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가 산책] 개 짖는 마을 > LIFE

본문 바로가기
사이트 내 전체검색


LIFE

문학 | [문학가 산책] 개 짖는 마을

페이지 정보

작성자 유병수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19-05-24 09:38 조회1,417회 댓글0건

본문

 

6e321e853a87602a2e3b40e98cf14795_1558715888_0879.jpg유병수 / 시인. 소설가 

 

 

 

집 앞 마당에 옆방 아주머니가 키우던 강아지 한 마리가 있었다. 강아지라고 하기엔 조금 큰 누런색 털을 가진 개였는데 순진하게 생긴 데다가 아무나 보면 반가워 꼬리를 흔들었다.

 

내가 사는 집은 언덕 길 마당이 깊은 집이어서 마당에서 보면 지붕 위 높이로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조그만 고샅 밭 길이 있어 그 길을 지나다니는 사람들에게 마당이 모두 들여다 보였다.

 

열 평 정도 되는 마당에는 세 뼘 높이의 축대를 쌓아 밭을 만들어 옆방 아주머니가 배추와 호박, 옥수수, 상추 같은 것을 심어 키워 먹었다. 그 축대 밑에는 누런 강아지가 묶여 있는데, 그래도 밤이면 고샅 밭 길로 지나다니는 발소리에 짖어대며 나름대로의 집지기 역할을 충분히 해냈다.

 

밤늦게 들어와 문을 열고 바라보면 그 강아지가 엎드려 있는 것이 보여 늘 먹을 것을 주곤 했더니 늦은 밤 내가 들어오는 발소리를 어김없이 알아차리고 꼬리를 흔들어댔다.

 

하루 종일 마당에 묶여 주인의 집을 주인의 잠을 지켜 주던 강아지.

 

 

 

옆방이 이사를 가고 새로운 사람들이 이사를 왔다. 국민학교에 다니는 여자아이 둘, 중학생 남자아이 하나, 그리고 삼십 대 후반에 접어든 부부, 그렇게 다섯 식구였다. 무력하도록 너무 순진해 보이는, 그래서 가난할 수밖에 없는 새 이웃이었다. 보기에도 가난한 살림을 풀며 이사 온 그들도 역시 개 한 마리를 데리고 왔다. 가난한 동네에 개들이 많은 이유는 무엇일까? 그들에게는 아직 응접실이나 소파 같은 세련된 도시의 문명 생활과는 달리 마당이나 텃밭에다가 무언가를 키우고 재배해야 한다는 농경적 사고가 강하게 있는 것일까. 아침이면 개 밥그릇에 모여드는 참새들, 그 참새들을 잡으려고 벽 한 쪽 구석에서 몸을 잔뜩 웅크리고 뛸 자세를 하고 있는 고양이, 이런 풍경들은 머지않아 사라지겠지만...

 

 

 

새로 이사 온 아이들이 키우는 개는 크지는 않지만 너무 늙어서 가끔 쉰 소리를 낸다. 때로 그 소리는 옆방 아저씨가 아이들을 부르느라고 소리치는 목소리와 흡사하다. 이 동네는 그야말로 개천지다. 웬 개들을 그렇게 키우는지 한 집 개가 짖으면 동네 개들이 다 짖는다. 내 방 창문 아래 집들을 끼고 막다른 골목이 있는데 그 골목에 사는 사람들도 모두 개를 키우고 있었다. 그 골목을 지나다니는 사람들은 그 골목에 사는 사람들과 골목을 알고 있는 사람들 뿐, 그래서인지 그 골목에 사는 사람들이 키우는 개는 그 골목 안에 전부 풀려 있다. 모두 여섯 마리 정도가 된다.

 

창문을 열고 보면 내 방 축대 밑 골목에 개들이 뛰논다. 밤늦게 심심할 때면 창문을 열고 골목을 향해 먹을 것을 던져 주었더니 어느덧 창문만 열면 동네 골목 개들이 창문 아래로 다 모여든다.

 

 

 

여름이었다. 강아지 한 마리를 또 데려왔는데 조그만 녀석이 목에 방물을 달고 하루 종일 마당과 텃밭을 달랑거리며 다녀 이름이 방울이었다. 얼마나 장난이 심한지 텃밭을 망쳐 놓기도 하고 밥그릇을 넘어뜨려 마당을 어지럽히기도 했다. 어느덧 밤에 들어올 때마다 방울이에게 먹을 것을 주었더니 내가 올 때면 방문 앞에 턱을 바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한 번은 장맛비가 하루 종일 오던 밤이었는데 비 때문에 마당에서 뛰어놀지 못해 답답했는지 내 방 앞에서 무슨 비닐봉지 같은 것을 물어와 장난을 치고 있었다. 그때 나는 문을 열어 놓고 술을 마시고 있었는데 갑자기 나도 심심해서 장난기가 발동했다. 방울이에게 술을 먹여 보자는 생각이 들어 조그만 접시에 오징어 몇 점을 올려놓고 그 위에 술을 부어 함께 방울이에게 내밀었다. 워낙 먹성이 좋은 그 녀석은 술 냄새 때문인지 처음에는 꺼려 하다가 다시 오징어를 건져 먹으면서 그곳에 탄 술까지 다 핥아먹어 버렸다. 반응은 금세 왔다. 조그만 강아지가 갑자기 비틀거리면서 기운이 넘치는 듯 비 내리는 마당을 아랑곳 않고 마구 뛰어다녔다. 괜스레 겁이 나 뛰어다니는 방울이를 붙잡아 제 집에 넣었더니 가쁜 숨을 몰아쉬면서 힘이 드는 듯 낑낑거리면서 쓰러져 버리는 것이 아닌가. 곧 잠들겠지 하는 생각에 방으로 돌아와 버렸다.

 

그런데 다음날 아침 시끄러운 소리에 잠이 깨어 나가 보니 옆집 아이들이 방울이를 안고 방으로 부엌으로 다니며 발을 동동 구르고 있는 것이었다.

 

 

 

이야기인즉슨 아침에 아이들이 일어나 마당으로 나왔는데 방울이가 비를 맞으며 마당에 쓰러져 있더라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어디선가 쥐약을 주워 먹어 그런 줄 알았는데 방울이를 안고 몸에 젖은 물기를 닦아 주다 보니까 입에서 술 냄새가 나는 것이 아닌가. 의아해 하는 아이들을 보며 옆집 아주머니는 눈치채셨는지 수건으로 따듯하게 방울이 몸을 싸서 다시 제 집에 넣었다. 나는 매우 겁이 나고 걱정이 되었다. 창피해서 아무 말도 못하고 외출하다가 방울이 집을 들여다보니 숨은 쉬고 있는데 정신을 잃었는지 흔들어 깨워도 꼼짝하지 않았다.

 

밖에 나가서도 하루 종일 방울이 걱정으로 일이 잘 되지 않았다. 몇몇 사람에게 그 사실을 이야기했더니 술을 못 마시는 성인 여자들도 소주 세 잔 정도면 정신을 못 차리는 경우가 있는데 어린 강아지에게 그 정도의 분량을 주었다면 치사량이 될 수도 있을 것이라고 했다. 접시 위에 조금 따라 주었을 뿐인데 그것을 다 먹어치워 버릴 줄이야.

 

저녁에 급히 집으로 돌아와 먼저 방울이 집을 보니 방울이가 없었다. 혹시 하는 불길한 생각이 들어 마당 여기저기 살펴보았더니 글쎄 방울이가 언제 깨어났는지 내 방문 앞에 앉아있는 것이 아닌가. 나를 보더니 어슬렁 어슬렁어슬렁 걸어오면서 꼬리를 흔드는 것이 아닌가. 그때 옆집 아주머니가 나오면서 오후 두 시쯤 방울이가 깨어났다고 앞으론 술 먹이지 말라며 빙긋 웃으며 들어갔다. 얼마나 반가웠는지 그날 저녁 나는 방울이에게 맛있는 한 끼의 식사를 대접했다. 얼마후 그 방울이는 옆집 아주머니가 다른 집에  줘버렸기 때문에 더는 볼 수가 없었다. 그러나 가끔 장맛비 오는 여름밤이면, 덥고 지루해서 잠이 안와 혼자 술 마시는 밤이면, 내 방문 앞에서 턱을 괴고 앉아있던 그 강아지의 착한 눈빛이 생각날 것이다. 

 

 

 

어려서부터 강아지를 무척 좋아했는데 우리 집은 강아지가 잘 안되는 축에 속했다. 이상하게 강아지만 데려오면 며칠 안에 죽고 또 어느 정도 길러 정들었다 싶으면 병들고 마는  것이었다. 한 번은 어렸을 때 이름이 먹돌이라는 강아지를 어려서부터 데려다 키웠는데 잘 자라다가 어느 날부터 눈에 눈곱이 끼고 시들시들 말라 가는 것이 아닌가. 나중에 누군가에게 들은 이야기인데 그 개가 상사병이 걸렸다고 했다. 그때는 상사병의 의미도 잘 모르고 해서 그 병에 대해 관심은 없었지만 지금 생각하면 무슨 개가 상사병이 다 걸리나 하는 생각에 웃음도 나지만, 그래서인지 늘 밖에 나가 들어오지 않고 가끔 나가서 찾아보면 개천가에 그 개가 우두커니 앉아 있던 기억이 난다. 개는 옛날부터 사람 곁에서 사람과 함께 자라왔다. 아무래도 사람 주변에는 개라는 가축도 있어야 하지 않을까. 그래서 사람이 오면 짖기도 하고 꼬리도 흔들고 밤중에 동네 개 짖는 소리에 잠이 깨기도 하고......, 그런 것이 인간적이지 않을까.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플러스로 보내기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LIFE 목록

Total 5,754건 8 페이지
게시물 검색
회사소개 신문광고 & 온라인 광고: 604.544.5155 미디어킷 안내 개인정보처리방침 서비스이용약관 상단으로
주소 (Address) #338-4501 North Rd.Burnaby B.C V3N 4R7
Tel: 604 544 5155, E-mail: info@joongang.ca
Copyright © 밴쿠버 중앙일보 All rights reserved.
Developed by Vanple Netwroks Inc.
모바일 버전으로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