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가 산책] 두 병사의 저녁식사 > LIFE

본문 바로가기
사이트 내 전체검색
Vancouver
Temp Max: 7.57°C
Temp Min: 4.04°C


LIFE

문학 | [문학가 산책] 두 병사의 저녁식사

페이지 정보

작성자 유병수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19-05-31 09:17 조회1,249회 댓글0건

본문

 

 

 

 

 

                    5d9004cb194ee1819348fdc3a26f84ec_1559319415_8955.jpg유병수/시인. 소설가

 

 

 

인생을 오래 산 사람들이 들려주는 삶의 지혜, 덧없음에 대한 통찰, 절망의 극복, 행복의 발견, 이런 가르침들은 이제 우리를 어지간히 식상하게 한다. 그 가르침은 분명 생의 어두운 골짜기에서 우리가 방황할 때마다, 어디선지 모르게 솟구쳐 오르는 저 내밀한 힘의 근원이 되고 있음에는 틀림없다. 사실 하루하루를 살아 낸다는 것, 그것은 점점 커지는 바윗덩어리를 굴리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러나 삶이 진정 그렇게 무겁고 버겁기만 한 것일까. 좀 더 색다른 존재 감각이 있지 않을까. 가령 총격으로 불이 붙은 비행기에서 뛰어내린 두 병사가 낙하산에 매달려 저녁에 먹을 된장찌개 얘기를 하는 것과 같은…. 

 

적당히 허기를 느끼는 저녁, 골목길 집에서 퍼져 나오는 된장찌개 냄새는 일에 시달리고 피곤에 지쳐 굳은 우리의 물리적인 사고를 인간적으로 풀어주며 다시 따뜻한 마음으로 되돌아오게 하는 성분이 있다. 요즘은 청국장을 끓이는 집이 거의 없지만 옛날에는 서울에서도 청국장을 끓여 먹는 집이 꽤 많이 있었다. 나는 어린 시절을 시골에서 보냈다. 저물녘 이집 저집에서 풍겨 나오는 청국장 냄새, 그 냄새는 밖에서 더 놀고 싶은데 자꾸만 부르시던 등 굽은 할머니의 모습이 함께 섞여있다. 그래서 그런지 나는 꽤 일찍 서울에 올라왔는데도 그런 토속음식에 대한 향수가 있다.

 

간장을 달여 넣고 돌로 눌러 묵힌 콩잎, 된장에 오래 박아 두었던 무짠지, 시다 못해 시금털털한 김치, 뭐 그런 오래 묵히고 푹푹 썩히고, 숙성된 후 코를 찌르는 음식의 맛, 구수하고, 지린, 삶의 오래된 맛 같은 것. 

 

오늘은 두 병사에게 줄 된장찌개를 만들어 보자.  된장찌개 냄새가 불러일으키는 기억 속으로 빠져들자. 가장 맛있고 먼저 생각나는 것은 옛날 할머니가 끓이시던 된장찌개, 아무것도 넣지 않고 된장에 마당에서 막 따 온 풋고추와 물만 조금 넣고 걸쭉하게 끓인 된장찌개에 밥을 비벼 먹는 맛이 최고지만 아무래도 그 맛은 나지 않는다.

 

하나의 된장찌개를 만들기 위하여 우선 메주라는 것에 대해 알아야 할 필요가 있다. 메주, 콩을 삶아 뭉친 덩어리. 지금은 메주를 쑤는 집이 거의 없지만, 워낙 편해져서 슈퍼나 체인점에 가면 고향 맛 메주나 아예 고향 맛 된장까지 포장되어 나오지만, 옛날 콩으로 메주를 쑤어서 네모난 벽돌처럼 만든 후 새끼줄에 묶어 겨우내 방에 걸어 말리던 메주 냄새, 어렸을 적 얼마나 그 냄새가 싫었던가. 방에 들어가면 배여 있던 메주 냄새는 지금 생각해도 그리 좋지는 않다. 

 

메주는 대개 가을에 쑤어서 겨울에 말린다. 겨우내 말린 메주를 곰팡이가 쓴 것을 털어내고 봄볕에 더 말린 후 말린 메주와 소금물을 큰 독에 넣고 40여 일간 띄운다. 그때 숯과 붉은 고추를 함께 넣고 띄우는데 숯과 고추는 방부제 역할도 하지만 일 년 내내 먹을 장에 잡귀가 끼지 않도록 하는 의미도 있다. 어느 지방에서는 잡귀가 끼지 않도록 장을 띄울 동안 왼쪽으로 꼰 새끼줄을 항아리에 인줄치듯 두르는 곳도 있다고 한다. 

 

40여 일 동안 독 속에서 발효된 메주를 꺼내어 다른 항아리에 담고 눌러 밀봉을 한 후 항아리 뚜껑을 덮고 장독대에 두면 햇빛에 의해 항아리 속의 메주는 잘 숙성되고 비로소 된장의 맛을 낸다. 발효되고 숙성된 된장에는 아시다시피 최고의 항암성분이 있다.  

 

이렇게 만들어진 된장을 퍼서 된장찌개를 만든다. 우선 냄비에 쌀뜨물을 넣는다. 그냥 물을 사용하지 않고 쌀뜨물을 사용하는 이유는 쌀뜨물과 된장이 어우러져 맛을 돋우고 뭉친 된장을 잘 풀어내기 때문이다. 쌀뜨물을 담은 냄비에 된장을 풀고 김치를 씻어서 조금 넣은 후 멸치를 넣고 끓인다. 요즈음은 조미료를 사용하지만, 어느 정도 국물이 끓으면 맛을 본다. 이때 싱거운듯하면 간장을 넣어도 좋고 된장을 더 넣어도 좋다. 맛을 본 후 끓고 있는 된장찌개에 준비한 감자, 양파, 호박, 마늘, 파, 두부 순으로 넣고 끓인다. 잠시 후 맛을 본다. 뭔가 빠진 듯한 느낌일까? 조미료를 조금 넣어 준다. 마지막으로 풋고추를 썰어 넣고 뚜껑을 덮고 끓인다.

 

펄펄 끓는 된장찌개, 넘치는 된장찌개, 불을 조금 줄이고 된장찌개 냄새가 번지는 주방에서 잠시 그 냄새가 불러일으키는 명상에 빠진다. 가부좌도 필요 없고 심호흡도 필요 없고 명상음악도 필요 없는 된장찌개에 대한 명상. 지금은 허물어져 가는 옛집, 내가 외로울 때일수록 그리워지는 그 옛집에서 풍겨 오던 된장찌개 냄새, 그 냄새는 아직도 내 추억의 풍금 건반을 모나지 않게 건드린다. 

 

 

낙하산에서 내린 두 병사가 나누는 이 된장찌개에 대한 부드러운 상상이 나를 즐겁게 한다.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플러스로 보내기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LIFE 목록

Total 5,739건 6 페이지
게시물 검색
회사소개 신문광고 & 온라인 광고: 604.544.5155 미디어킷 안내 개인정보처리방침 서비스이용약관 상단으로
주소 (Address) #338-4501 North Rd.Burnaby B.C V3N 4R7
Tel: 604 544 5155, E-mail: info@joongang.ca
Copyright © 밴쿠버 중앙일보 All rights reserved.
Developed by Vanple Netwroks Inc.
모바일 버전으로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