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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 [문예정원] 당신들과의 동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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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박성희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19-02-21 15:56 조회1,329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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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af256061979c9e57edd6a1b00f50060_1550793402_1954.jpg박 성 희/ 캐나다 한국문협 회원

 

 

   눈, 입, 교감 맞추는 안테나는 필요 없다.

   보지 않아도, 말 안 해도, 감정 불능 이어도 좋다. 당신들과 함께 라면.

   잘난 사람이든 못난 사람이든 상관없다. 젊은이나 노인이나 성별도 따지지 않는다. 아무라도 내 동거인이 된다. 짧게는 채 몇 초, 길게는 며칠, 몇 년을 동거하게 된다. 옷깃을 스치듯 우연한 만남이거나 인연을 가장한 우연에서다.

   언제 어느 때든 가능하다. 

   택시를 타면 택시 운전사와, 버스를 타면 버스 승객과, 지하철을 타면 지하철 승객과 잠깐이나마 동거한다. 일대일 아니면 그룹, 혼성 동거다. 무심한 관계지만 어느 땐 목적지까지 가서도 헤어지기 싫은 때가 있고, 몇 날 며칠 그 후로도 오랫동안 마음속에서 동거한다.

   산에서는 나무와 풀, 꽃, 새와, 바다에서는 소라와 조개와 갈매기와, 들에서는 곡식과 잡초와 벌레와, 하늘을 보면 태양과 구름과 동거한다. 자연과 동화되는 것만으로도 동거가 된다.

   텔레비전을 보면 텔레비전 속의 주인공들과, 라디오를 켜면 목소리의 주인공들과, 책을 읽으면 책 안 주인공들과 동거한다.

   밤이 오면 별과 달과, 잠자리에서는 침구류와, 꿈속에서는 꿈에 본 이미지들과, 치장할 때는 화장품과 거울과 옷가지와 동거한다.

   때로는 개와 고양이, 여느 동물과도 동거를 하고, 내 발 밑의 개미, 지렁이가 사는 땅과도 동거한다. 비단 이뿐이랴. 슬슬 몸속으로 기어 들어오는 갖가지 과일, 야채, 음료수, 음식과 동거하고, 집안에 있는 가구와 전자제품과 동거한다. 내 주변의 모든 것, 상상하는 모든 것들과도 동거한다.

   그러곤, 한 남자와 사랑할 때 삼라만상이 합류되는 완전한 동거에 빠진다.

   음과 양이 합일 뙬 때 얻어지는 씨앗. 거기엔 우주가 들어있다. 이 세계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 인간과 자연과 동물과 식물과 사물과의 동거를 일시에 맛본다.

   한 공간에 있는 동안에는 누구라도, 무엇이라도 내 동거자다. 눈의 레이더망에 잡히고, 오감으로 다가오는 것들은 모두 내 동거자다. 그 순간만큼은 나는 당신들 것이다. 당신들은 내 것이다. 

   우리는 언제 어느 때라도 동거중일 수 있으며, 그 동거를 유쾌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나는 당신과 동거중이다. 내 마음을 훔친 당신은 이미 내 동거자다. 난 그런 동거가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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