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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 [문예정원] 정원 낙수(落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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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선희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19-06-14 09:10 조회1,01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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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d13c3d021d0206064150b561fdb3c1b_1560528623_6842.jpg김선희 / 캐나다 한국문협 회원

 

“이게 무슨 꽃인지 알아? 개나리야 개나리.” 

할아버지가 손주와 함께 나들이를 나오신 모양이다. 자분자분 걸어가다 개나리를 발견하곤 발을 멈추고 꽃 이름을 알려주신다. 개나리보다 귀여운 손자에게 하나라도 더 가르치고 싶은 것이다. 가르친다 기보다 개나리로 손주와 대화를 나눌 수 있어 더 기쁜 마음이 목소리에 묻어 있다. 음정이 잘 맞지 않지만 노래도 정성껏 불러 주신다. ‘나리나리 개나리 입에 따다 물고요 병아리 떼 쫑쫑쫑 봄나들이 갑니다’

“어머, 여긴 아직도 벚꽃이 피어 있네. 예쁘다.” 

중년의 여성들이 친구들과 시간을 내서 바람 쐬러 나온 듯하다. 서울보다 기온이 낮은 지역이라 서울에선 다 져버린 꽃들을 여기서는 아직 감상할 수 있으니 반가운 모양이다. 마음이 가벼운 만큼 목소리도 한 톤이 올라가 있다. 

“자기가 그때 그렇게 말해줘서 고마웠어. 같이 얘기할 수 있어서 진짜 좋다.” 

젊은 연인들이다. 멀리까지 나온 데이트라 멋지게 차려 입었다. 목소리에 사랑이 뿜뿜 뿜어져 나온다. 손 꼭 잡고 함께 걸어가는 모습이 달달하다.

“자, 이쪽 보세요. 여기에 햇빛이 떨어지죠? 여긴 그늘이구요. 여기에 초점을 맞추면 됩니다.”

간혹 출사 나온 사진 동호회도 보인다. 봄 풍경을 찍으러 나온 회원들과 선생님이 서로 열심이다. 목소리 큰 선생님의 설명에 역시 커다란 목소리로 ‘그게 아닌 것 같은데요’라며 회원이 질문한다. 선생님은 ‘그러기에 빠지지 말라고 했잖아요. 저번에 다 설명했는데 딴 소리시네’ 하며 웃음 섞인 타박도 한다. 공부하는 시간이지만 모두 살짝 들떠 있는 건 어쩔 수 없다. 야외에 나오니 기분이 가벼워지고 상쾌한 것이다.

“여기에도 사람이 사나 봐, 신기하다. 업무용 건물만 있는 줄 알았는데.”

딱 봐도 가정집인 우리 집을 보고 하는 얘기다. 이럴 땐 약간 어처구니가 없기도 하다. 카페나 상점, 갤러리들이 많은 지역에 살다 보니 받는 오해이다. 

간혹 토닥토닥 싸우면서 가는 커플도 있다. 서로 뭔가 불만이 있던 모양이다. 그래도 이렇게 데이트하는 중에 서로 섭섭한 걸 털어버리면 오히려 더 끈끈해질지 모른다. 모처럼 바람 쐬러 나왔을 텐데 잘 해결되면 좋겠다고 혼잣말을 해본다.

정원에는 여러 가지 낙수가 있다. 아름다운 풍경과 함께 이런저런 생각들이 굴러다닌다. 정원이 감춘 생각들을 보물찾기하듯 찾으면 글 감도 되고 명상도 되고 치유도 된다. 집 앞을 지나다니는 사람들의 대화도 폭포에서 튀어나온 물방울처럼 굴러 떨어진다. 마당에서 구부리고 앉아 풀을 뽑다 보면 시간 가는 줄 모른다. 길가에 면해 개나리 울타리가 자라고 있어서 구부리고 있는 내가 보이지 않으니 사람들은 거리낌 없이 이야기하며 지나간다. 남의 대화를 듣는 게 민망한 마음이 들지만 들리는 걸 어쩌랴.

할아버지, 할머니와 손주들의 대화가 들리면 마음이 따뜻해진다. 나도 곧 저런 손주를 볼 텐데 얼마나 귀엽고 사랑스러울까, 마음이 앞서간다. 젊은 연인들을 보면 상큼하고 기분이 환해진다. 둘의 앞길에 좋은 일만 가득하길 빌어준다. 나이 든 부부가 유유자적 산책하며 얘기를 나누는 모습은 잔잔한 노을이 펼쳐진 듯해서 내 마음도 온화하고 부드러워진다.

허리 숙이고 잡초와 씨름하다 보면 힘들고 금방 지친다. 의도치 않게 지나가는 방문객들의 대화가 들리면 지루하지 않다. 멀리서 친구들이 와준 것만 같다. 사람 사는 이야기를 들려주고 흥미로운 생각거리도 제공해주는 고마운 방문자들이다. 정원은 이렇게 사람과 또 세상과 연결해주는 중간지대의 역할도 한다. 정원은 의외의 즐거움이 가득한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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