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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 [문학가 산책] 오남매와 바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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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정숙인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19-02-21 15:52 조회1,63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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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af256061979c9e57edd6a1b00f50060_1550793211_86.jpg
정숙인 / 수필가, 캐나다한인문학가협회

 

 

 

초등학교에 다닐 무렵이니 아주 오래 전의 일이다. 유난히 바둑 두기를 좋아하던 아버지께서 하루는 오남매를 불러 모으셨다. “자, 오늘은 아빠가 너희들의 보다 알차고 재미있는여름방학에 보탬이 될까 해서 바둑을 한 수 가르쳐 주기로 했다.” 큰오빠를 비롯하여 작은 오빠, 나, 여동생, 막내인 남동생까지 호기심 어린 눈망울을 굴리며 우르르 아버지 앞으로모여들었다. 그 곳에는 이미 유서깊은 은행나무로 만들었다는 네 귀퉁이에 다리가 달린 묵직한 바둑판이 놓여 있었고 좌우로 목각 합에 담긴 바둑돌들이 뚜껑이 열린 채 얌전히 놓여 있었다. 맏이인 초등 6년생 큰 오빠가 총대를 메고 아버지 앞에 앉았다. 도무지 알 길 없는 어려운 설명을 들으며 큰 오빠는 제법 폼나게 검지와 중지를 이용해 바둑돌을 집어 그럴싸하게 판 위를 채워 나갔다. 집을 짓고 그 집 안으로 들어온 상대방의 바둑돌을 가져오거나 빼앗기거나 하였다. 두 사람이 한 수, 두 수 돌을 가져다 놓으며 판을 채워 나가는 동안옆에 앉아 있던 나는 그것이 보다 알차고 재미있는 여름방학에 하나도 보탬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시간이 어느 정도 흐르자 단정히 무릎을 꿇고 자못 동생들을 대표한다는 자부심으로 빛나던 큰 오빠는 거의 엎어질 듯 바둑판에 코를 박고 간신히 버티고 있었는데 보기에도 무척 안되 보였다. 그에 반해 아버지는 무엇이 그리도 신명이 나는지끊임없이 설명을 하고 있었다. 평소에 어머니로부터 바둑에 관하여 지독하게 무시당하고 잔소리를 들어온 터라 그 한을 모조리 보상이라도 받으려는 것처럼 보였다. 꿀돼지라는별명을 가진 먹성 좋은 작은 오빠는 아까부터 배가 고프다며 연신 내게 신호를 보내오고 초등 1,2 학년인 동생들은 저희들끼리 쿡쿡 찌르며 장난질을 하고 있었다. 나 역시 재미가없었지만 별도리 없이 꾹 참고 눌러 앉아 있었다.

 

“아빠! 나, 오줌 마려. 졸리고 배도 고파!” “나도!” “나도!” 막내의 불쑥 한 마디에 여기 저기서 자유를 달라는 거센 외침이 터져 나왔다. 아버지는 그제서야 마지못한 듯 입맛을 다시며기나긴 설법을 끝맺었다. “그럼 오늘은 여기까지만 하고 다음에 또 가르쳐 줄 테니 편을 갈라 너희들끼리 한 판씩 둬보거라. 나는 기원에 좀 갔다 오마. 엄마가 묻거든 기원 갔다고 하지 말고.” “네엣!!” 우리는 한시라도 빨리 이 상황을 벗어나고 싶어 목청을 높였다. 아버지마저 집을 비우자 우리는 온통 자유 세상을 만났다. 어머니는 저녁 늦게야 온다고 했고 아버지는 으레 그러하듯 밤중에 들어오기 십상일 것이기 때문이었다. 배가 고픈 우리는 냉장고를 열어 반찬들을 전부 꺼냈다. 김치를 담글 때 쓰는 커다란 스테레스 통을 찾아 비빔밥의재료가 될 만한 것들을 모두 쏟아 넣었다. 한쪽 구석에 놓인 전기밥통의 밥을 통째로 들어 거꾸로 물구나무를 세우니 밥은 담겨 있던 모양 그대로 거기에 고꾸라졌다. “히히히! 우핫핫핫! 꺌꺌!” 그 모양이 또 우스워 우리는 괴상한 소리로 웃었다. 덩어리 밥은 우리가 가진 다섯 개의 숟가락으로 인해 곧 해체되었고 여러 가지 반찬과 뒤섞어졌다. 김치국물과 고추장이 보태어 졌고 평소 어머니가 아끼던 참기름이 그 양을 가늠하기 힘든 채 줄줄이 굴러 떨어졌다. 한 사람 앞에 한 개씩의 몫이 돌아가게 계란 프라이도 부쳐 넣었다. 순식간에 거대한 양의 비빔밥이 탄생하였다. 밥그릇에 따로 담고 말고 할 새도 없이 빙 둘러앉은 오 남매는 통에 머리를 박고 숨도 쉬지 않고 먹고 또 먹어댔다. 보릿고개에 팔도를 떠돌아다니던 비렁뱅이들 마냥 그야말로 누군가 하나가 먹다 죽어도 모를 판국이었다. 그렇게 정신 없이 퍼먹다가도 우연히 숟가락이 부딪는 묘한 마찰음에 고개를 들고 자신과 부딪힌 상대방의 숟가락을 한 번씩 더 두들겨대며 낄낄거렸다. 김치 국물이 옷에 묻고 반찬이 튀어 엉망인 것도 아랑곳 않고 우리는 쉴 새 없이 먹어댔고 얼마 지나지 않아 둘러앉은 그대로 핥아먹기라도 한 듯 깨끗이 통을 비웠다. 앉았던 자리엔 콩나물 대가리며 여기 저기 흘린 김치 국물과 벌건 밥풀들만이 너저분히 널려있었다. 한동안 배가 부른 우리는 서로 뒤엉켜 말뚝 박기, 씨름, 권투, 레슬링, 숨바꼭질과 이불을 뒤집어 쓴 채 귀신 놀이 등을 하며 정신 없이 놀았다. 그러기를 얼마쯤 바둑 때문에 된통 곤욕을 치른 큰 오빠가 바둑판과 돌들을 가져오라고 하였다. “애들아, 우리 이걸로 치기 시합하자. 둘씩 편 먹고 하는 거다. 나하고 넷째가 같은 편이고 둘째, 넌 셋째와 편 먹고 막내는 깍두기다.” 우리는 바둑판을 가운데 두고서로 마주 보고 앉았다. 그리고 바둑돌을 일렬로 스무 개씩 판 위에 깔았다. 이 쪽에 흰 돌, 저 쪽에 검은 돌을 열 맞추어 깔고 오빠들은 상대방을 꼬나보며 의미심장한 시선을 교환하였다. 깔린 자신의 돌을 엄지와 중지를 이용하여 있는 힘을 다해 날려 상대방 돌을 맞추어 많이 떨어 뜨리면 이기는 게임이었다. 그러기를 몇 차례, 치고 받는 접전 끝에 언제부터인가 우리는 환호성을 지르며 마구 바둑 알들을 집어 던지기 시작하였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훼방 놓는 사람 없는 자유로운 분위기에 도취되어 바둑알을 던지고 또 던졌다. 미리짜놓은 편도 없었고 서로 봐주는 것도 없었다. 오직 돌을 던지고 잽싸게 몸을 피하면서 눈에 띄는 거면 무엇이든 집어 방패를 삼았다. 수 많은 흰 색과 검은 색의 바둑 알들이 쏟아지는 소나기 속에서 우리는 복날 먹히려다 고삐 풀려 도망친 개들마냥 괴성을 지르며 온 집안을 뛰어다녔다. “조용~! 조용해 봣! ! “ 순간 모두들 큰 오빠의 외침에 하던 동작을 멈추었다. 하얀 정적이 흘렀다. “딩~동!” “우~와! 아악, 엄마닷!” 대문 초인종 소리에 모두 까무러칠 듯 일제히 소리를 질렀다. 늦게야 온다던 어머니가 대문을 두드리고 있었다. 집안은이미 어찌 해볼 도리가 없을 정도로 온통 하얗거나 까만 것들 투성이였다. 사물은 무엇 하나 제자리에 반듯한 것이 없었다. 언제 그랬는지 아까까지만 해도 멀쩡했던 전기밥통 옆구리가 움푹 찌그러져 있었다. 호랑이 같은 어머니의 얼굴이 생각난 나는 슬며시 그것을 보이지 않게 돌려 놓았다. 우리는 바닥에 붙은 껌처럼 얼어붙어 서로의 얼굴만 바라보았다. 제일 먼저 정신을 차린 큰 오빠가 마지못해 대문을 열었고 야단을 맞아가며 밤늦도록 온 집안을 구석구석 청소했다. 학교 소풍날 보물 찾기를 하듯 우린 흩어진 바둑알을 찾아 다녔다.그리고 기원에서 돌아온 아버지에게 옮겨간 어머니의 타박을 귓등으로 들으며 늦은 저녁밥을 먹으면서도 바삐 눈알들을 굴리고 입모양을 만들며 내일은 무엇을 하고 놀지 참으로소란스러웠다. 여름 방학이 시작되는 그날 밤, 나는 온통 하얗고 까만 바둑돌들이 드넓은 밤하늘을 수 놓은 꿈을 꾸었다. 그것들은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았고 무척이나 아름답게 반짝거렸다. 마치 내가 꿈꾸었던 수 많은 유년 시절의 꿈들처럼 그것들은 하늘에서 나를 향해 어서 오라는 듯 저마다 팔매질을 해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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