. 꿩김치를 날마다 담가 20일 익혀서 디너 코스의 하나로 내는 서울 강남구 청담동의 미셸린 2 스타 한식당 ‘권숙수’와 황해도 호박지처럼 찌개로 끓여서 먹는 서산∙태안∙당진 지역 향토 음식 게국지를 원형에 가깝게 담그는 충남 서산 동부시장 백반집이다.
 

 
미셰린 2스타 ‘권숙수’ 꿩김치…”외국 손님이 더 좋아해” 
 

청자잉어장식합에 담겨 손님상에 나가기 직전의 꿩김치. 이 합은 하나에 몇십만 원을 주고 주문 제작해 ‘권숙수’에서 쓰는 그릇 가운데 가장 비싸다.

꿩김치[雉菹]는 조선 시대에도 있었으나 사냥이 사라지고 꿩은 귀해지면서 거의 사라졌다.

문헌상으로는 1670년께 경북 영양 두들마을에서 쓴 『음식디미방』에 ‘생치침채법’이라는 이름으로 처음 소개됐다. “간이 든 오이지 껍질을 벗겨 속은 앗아버리고 가낫이(가늘게) 한 치 길이만큼 도독도독하게 썰어 물에 우려 둔다. 꿩을 삶아서 그 오이지 같이 썰어 뜨신 물에 소금을 알맞게 넣어 나박김치같이 담아 삭혀 쓰라”고 설명했다.
2010년 농촌진흥청이 낸 『전통향토음식 용어사전』은 서울∙경기 지방 꿩김치를 소개하면서 “삶은 꿩 살을 넣은 물김치”라고 정의했다. 또 “물에 꿩∙대파∙양파∙생강∙마늘∙통후추를 넣고 푹 삶은 후 꿩 살을 발라낸 다음 국물은 체에 걸러 차게 식혀 기름기를 걷어내고 동치미 국물과 섞어서 간을 맞춰 동치미 무 썬 것과 꿩고기를 넣고 잣을 띄운다”고 설명한다. 340년 사이 담그는 방법도, 부재료도 완전히 달라졌다.
전통음식을 개인적으로 연구하는 평안도 맹산 포수의 아들 박기영(60) 시인은 “김장할 때 꿩고기를 생으로 저며서 배추 갈피마다 넣었다”고 아버지의 꿩김치를 증언했다. 꿩김치의 본고장인 평안도 산악지역에서는 주재료인 꿩을 다루는 방법조차 다르다.
2년 연속 미셸린 2 스타를 받은 한식당 ‘권숙수’의 권우중(39) 오너셰프는 이처럼 정석이 없는 꿩김치를 연구해 기본 찬이 아닌 디너 코스의 하나로 손님상에 내고 있다.
한식 조리사로서 요리로 대접받는 김치를 개발하려고 늘 고민한다는 그는 “김치를 이용한 요리가 아니라 김치가 요리로, 메뉴로 대접받도록 하겠다는 생각으로 지난해 여름에 백꿩김치, 겨울에는 홍꿩김치를 선보였다”면서 “이번 봄에는 어떤 김치를 할지 생각 중인데 20~30대 여성도 좋아할 김치가 목표”라고 말했다. 김장 스타일 꿩김치는 3월 5일까지 나가고, 이후엔 새로운 버전의 꿩김치와 까투리불고기를 내려고 준비하고 있다.
재료와 담가서 익히는 방법을 묻자 그는 거침없이 공개했다. 주방 스태프들이 이용하는 레시피 카드를 내주며 사진을 찍어도 좋다고 했다. 많은 사람이 배워서 꿩김치가 널리 퍼지기를 기대하는 듯한 표정이었다.

김치에 들어가는 꿩육수를 우릴 재료. 장끼를 써서 김치 담그기 하루 전에 우려서 식힌다.

꿩은 가을에 200마리를 사들여 냉동해두고 쓴다. 농장에서 봄부터 키워 1년에 한 번 출하하기 때문에 한꺼번에 사둬야 한다. 암꿩인 까투리(1마리 2만5000원)를 쓰면 맛은 더 부드럽지만, 살이 너무 적어 원가 부담이 커 3만원짜리 장끼를 쓴다. 그는 “꿩이 닭보다 기름기가 적고 감칠맛은 2~3배 높아 김치 담그기에 적합하다”고 말했다.

꿩육수를 우리기 위해 재료를 넣고 불에 올렸다. 장끼 한 마리로 4.5L를 우려서 이틀 쓸 김치를 담근다.

꿩 육수 내기가 첫 작업이다. 하루 전에 달여서 식혀 둔다. 장끼 1마리에 무∙대파∙양파∙생강을 넣고 처음 끓어오르면 거품을 걷어내고 통후추를 15~20알 넣고 센 불로 90분간 끓인다. 꿩 1마리로 육수 4.6L를 뽑아 김치를 두 번 담근다. 끓인 육수에 조선간장을 약간 타서 맛보니 감칠맛이 아주 진했다.
배추는 고랭지 것 중 포기가 아주 작은 걸 골라 쓴다. 저장 김치가 아니라 적당히 익으면(15~20일 소요) 한 통을 하루에 다 쓰기 때문에 알맞게 작은 포기를 쓴다. 4% 소금물에 18~20시간 절이고 건져서 한 번 헹군 다음 굵은 줄기 사이에 천일염을 질러서 6시간을 더 절인다. 이를 물에 2~3회 헹궈서 김치를 담근다. 염도를 높여 한 번에 절이며 10회 이상 세척해야 한다. 이럴 경우 배추 단맛이 빠져나가는 문제가 있어 덜 헹구고 적당히 절이는 방법을 나름대로 고안했다.

꿩김치에 들어가는 재료와 양념을 한자리에 모았다.

김치에 들어가는 재료는 배추(작은 것 3포기) 외에 톡 쏘는 맛을 내는 청갓, 시원한 맛을 내는 무청, 토막 친 무, 8쪽 낸 배, 오이 한 토막, 삭힌 고추와 청고추 각 2개, 미나리 줄기 열 가닥이다.
무는 천수무(떨어지면 총각무)를 쓴다. 미나리는 김치가 시는 속도를 조절해 준다. 많이 넣으면 빨리 시고, 적게 넣으면 느려지므로 계절 따라 양을 조절한다. 가을에는 적게 넣고 겨울에는 조금 더 넣는다. 풋풋한 향을 내는 오이도 계절에 따라 조절한다. 오이는 싫어하는 사람도 적지 않아 조금만 넣는다.
양념류는 고춧가루, 칼칼한 맛을 내주는 고추씨, 마늘, 생강, 매실청, 소금과 새우젓(다져서)∙멸치액젓∙까나리액젓을 쓴다. 젓갈은 강화도에서 1년 쓸 분량을 한꺼번에 산다. 젓새우는 강화도, 멸치∙까나리는 남해안에서 잡힌 것을 강화에서 젓갈로 담가 숙성한 것이다. 고춧가루도 맛을 일정하게 관리하기 위해 1년 치를 사들여 저온창고에 두고 2주일마다 직접 빻아서 쓴다.
김치는 맛을 일정하게 유지하기가 어려운 음식이다. 권 셰프는 최대한 동일한 재료를 사용해 맛의 변화를 최소화하려고 노력한다. 그래서 고향 가평에 저온창고를 지어 기본 재료는 1년 치씩 사 두고 쓴다. 부모님이 창고를 관리해준다.

전날 우려둔 꿩육수에 양념을 하는 ‘권숙수’의 권우중 오너셰프.

꿩김치 재료를 준비하면서 전날 끓여 식힌 육수에 고춧가루∙고추씨∙마늘∙생강∙매실청∙소금과 젓갈 등 양념류를 한데 넣고 색과 맛이 우러나도록 한동안 둔다.

권우중 셰프가 절인 배추에 소를 넣고 있다.

채소 종류 작업이 끝난 김치. 여기까지는 꿩이 들어가지 않았다.

권우중 셰프가 양념을 풀어 우린 꿩육수를 베 보자기로 거르면서 김치에 붓고 있다.

통에 김치를 담글 때는 바닥에 무∙배∙오이∙미나리, 삭힌 고추와 청고추를 바닥에 먼저 깐다. 절인 배추 갈피에 간을 하지 않은 김치 소(배∙무 채, 쪽파, 잘게 썬 청∙홍고추)를 채우고, 겉잎으로 포기를 여며 통 바닥에 깐 재료들 위에 차곡차곡 담는다. 포기를 다 담으면 갓과 무청을 양쪽에 다소곳이 눌러 넣는다. 그 위에 베 보자기를 깔고 양념 풀어 둔 꿩육수를 부어 거른다. 보자기에 걸러진 양념 알갱이는 보자기를 오므려 실로 묶은 뒤 국물에 담그고 통 뚜껑을 닫는다.

김치 담그기가 끝난 상태. 걸러진 양념 알갱이는 베 보자기를 여며 실로 묶어 김치 통에 함께 넣는다.

김치 통은 반드시 유리그릇을 쓴다. 플라스틱에 담그면 국물에 그릇 냄새가 배기 때문에 피한다. 담근 김치는 상온에 이틀쯤 뒀다가 맛을 봐서 신맛이 올라오기 시작하면 냉장고에 넣는다. 익는 게 늦으면 하루 더 둔다. 1차 발효를 기다리는 것이다.
꿩김치는 영업일마다 한 통씩 담근다. 하루 최대 30인분 기준으로 작은 배추 2.5~3포기가 기준이다. 문을 닫는 일요일엔 배추를 절이지 못해 월요일에 절여 화요일에는 이틀 치를 담근다. 통에 날짜를 표시해 저장했다가 2~3주일 익혀서 매일 한 통을 연다.
통이 냉장고에 들어가면 개봉하는 날까지 아무도 손을 못 댄다. 한 번 뚜껑을 열면 발효가 다시 진행돼 맛이 변하기 시작한다. 꿩김치는 저녁 코스에만 나가기 때문에 저녁 영업 2시간 전에 개봉해 1인분씩 준비해 뒀다가 상에 내고, 남으면 직원식으로 먹는다. 다음날 다시 쓸 수는 없다.

통마다 날짜를 써 붙이고 냉장고에서 익고 있는 꿩김치. 냉장고에 들어가면 개봉할 때까지 15~20일 동안은 아무도 손댈 수 없다.

권우중 셰프는 어릴 때부터 고기 들어간 김치를 자주 먹어 자연스럽게 꿩김치를 생각했다. 담그는 방법은 평안도 태생인 어머니에게 배웠다. 평안도에서 월남한 외가는 서울에서 제법 알려진 이북음식점을 오래 했었다. 외할머니와 어머니는 김치를 담그고 2~3일 후 쇠고기 육수를 부어 국물이 넉넉한 김치를 담갔다. 이 전통적 방법을 레스토랑 현장에 적용할 수 있도록 세부사항을 수정했다.
권 셰프는 “어릴 때 김장 포기 사이에 박은 무를 한두 달 익은 뒤 꺼내 채 쳐서 김칫국물에 넣어 국처럼 먹었다”고 회상하며 “거기에 밥 말아서 먹으면 정말 맛있었는데 김장 독을 땅에 묻기 어려운 도시에서는 이제 그 맛을 볼 수가 없다”며 아쉬워했다.
‘권숙수’의 꿩김치는 외국인이 더 좋아한다. 특히 유럽이나 일본 손님이 좋아한다. 국물 한 방울도 남기지 않는다. 대개 주변 시선 의식하고, 매운 거 잘 먹지 못해 김치를 좋아하지 않는 일본인이 그릇을 양손으로 들고 말차(抹茶) 마시듯이 김칫국물 마시는 모습을 자주 본다고 한다.
한국인도 요리 전문가들은 좋아한다. 좋아해도 마시지는 않고 끝까지 수저로 떠먹는다. 남기는 경우는 대부분 젊은 한국 손님들이다. 20~30대는 대부분이 남긴다. 권 셰프는 “기본 반찬으로 차려지는 ‘공짜 김치’에 길든 습성”이라며 “꿩김치의 맛과 가치를 알고 좋아하는 내국인 손님은 10~20%밖에 안 된다”고 안타까워했다.
꿩김치를 담는 그릇은 권숙수에서 가장 비싼 청자잉어장식합을 쓴다. 하나에 수십만원을 주고 광주요(廣州窯)에 주문 제작했다. 꿩김치의 가치와 소중함을 알리려고 일부러 비싼 그릇에 담아낸다.

청자 합에 김치를 1인분씩 담고 국물과 고명들을 챙겨 디너 코스로 나갈 준비를 마쳤다.

꿩김치를 상에 내기 위해 꿩고기와 토종 고수 어린잎, 식용 꽃잎 등 고명을 다 얹은 다음 마지막으로 김칫국물을 붓는 권우중 셰프.

뚜껑을 덮은 1인용 합에는 두 엄지를 합친 부피의 김치와 함께 담근 무청∙갓을 두어 가닥씩 담고, 꿩 가슴살과 다리 살을 따로 쪄서 고명으로 올린다. 그 위에 토종 고수 어린잎 몇 가닥과 꽃잎 몇장을 장식한 뒤 국물을 부어 상에 나간다. 

김치에 고명으로 올릴 꿩 가슴살과 다리 살을 찌려고 준비했다.

고명으로 쓸 꿩고기를 찔 때는 살만 발라낸 고기에 생강과 대파를 올리고 찜기에 고온으로 11분간 찐다. 이때 나오는 육즙도 받아서 김칫국물과 섞는다. 그러면 감칠맛이 훨씬 진해진다.
외가는 평안도였지만 친가는 명지산(1252.3m)∙연인산(1068m) 자락인 경기도 가평군 북면 도대리∙백둔리 일대였다. 지금도 이곳에서 부모님이 은퇴 후 생활을 하면서 식재료 창고를 관리해준다. 이 마을에서는 예전부터 고수를 흔하게 먹었다. 동네 모든 집은 김치에 고수를 넣어서 먹는다. 텃밭에서 집집이 키우고, 가장 자주 먹는 나물이 고수 무침이다.
요즘 시중에서 파는 고수와 종자가 다른 토종 고수다. 키는 작고 추위에 강하다. 향이 강하고 잎 둘레 톱니 선은 더 선명하다. 재배는 까다로워 씨 100알을 뿌리면 싹이 나는 건 15~20개뿐이다. 씨앗을 구해 경기도 남양주의 자연농법 농장 '준혁이네'로 보내 키운 것을 공급받는다. 장식으로 올린 고수 한 가닥을 씹어보니 향이 강했다.

‘권숙수’ 디너 손님상에 단독 코스 메뉴로 올린 꿩김치.

꿩김치는 반찬이 아니라 하나의 독립된 요리다. 코스 중간 고기요리 직전에 나간다. 이전 코스가 주로 볶은 음식이기 때문에 감칠맛 진한 신맛으로 입을 씻어주고 미각을 되살리는 순서다. 김치를 고기와 먹어도 어울리겠지만, 그러면 결국 김치는 다시 곁들이는 반찬이 되고 만다. 그래서 일부러 독립 요리로 코스를 구성했다.
그는 “국수주의가 아니라 김치가 정말 좋은 음식인데 음식점에서 기본 찬으로 나가니까 공짜라고 인식해 대접을 못 받는다. 따로 돈을 받지 않으니까 좋은 재료 못 쓰고, 좋은 김치는 점차 밀려난다. 일반식당에서 김치를 직접 담그기는 정말 어려운 현실이다. 앞으로는 직접 담그는 집이 없어질 것이다. 결국은 저가 수입 김치가 그 공백을 메우게 되고, 김치 시장은 싸구려 기본 찬과 돈 주고 사 먹는 고급 김치로 양극화가 심해질 것이다. 김치를 메뉴로 올리고 돈 받고 팔게 된다면 김치도 발전하고 김치 시장도 활로가 열릴테지만 현실은 요원하다”고 현실을 분석했다.
권숙수에서는 갓김치∙백김치∙사찰김치∙황석어김치∙파김치∙굴깍두기를 별도 메뉴로 판다. 손님이 요청하면 한 접시 6000원에 낸다. 맛만 조금 보자고 하면 조금만큼 돈을 내라고 한다. 재료비 정도를 받는다.
제대로 담근 김치는 공짜가 아니라는 무언의 항변이다. 작정하고 그런 규칙을 만들었고 반드시 지킨다. 세계인을 향해 한국음식의 가치를 높이는 문제를 늘 고민하는 그의 투쟁이다.
 

서산 시장 백반집 게국지…”멀쩡한 꽃게 늫는 건 없었슈”
서산∙태안∙당진 지역의 향토음식인 게국지는 논란의 대상이다.
우선 김치냐, 찌개냐가 문제다. 생으로는 먹지 않고 찌개로 끓여서만 먹기 때문이다. 분류하자면 짠지처럼 ‘지’(고어는 ‘디히’)자 항렬의 김치다. 황해도 김치인 호박지도 생으로는 먹지 않고 찌개로 끓여야 먹을 수 있다. 그래서 담근 상태로는 김치인 게국지이지만, 먹는 상태를 기준으로 명명하자면 게국지찌개가 맞다.

뚝배기에 게국지찌개를 안쳐 끓이고 있다. 굵은 배추 줄기, 늙은 호박, 알이 작은 굴과 국물 멸치가 보인다. 음식점에서는 한 번에 많이 끓여 두고 손님이 오면 덜어서 데워준다. 예전에는 가마솥에 밥 안칠 때 찌개 뚝배기를 함께 넣고 쪄서 먹었다.

이름도 “게국지” “겟국지” “갯국지” “께꾹지” 등 현지에서도 말하는 사람마다 다르다. 주재료를 기준으로 게장 국물[게국], 해산물 국물[갯국]이라고 각자 유추하고 해석해 이름을 발음하기 때문에 그런 거로 보인다. 재료가 정해져 있는 것도 아니라 어느 게 맞는다고 단정할 근거도 없다. 다만 향토지나 지역문화를 정리한 문서들은 게국지라고 쓰는 거로 교통정리가 된 듯하다.
무엇을 넣고 어떻게 담그는지에 대해서도 주장이 분분하다. 게국지는 원래 한정된 지역에서만 먹던 향토음식인데 TV 인기 프로그램에 등장한 이후 사람들의 관심이 높아지고, 서산∙태안에 게국지찌개를 파는 음식점이 많아지면서 대개 꽃게를 넣고 갓 무친 배추겉절이로 끓여주다 보니 전래로 해 먹던 음식과 크게 달라졌기 때문이다.
지역 주민들은 게장 국물이나 액젓에 김치 담그는 채소류(대개 김장 자투리 채소)를 있는 대로 넣고, 서리 맞은 호박도 섞어 고춧가루로 버무려 뚝배기에 덜어 가마솥 밥 지을 때 함께 넣어 쪄 먹었다. 무쳐서 바로 먹기도 하고 김치처럼 익혀가며 저장 음식으로 먹기도 했다.
이처럼 조리법이나 격식이 고정되지 않아 오히려 자유로운 게국지의 현재를 알아보기 위해 충남 서산 동부시장 상인들이 점심때 이용하는 백반집엘 갔다. 게국지찌개를 옛날식으로 끓인다는 현지인의 전언이 있었다. 메뉴는 게국지찌개∙된장찌개와 7~8가지 반찬이 오르는 한 상을 손님 몇이 함께 먹는 백반(1인 5000원) 한 가지였다. 게국지찌개는 끓이지 않는 날도 있다고 한다.

게국지찌개가 오른 서산의 전통적인 백반상. 요즘 새롭게 게국지찌개를 팔기 시작한 음식점에 가면 게국지찌개 모습이 매우 다르다.

“께꾹지”라고 발음하는 여주인 김씨(72)는 당진에서 태어나 1966년 결혼하면서부터 서산에 살았다. 시장 밥집은 89년부터 30년째 하고 있다. 친정은 당진을, 시댁은 서산을 떠난 적이 없다.
이 식당 이름을 공개할 수는 없다. 80세 남편과 14석 식당을 운영하는데 손님이 몰리면 감당을 못한다. 또 시장 상인들이 점심을 먹을 수 없게 된다. 게다가 여주인이 오랜 노동에 지친 팔목이 고장 나 낯선 손님이 오는 걸 반기지도 않는다.
(※시장에서 걸어갈 수 있는 거리에 옛날 스타일 게국지찌개가 오르는 백반을 파는 ‘진국집’이 있다. 서울 서촌 ‘진국집’이나 간장게장으로 유명한 마포 ‘진미식당’ ‘서산꽃게’에서도 요청하면 게국지찌개를 맛볼 수 있다.)
취재하던 지난 1월 14일 점심이 끝난 자리를 살펴보니 게국지찌개를 남긴 테이블이 많았다. 이곳 사람들은 일상 생활음식이기 때문에 특별하다는 느낌이 없는 듯했다. 하지만 나는 서리태와 흑미를 드문드문 섞어 지은 쌀밥을 두 공기나 먹었다. 숟갈에 밥을 듬뿍 뜨고, 아삭거리기도 하고 흐물거리기도 하는 게국지찌개 배춧잎을 얹어 먹으니 다른 찬에는 손이 가지 않았다.

게국지를 찌개로 끓여서 백반상에 올린 모습.

국물을 한술 뜨니 맛이 진하고 강했다. 간이 세고, 여러 가지 해산물이 발효한 맛의 무게가 복합적으로 느껴졌다. 신맛도 거부감이 들 만큼 강했다. 하지만 건지는 전혀 달랐다. 시지도 않고 갈피마다 감칠맛이 배어 나왔다. 강렬하던 국물 맛도 먹을수록 혀에 감겼다.
찌개 내용을 살피니 큼직한 국물 멸치와 콩알만 한 굴이 들어갔고, 들깻가루로 국물 맛을 돋웠다. 1㎝ 두께로 넓적하게 자른 늙은 호박, 배추, 무청, 토막 친 대파 줄기가 섞여 있다.
여주인에 따르면 게국지를 담그는 때가 정해져 있는 것은 아니다. 초복 지나면 호박이 늙기 시작하고 중복 무렵에 늙은 호박이 나온다. 여름엔 그때부터 담근다. 호박∙열무∙배추∙멸치액젓∙새우젓∙마늘∙생강∙파 등을 넣는다. 배추와 열무는 김장배추만큼 절인다. 소금으로 간을 하면 맛이 써져서 양념에 소금은 안 쓴다. 겨울 게국지는 끓인 간장에 박하지(돌게)를 담가 2~3일 뒀다가 절구에 짓찧어서 절인 배추와 버무리면서 민물새우와 새우젓∙액젓(멸치 또는 까나리)도 넣는다.

황해도 연백지역 방식으로 갓 버무린 호박지. [사진=엄지아 개성찬방 대표]

잘 익은 호박지. [사진=엄지아 개성찬방 대표]

잘 익은 호박지에 돼지 등갈비를 넣고 끓인 호박지찌개. 김치의 일종이지만 호박이 들어가고, 찌개로 끓여서 먹는다는 점이 닮아 호박지와 게국지는 뿌리가 같은 음식으로 보인다. [사진=엄지아 개성찬방 대표]

늙은 호박 나오는 걸 기준으로 삼는 걸 보면 게국지는 호박지의 사촌쯤 되는 듯하다. 호박지를 황해도 김치라고 하지만 충남 서부에서도 흔히 해 먹는다.  
여주인은 게국지 담그는 걸 따로 배운 적은 없다. 어려서 어머니가 하는 걸 어깨너머로 봤을 뿐이다. 옛날엔 재료가 많지 않으니까 대충 담갔는데, 그때 먹었던 기억에 이것저것 그냥 생각나는 대로 더 넣어서 이런 맛이 됐다고 한다. 그는 “맛에 좋다는 건 다 넣는다”고 말했다.
게국지로 찌개를 끓일 때 짜면 쌀뜨물을 넣는다. 1960년대까지는 집집이 게국지를 담가 가마솥에 밥 지을 때 뚝배기에 게국지도 함께 안쳐서 쪄 먹었다고 한다. 그러면서 “김치찌개가 있었간? 그땐 그게 김치찌개였지”라고 덧붙였다.
그 시절에는 게국지를 제대로 된 배추로 담그지 않았다. 김장하면서 떨어진 배추 겉줄기나 부스러기 잎, 남은 무, 제대로 익지도 않은 호박 같은 걸 모아서 담갔다. 김장 마치고 밭에 남은, 잎이 땅에 붙어 옆으로 퍼져 납작납작하고 새파란 못난이 배추들을 뽑아 담그기도 했다. 가난하게 살던 시절 서민의 월동 음식이었다.
김씨는 지난 김장철에 담가(12월 10일) 일부는 택배 판매(1㎏ 5000원)하고, 밥집에서 지져서도 팔아 쌀 한 가마 들어가고 남을 커다란 통이 한 달 만에 바닥이 보였다. 그는 “겨울나려면 더 담가야 할 텐데 하게 될지 모르겠다”며 말끝을 흐렸다.

서산 동부시장 백반집 여주인 김씨가 게국지 통 안을 살펴보고 있다.

식당에서 식사 중이던 김영수(55) 충남 도의원(교육위 위원∙더불어민주당 서산시 제2선거구) 얘기를 들어봤다. 군 복무 때 말고 서산을 떠나서 산 적이 없다는 그는 게국지를 이렇게 설명했다.
“김장은 익으려면 오래 걸리니까 바로 먹으려고 김장과 함께 게국지를 담갔다. 우들거지(우거지)∙무청, 늙은 호박 넣고 그이국(게국) 부어서 짜게 담근다. 그이국은 여름부터 그이장(게장) 담가 먹고 남은 국물 모아뒀다가 썼다. 옛날에 배추 흰 부분은 게국지에 들어가는 거 못 봤다. 그이도 제대로 성한 거 들어간 적 없다. 퍼런 배추에 그이국 넣고 버무려서 3~4일 뒀다 지지면 색깔이 시꺼매서 볼품은 없지만 이게 먹으면 맛이 있다. 호박이 들어간 호박새옹지도 담갔었다. 말하자면 호박게국지다. 이 밥집은 서산 음식의 원형을 거의 그대로 지키고 있다.”

충남 서산 동부시장은 서해와 드넓은 갯벌, 금북정맥의 최고봉인 가야산(687m)을 끼고 있어 물산이 풍부한 이 일대의 최대 시장이다.

동부시장에서 ‘부남수산’을 운영하는 ‘서울댁’ 염현미(52)씨의 ‘께꾹지’ 경험도 재미있다.
1994년 서울에서 시집와 25년을 서산에서 살았다. 시아버지는 어리굴젓용 굴 절이는 사업을 크게 했다. 결혼 후 친정아버지가 서산에 오셨다. 시커먼 게국지를 끓여 드리니까 이상한 음식 보듯 했다. 먹어보더니 “꼴은 그래도 맛은 괜찮다”고 했다. 서울 가는 길에 친정에 게국지를 싸서 보냈다. 며칠 후 어머니한테 전화가 왔다. “이웃에 나눠주고 조금만 남겨 찌개로 끓였더니 이게 왜 이리 맛있냐”고 했다. 김장철에 집간장과 굴젓국(굴 절일 때 나온 국물을 3년 삭힘)을 섞어 달인 국물로 담가 이듬해 3월까지 둔 것이다. 장과 김치 맛이 집마다 다르듯 게국지도 그렇다고 한다.
시아버지 사업장에는 일하는 사람이 많았다. 시조부 때 시작해 현재 증손자까지 4대를 이어 이 일을 하고 있다. 새댁 때 식구가 많아 배추 1000포기씩 김장을 했다. 집에 일해주러 오는 아주머니가 김장이 끝나고 께꾹지 담그자며 밭에 가서 배추를 뽑아오라고 했다. 김장하려고 통배추 뽑고 밭에 남은, 잎이 벌어져 땅바닥에 바짝 붙어 자라는 푸른 배추를 잔뜩 뽑아왔다. 그걸 다듬어 절이지 않고 씻기만 해서 건져 뒀다. 거기에 대파 썰고, 민물새우도 준비한다. 고춧가루는 희아리(약간 상한 채로 말라서 희끗희끗하게 얼룩이 진 고추)를 대충 빻아서 썼다.
게국은 간장이나 멸치(혹은 까나리)액젓에 박하지∙칠게∙황발이나 부실한 꽃게 같은 걸 있는 대로 담가서 건져 먹고 남은 국물이다. 예전에는 게보다 게국을 먹으려고 게장을 담갔다. 치아가 부실한 노인들은 게국물에 밥 먹는 걸 좋아했다. 또, 게는 삭으면 잘 부서진다.
재료가 준비되면 절이지 않은 배추 한 켜, 숭덩숭덩 썬 대파 한 켜, 삭은 게 뜯어 둔 것 한 켜, 민물새우 한 켜를 쌓은 다음 게국을 붓는다. 몇 번 거듭하면 항아리가 수북하지만, 하룻밤 지나면 배추 숨이 죽어 푹 꺼진다. 민물새우는 많이 넣지 않아도 꼭 넣었다(항아리 하나에 0.5~1㎏ 정도).  
게국지에 꽃게 넣으면 아주 잘사는 집, 박하지 넣으면 좀 사는 집이었다. 가난한 집은 칠게나 황발이를 넣었다. 그런데 요즘은 칠게나 황발이가 더 귀하고 비싸다. 요새 젊은 주부들은 게국지찌개를 먹기는 하지만 담그지는 않는다. 담그는 방법도 모르고 귀찮아서 안 담근다. 그래서 만들면 잘 팔린다고 한다.  

찌개로 끓이기 전의 게국지. 담근 지 한 달 지났다. 늙은 호박도 들어있다.

염씨는 께꾹지 담그는 걸 시어머니에게 배웠다. 처음 시집와서 5년 동안은 냄새가 고약해 안 먹었다. 염씨 큰아들(25)도 게국지찌개를 안 먹다가 지난 연말께 먹기 시작했다.
식당에 점심 먹으러 온 시장 아주머니들 사이에도 “게국지” “께꾹지” 발음이 섞여 나왔다. 한 아주머니에게 담그는 법을 물었다.
“박하지 잔 다리는 떼어내고 간장 부어서 3일 뒀다가 멸치액젓도 섞어 절인 배추에 무와 호박도 넣고 버무려. 게국지는 사철 아무 때나 담가서 바로 지져 먹어도 돼. 담가서 바로 지지면 배추가 물렁물렁하게 잘 무르고, 오래 뒀다 먹으면 질겨지지. 나이 든 사람들은 바로 먹는 게 좋아. 오래되면 나뻐유.”
서산시 대산읍 벌말선착장에서 만난 가로림만의 작은 섬 우도 출신 아주머니(72세)는 달랐다.
“께꾹지를 옛날엔 김장 때 담갔지만 요새는 따로 때가 없슈. 오래 익어서 지지면 질겨지구 설겅설겅하고, 담가서 일주일 안에 먹어야 물렁물렁하니 맛이 좋아. 끓인 왜간장(시판 혼합간장을 말하는 듯)에 청양고추와 양파 썰어 넣고 박하지 넣고 3~4일 뒀다가 박하지 건져 먹고, 그 젓국을 절인 배추에 붓고 바로 지져 먹어도 돼유. 지질 때 다시마∙멸치 국물이나 쌀뜨물(겉 뜨물 버리고 속 뜨물) 좀 타고 들깨가루 두어 스푼 넣고 한소끔 끓이면 멀국이 구스름하고 맛있어유. 우린 두 내외만 살지만 한 달에 두세 번, 자주 담으유. 배추는 바닷물에 꼬박 하루 절이구, 일 바쁘면 한나절 더 담가 둘 때도 있슈.”
이처럼 게국지는 집집이 다르고 말하는 사람마다 다르다. 그래도 하나같이 하는 말이 있다. “멀쩡한 꽃게 늫구 하는 게국지는 없었슈.”

충남 서산 동부시장 동문 입구.

취재를 마치고 동문시장을 지나는 길에 노점에서 여러 가지 해산물을 팔고 있는 할머니에게 앞발이 한쪽만 커다란 게 이름을 물었다. 묻지 않은 말까지 대답했다. “박하지유. 돌게라 하기두 해유. 이건 냉동유. 요새 안 나와유. 가을에 나오유.”
게장 담가 건져 먹고, 그 국물로 김장철 게국지를 담갔던 바로 그 게다.
글∙사진=이택희(음식문화 이야기꾼) hahnon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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