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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 | 영화 ‘기생충’ 반지하 곰팡이 냄새까지 낚아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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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중앙 쪽지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19-06-10 01:00 조회1,54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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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영화에 나오는 공간이 또 하나의 배우라고 생각했어요. ‘기생충’ 배우들 전부 엄청 연기 잘하셨잖아요. 그런데 중요한 공간이 세트처럼 보인다? 생각하기도 싫었습니다.”
 
봉준호 감독과 ‘기생충’을 함께한 이하준 미술감독의 말이다. 벌써 700만 관객을 모은 이 영화는 극과 극의 두 공간, 기택(송강호)네 반지하와 박사장(이선균)네 대저택이 배우들의 연기 못지않게 인상적이다.
 
그 실체는 칸영화제 심사위원장 이냐리투 감독도 눈치채지 못했다. 봉 감독에게 “어디서 그런 완벽한 집(박사장네)을 구했냐”고 물었다가 세트란 말에 깜짝 놀랐을 정도. 이하준 미술감독이 이메일 인터뷰을 통해 들려준 놀라운 디테일은 이뿐만이 아니다.
 

반지하에 사는 기택(송강호)네 식구들은 장남 기우(최우식)를 시작으로 박사장네 부자 동네(두번째 사진)에 다가간다. 박사장 아내 연교(조여정)의 표정처럼, 계단(마지막 사진)은 이 영화에서 놀라운 일이 벌어지는 중요한 장치가 된다. [사진 CJ엔터테인먼트]

“같이 일하는 미술팀에게 반지하 동네의 경우 만들려 하지 말고 ‘구해오자’고 했어요.”
 
실은 기택네 집만 아니라 그 동네가 모두 세트. 20동의 건물에 40가구 가까이 산다는 설정으로 경기도 고양 스튜디오에 지었다. 재개발 지역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오래된 실제 벽돌을 실리콘으로 떠서 벽돌을 만들었는가 하면, 문짝·새시·방충망·유리창·대문·연통·전깃줄 등을 미술팀·소품팀·제작부까지 나서 몇 달에 걸쳐 구하거나 사들였다.
 
미술팀은 영화에 안 나오는 동네 사람들 스토리까지 만들었다. “할머니가 아들딸 분가시키고 혼자 폐품을 주우며 근근이 생활하는 집” 앞에는 폐종이가 가득한 유모차를, “근처에서 떡볶이 장사를 하는 집”은 창문 앞에 고추장·오뎅 등 재료 상자를 쌓아두었다.
 
디테일은 중요한 모티브인 ‘냄새’도 예외가 아니다. 그는 “불편하지 않을 정도의 음식물 쓰레기까지 소품팀이 만들어 촬영 때 파리 모기가 윙윙거리게 했다”며 “반지하 집에서 미술팀·소품팀이 삼겹살을 구워 가스레인지 주변에 기름때를 만들었다”고 전했다. 여기에 오래된 옷가지, 가구 등이 들어오면서 “지하 특유의 곰팡이 냄새”도 생겼다. “영화에는 보이지 않지만, 배우와 스태프가 실제로 분위기를 느꼈으면 했어요. 그래야 더 몰입되니까.”
 
기택네 집은 바닥보다 높이 솟은 변기 등 기이하고도 현실적인 디테일이 두드러진다. 반지하를 꾸미는 데는 봉 감독의 정교한 시나리오, 미술팀의 자료수집에 그 자신의 체험이 더해졌다. “대학 때 잠시 선배와 자취했던 반지하의 기억을 몸으로 더듬어 계단의 높이 같은 걸 그렸다”고 했다. 계단은 양쪽 집 모두에서 중요한 부분. 그는 “계단을 이렇게 많이 만들어보기는 처음”이라며 “공간의 특색과 배우의 연기에 맞게 수정하고 또 수정하며 만들었다”고 했다.
 

반지하(위 사진)에 사는 기택(송강호)네 식구들은 장남 기우(최우식)를 시작으로 박사장네 부자 동네에 다가간다. 박사장 아내 연교(조여정)의 표정처럼, 계단(아래 사진)은 이 영화에서 놀라운 일이 벌어지는 중요한 장치가 된다. [사진 CJ엔터테인먼트]

그와 봉준호 감독의 작업은 ‘옥자’에 이어 두 번째. 앞서 봉 감독이 제작한 ‘해무’도 함께했다. 김기영 감독의 1960년 작품을 임상수 감독이 리메이크해 2010년 칸영화제에 초청된 ‘하녀’도 그의 솜씨다. ‘하녀’에 나오는 부잣집의 경우 내부는 세트, 외부는 로케이션이었지만 ‘기생충’의 박사장네는 “내·외부 모두 100% 세트”다. 정원에는 농장에서 직접 고른 향나무를 한 그루 한 그루 방향·위치를 정해가며 심었다. 비가 쏟아지는 장면 때문에 잔디를 깔기 전 배수 공사도 필수. 촬영이 진행된 지난 여름 극심한 더위로 잔디가 죽어 다시 심는 등 갖은 일을 다 겪었지만 그는 “덕분에 조경에 대한 공부가 어마어마하게 쌓였다”고 전했다.
 

반지하(첫번째 사)에 사는 기택(송강호)네 식구들은 장남 기우(최우식)를 시작으로 박사장네 부자 동네(두번째 사)에 다가간다. 박사장 아내 연교(조여정)의 표정처럼, 계단은 이 영화에서 놀라운 일이 벌어지는 중요한 장치가 된다. [사진 CJ엔터테인먼트]

영화에 유명 건축가가 지은 것으로 나오는 박사장네는 대지 약 2000㎡(600평), 1층 면적만 660㎡(200평)쯤 되는 거대한 규모다. 봉 감독은 시나리오를 쓸 때부터 인물들의 동선에 맞춰 상세한 실내 구조를 구상했다. 하지만 실제 건축가들에게 물어보니 집을 그렇게 짓진 않는단 얘기가 돌아왔다. 둘 사이를 맞추는 게 숙제였다. “감독님이 시나리오 쓸 때 생각한 평면도를 보면서 내부 디자인을 시작했고, 국내외 유명 건축가들의 레퍼런스를 보면서 외형을 연구했습니다. 내부와 외부를 따로 찍는 게 아니라 그냥 집이어야 했거든요.” 세트 밖과 연결도 자연스러워야 했다. 부잣집 동네 장면의 박사장네 차고와 외벽도 세트. 세트를 만들어 촬영한 뒤 골목과 CG(컴퓨터그래픽)로 합성했다.
 

연교 아들 다송(정현준)의 인디언 텐트는 미술팀·소품팀이 조립방법까지 연구해 직접 만들었다.

그는 ‘독전’ ‘관상’ ‘도둑들’ ‘미인도’등의 미술감독에 앞서 2003년 ‘국화꽃 향기’ 데코팀으로 출발했다. “연극·뮤지컬·오페라 같은 무대미술을 하다가 선배님을 통해 영화미술을 처음 시작했던 것이었는데, 너무 모르고 부족했죠. 그러면서 그만둬야지, 가 아니라 내가 언젠가는 하고 만다는 오기가 생겼어요.” 그는 “스승이신 주병도 미술감독님, 민언옥 미술감독님이 늘 ‘진정성있게 일하라’고 한 말이 귀에 안 들어왔는데 지금은 저도 ‘욕심부리지 말고, 자만하지 말고, 끝까지 하자’고 이야기한다”며 “그게 진정성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봉 감독과 작업한 경험은 이렇게 전했다. “맞아요. ‘봉테일’ 감독님 맞아요. 모든 계획과 구상이 머릿속에 정리되어 있고, 그걸 혼자만 알고 있는 게 아니라 스태프에게 정말 상세히 설명해주거든요. 엄청나게 커다란 배를 능수능란하게 잘 움직이는 선장님 같아요. 가능과 불가능을 타협할 줄 알고, 변수에 대한 대처가 좋고. 무엇보다 현장에서 큰소리가 없으세요.”
 
나원정 기자 na.won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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