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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 [문예정원] 해토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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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반숙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19-03-14 12:32 조회2,42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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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b5848de2562aab99d519592b6b62a0b_1552591942_2177.jpg반숙자 / 캐나다 한국문협 회원

                                                           

 

  더딘 걸음으로 우수가 오고 있다. 이때쯤 이면 과수원집들은 과목의 가지를 전정하는 봄 채비가 시작된다. 우리도 사과나무 가지치기를 한다기에 따라 나섰다. 봄바람에 설늙은이 얼어 죽는다더니 옷깃을 파고드는 바람이 맵다. 

 

  그가 전지가위를 벼리는 동안 가스 불에 물주전자를 올려놓고 창문을 열어 젖뜨렸다. 건너편 배 밭에 아지랑이가 아른거린다. 

현기증 같은 아지랑이 사이로 거름을 주는 최씨 내외의 모습이 숨바꼭질을 한다. 저 밭에 배꽃이 피면 “배꽃 피는 내 고향 그리운 고향”노래를 하루 종일 불러 대던 때가 있었다. 

배꽃은 사과 꽃보다 먼저 핀다. 어쩌다 보름 때와 맞물리면 달빛을 휘감은 배꽃들의 꽃사태가 소복 여인 같다는 생각을 했고 까닭도 없이 서러워서 또 노래를 불렀다. 아마도 서른 아홉쯤의 나이였을 것이다.

 

   보온병에 커피를 타 가지고 밭으로 나갔다. 그 사이 그는 세상일을 잊어버린 사람처럼 사과나무 가지를 치고 있다.

 

   “차그락 ... ” 단음으로 퍼지는 가위소리가 오늘따라 생기 차게 들린다. 차그락 소리 뒤에 한, 두 박자 쉬는 고요가 호젓해서 귀를 재운다. 그 쉼표 사이로 꽃눈을 더듬는 그의 시선을 따라간다. 어떤 일에도 마음의 동요가 없는 그가 과일나무 순을 칠 때만은 소년 같은 얼굴이 된다. 무엇이 저 남자의 가슴을 설레이게 하는 것일까 

  버선목이래야 뒤집어보지, 옆에 있어도 알 수가 없다. 다만 생전에 아버님 말씀을 빌어보면 짐작이 간다. 

열여섯 살에 장가를 가서 열일곱에 낳은 외아들을 당신은 의사를 만들고 싶었다. 

의사도 힘든 내 외과 의사가 아니라 치과 의사였다. 그러나 아들은 의대지원을 포기하고 농대를 가서 농학사가 되었다. 

서울에서 좋은 직장도 버리고 낙향하여 과목을 심더니 주저앉았다. 아버님은 마음대로 안 되는 게 자식농사라고 낙심이 컸다.

 

 그의 말대로 사주팔자가 그랬던 것일까, 사과나무와 함께 있을 때 가장 생기 찼고 즐거워 보였다. 

그가 장년일 때는 사과나무가 4백여 주 넘었다. 지금은 체력에 따라 줄고 줄어서 3십여 주를 붙들고 있는데 

칠순을 훌쩍 넘긴 노인이 소독하고 가지 치고 거름 주며 열심히 한다. 어쩌면 그의 종교는 사과나무가 아닐까 싶기도 하다. 

지금 저 얼굴에 퍼지는 푸근한 미소는 나무와 대지와 바람과 나누는 그만의 교감 때문일 것이다.

 

  “이봐, 저 소리 들려?”하는 소리에 나무 가지를 줍다 말고 일어섰다. 

그는 나를 밭둑 밑으로 휘돌아 나가는 실 개울 쪽으로 돌려 세웠다.

 

 “쪼록, 쪼록, 쪼로록...”

 

  실 개울의 얼음이 녹아서 흘러가는 소리였다. 

뒷산 소나무 숲에는 아직도 잔설이 희끗한데 집 가까이 있는 실 개울은 녹아 흐르고 있다니...저 물소리에도 강약이 있다. 

조금 더 날씨가 풀리면 쫄쫄쫄 흐르다가 콸콸콸 흐를 것이고 그러다가 노래가 무르익으면 

제 흥에 겨워 밭둑이고 논둑이고 무너뜨릴 것이다.  

 

 물소리 덕분에 나무 밑에 앉아서 소풍이라도 온 듯 커피를 마셨다. 그 소리가 커피 물 내리는 소리와 

닮아서 더 목이 탔는지 모른다. 주운 나무를 다섯 단으로 묶고 나서 허리를 폈다. 아직은 고요한 들녘이다.

 멀리 큰 냇가의 버드나무가 파르레한 너울을 쓰고 누군가를 손짓해 부르는 것 같다.

 

   나무를 바라본다. 자라고 싶은 대로 자란 가지들이 얼키고 설켜 복잡한데도 바람은 거리낌 없이 불어 가고 

새들도 부딪침 없이 잘 날아다닌다. 그런데 나는 왜 자신이 주체하지 못할 세상의 부피와 무게를 스스로 짊어지고 

허덕이는지, 바람처럼 새처럼 살 수 없을까.  

 

   가지를 쳐주고 나니 모양새도 바르고 시원해 보인다. 사실 몇 그루되지 않는 사과나무 가지치기를 하는데 

내가 꼭 있어야할 이유는 없는데도 구태여 따라오는 것은 여기 토계리에  오면 머리가 맑아지고 무언가 

가닥이 잡혀지기 때문이다. 기도가 잘 되지 않거나 글이 잘 써지지 않는 것도 가슴과 머리가 너무 많이 

얼켜 있기 때문 일 것이다.

 

   다시 그를 바라본다. 바람에도 얼굴이 타는지 빛나는 햇빛에 주름살 깊은 얼굴이 오소소하다. 

아버님 말씀처럼 세상 일 잊고 농사만 짓는 그가 나도 때로는 답답했다. 지금도 세상의 잣대로 그를 바라보면 

별 볼 일없이 늙어버린 노인이다. 그러나 그가 누리는 평화와 自足을 가까이서 짚어보면 그는 누구보다도 

자기 인생을 사랑했고 자기 답게 살았다는 것을 요즘 에서야 느낀다. 

나야말로 30여 년의 세월을 거쳐 서야 그를 하나의 껍데기가 아닌 존재로서 보게 되는 것일까.

 

  얼마 전에 읽은 권희돈 교수의 글이 생각난다. 성공한 사람보다 행복한 사람이 아름답다는...성공을 삶의 

기준으로 삼는 사람이 불행한 까닭은 성공하기 위하여 욕망의 끈을 놓지 못하기 때문이라 했다. 

그러나 행복을 삶의 기준으로 삼는 사람은 욕망의 끈을 놓을 줄 아는 사람이기에 외면적으로는 초라해 보일지 

모르나 내면적으로는 풍족한 기쁨을 느낀다는 것이다.

 

   이제야 내 가슴에도 훈풍이 부는 것일까. 몸은 와 있어도 마음은 늘 유배지를 떠돌던 시절, 밤이면 아무도 

몰래 마음의 보따리를 수없이 쌌다. 그러다가 새벽이 오면 밭으로 달려 나가 간밤의 번뇌를 잊어버리고 

나무들과 뜨겁게 조우했다. 어쩌면 그때, 나는 사람보다 사과나무가 좋아서 여기를 떠나지 못했는지도 모른다. 

 

 오후에는 실 개울을 따라 내려가서 걸레를 빨았다. 쪼록거리며 흐른 물도 작은 웅덩이가 되어 걸레를 두드리는 

방망이질이 즐거웠다. 방망이 소리가 동네에 들렸는가 대낮에 개 짖는 소리가 외딴 터까지 들려온다.

 

  이제 머지않아 봄이 오면 대지는 왕성한 생식력으로 내시<內侍>의 씨라도 받겠다고 아우성치며 무리무리 

새 생명을 탄생시킬 것이다.

 

'해토머리' - '봄이 되어서 얼었던 땅이 녹아 풀리기 시작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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