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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 | 호주 양조사의 꿈 "가장 한국적인 수제 맥주 만들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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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중앙 쪽지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19-03-08 23:00 조회1,88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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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년 전 한 영국 특파원이 기사를 통해 "북한의 대동강 맥주가 고루한 한국 맥주보다 훨씬 맛있다"고 말한 적이 있다. 화끈한 음식 맛에 비해 맥주 맛은 따분하다는 내용이었다. 한국 맥주는 과연 맛이 없을까? 편의점만 가도 만원에 다양한 수입 맥주를 4캔이나 살 수 있는데 수입산 맥주의 저가공세 속에서 한국 맥주는 어떻게 어필하고 있을까?

 
 
메이저 회사에서 만드는 맥주와 달리 주로 소규모 양조장에서 만드는 수제 맥주는 다양한 개성을 품고 있다. 단순히 맛있고 없음의 차이가 아니라 차별화된 맛을 접할 수 있는 것이 수제 맥주의 매력이다. 현재 우리나라에는 100여 곳에서 수제 맥주를 생산하고 있다. 지난해 국내 수제 맥주 시장의 규모는 500억~600억 수준으로 추정된다. 라거 계열로 상징되는 대량 생산 맥주와는 달리 수제 맥주는 IPA, 에일, 스타우트 등 다양한 종류로 대중들에게 다가가고 있다.
 
 
강릉에 위치한 ‘버드나무 브루어리’는 40여년 전부터 있던 막걸리 공장을 개조해 만든 곳이다. 낡은 대들보 아래 새롭게 공간을 꾸며 맥주를 즐길 수 있는 펍과 수제 맥주 양조를 하고 있다. 지역 특산물인 창포, 쌀, 국화 등을 이용해 강릉의 색채를 맥주에 녹여냈다. 그 뒤에는 ‘한국적인’ 그리고 ‘맛있는’ 맥주를 만들고자 호주에서 온 수석양조사 필립 랭크모어가 있다. 그를 만나 맥주를 만드는 과정부터 즐기는 법까지 들어봤다.  
 

버드나무 브루어리의 수석양조사 필립 랭크모어를 맥주원료, 양조 도구들과 함께 촬영했다. 장진영 기자

 
왜 호주에서 한국으로 와 맥주를 만들기로 결심했나?
 
2008년 겨울에 한국에 처음 왔었다. 짜릿한 추위에 즐긴 여행이 강렬하게 남았다. 2014년 방문 당시 우연히 수제 맥주 관련 종사자들을 만날 기회가 있었다. 한국 시장이 이전보다 많이 다양해졌음을 느꼈고 거기에서 성장 가능성을 보았다. 호주에서 4년 넘게 양조 기술자로 일하는 중이었는데 마침 이곳에서 수석 양조사 제안을 받아 함께하기로 결심했다. 이후 한국에서 평생의 반려자를 만나 가정을 이뤘고 지금은 매일 서울에서 강릉으로 출퇴근하고 있다.  
 
 
강릉이 낯설지는 않았나?
 
강릉은 커피와 축제의 도시다. 이런 곳이라면 수제 맥주도 충분히 어필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이곳을 찾는 많은 방문객과 아름다운 환경에 매료됐다. 우린 40여년 전에 지어진 막걸리 양조장 건물에서 맥주를 만들기 시작했다. 초창기에는 이 지역 사람들이 우리를 낯설어하기도 했지만 금세 많은 관심을 가져주었다. 이 공간이 지닌 추억의 힘인 것 같다.  

버드나무 브루어리는 1926년에 설립된 강릉합동양조장터에 자리했다. 현재 건물은 1970년대에 다시 지어진것을 리모델링해 사용하고 있다. 장진영 기자

 
 
한국 맥주에 대한 첫인상은?
 
시드니에 있는 한국 식당에서 하이트 맥주를 처음 마셔봤다. 바비큐와 먹기에 좋았다. 요즘도 가끔 마시는데 강렬한 맛과 향을 가진 한국의 음식들과 매우 잘 어울린다고 생각한다. 맥주를 마시는 자리에서 새로운 친구들을 만나는 문화도 좋다.
 
 
수제 맥주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소규모 맥주 양조장에서는 대부분 에일 종류를 만든다. 에일은 라거 종류보다 표현의 다양성이 많다. 맥아, 홉, 효모, 물이 맥주의 주재료다.  맥아를 빻아 맥즙을 만들고  홉을 넣어 끓이는데 홉 넣는 시간과 종류에 따라 풍미가 달라진다. 냉각 후 바이젠, 에일, 사워에일 등 맥주 스타일에 따라 다른 효모를 넣는다. 그리고 발효(발효 후에 부재료를 첨가해 향을 더하는 작업을 하기도 한다), 탄산가스 주입 후 제품으로 내놓는다.

맥주를 즐기는 공간에서 양조장을 직접 볼 수 있다. 장진영 기자

 

다양한 맥주를 따르는 탭. 장진영 기자

 
미노리세션, 즈므블랑, 하슬라IPA 등 맥주 이름이 특이하다
 
한국적이고 지역의 특색을 반영한 맥주를 만들고 싶었다. 지역의 특산물을 이용해 실험적인 양조 방식으로 맥주를 만들고 있다. 쌀을 이용한 맥주인 미노리세션은 고두밥을 사용하는 한국 전통 술 만들기를 응용했다. 강릉 사천면 미노리에서 수확한 쌀을 쓴다. 즈므블랑은 ‘저무는 마을’이라는 뜻의 이 지역 즈므 마을에서 이름을 따왔고 국화와 산초 등이 들어간다. 하슬라는 강릉의 옛 지명이다.
 
 
한국적인 맥주를 지향한다고?
 
수제 맥주의 매력은 다양성이고 그 다양성은 지역의 이야기를 담는 것으로 완성된다. 그것을 한국적이라고 생각한다. 브루어리 구성원들 모두가 이 지역에서 ‘그저 돈 벌러 온 외지 사람들’로 비치고 싶지 않아 했다. 지역에 녹아들고 싶었다. 맥주에 창포, 쌀, 백일홍 등 강릉을 표현하는 재료들을 많이 이용한다. 지난 1월에는 브루어리가 위치한 홍제동 통장님에게 헌정하는 ‘우리 동네 히어로’ 맥주를 만들어 팔았다. 주변 어르신들 챙기면서 봉사활동도 많이 하시는 분인데 그분 이름을 딴 ‘박영순 에일’을 만들어 수익금을 모두 기부하기도 했다.

버드나무 브루어리에서 생산하는 맥주들. 장진영 기자

 
 
대기업으로 이직했다가 다시 돌아온 것으로 알고 있다
 
운 좋게도 큰 규모의 양조장(구스아일랜드코리아)에서 일할 기회가 생겼다. 1년 동안 이곳에서도 정말 많은 것을 배웠지만 큰 양조장은 운영이나 승인 절차 등이 더 체계적이었다. 일하면서 나를 돌아볼 수 있는 충고나 질문이 많았던 점도 좋았다. 1년쯤 지났을 때 버드나무 브루어리에서 양조설비를 늘린다며 다시 일하자는 제안을 했다. 뛰어난 유연성과 새로운 실험을 더 많이 할 수 있다는 점에 끌려 돌아오기로 결심했다.  
 
 
 
가장 자신 있게 내놓을 수 있는 맥주는?
 
강릉 쌀로 만든 미노리세션을 추천한다. 가벼운 질감과 상쾌함이 특징이다. 훌륭한 과일 향도 빼놓을 수 없다.

버드나무 브루어리의 양조팀. 왼쪽부터 유진봉 주임, 패트릭 맥케이 사원, 필립 랭크모어 수석 양조사, 박병륜 대리, 손명필 사원, 한대명 주임. 장진영 기자

 
 
맥주를 맛있게 즐기는 법이 있나?
 
수제 맥주의 가장 좋은 점은 다양한 선택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만약 4명의 친구가 주문하더라도 똑같은 맥주를 마시는 것이 아니라 각자 취향에 맞는 것을 선택하기를 권한다. 다양한 맛과 향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앞으로 하고 싶은 일은?
 
홉과 효모까지 100% 강릉 지역에서 재배한 재료로 맥주를 만들고 싶다. 재배에 어려움이 있겠지만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사진·글·동영상 장진영 기자 artj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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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워서 하는 인터뷰'의 줄임말로, 인물과 그가 소유한 장비 등을 함께 보여주는 새로운 형식의 인터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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