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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 [바다건너 글동네] 드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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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섬별 줄리아 헤븐 김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19-06-19 14:15 조회1,44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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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aacbde764ac554ec16fd166f58d9032_1560978928_5181.jpg섬별 줄리아 헤븐 김 

 

 

 

 

올 해 한국 나이로 육십이 되었다. 해가 바뀌는 2020년 내년 생일에는 드디어 환갑이 된다. 어린 시절 내 기억 속의 환갑을 맞으신 할머니나 할아버지를 보면 무척 늙었다고 생각했다. 어쩌면 환갑이라는 말 자체가 이미 늙은 사람이라고 단정을 짓고 있었는지는 모른다.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뿐만 아니라 그들이 사용하는 말투나 행동 역시 충분히 내겐 늙은 사람이라고 불릴 만 했다.

 

이른 아침부터 만원 버스에 시달리고, 학교 수업과 보충수업 때론 학원과 과외공부로 지친 몸을 버스에 실었을 때마다 그들은 한결 같았다.교과서와 참고서로 팔이 빠질 듯이 무거운 책가방 조차 그들은 자신의 몸이 늙었다는 이유로 학생들의 가방을 받아주는 일이 거의 없다. 게다가 쏟아지는 잠을 피하지 못하고 덜컹거리는 버스차창에 세차게 머리를 부딪쳐 가며 졸다 가는 불시에 봉변을 당할 수도 있다. 자리를 양보 안 한다고 무안을 주기도 하고, 학교에서 뭘 배웠냐고 호통 치는 노인네도 있기 때문이다. 그럴 땐 창피해서 아무 정류장이나 그냥 내린다는 불만 섞인 친구들의 경험담을 서로 이야기 하는 건 우리들에겐 흔한 일이었다. 생전 처음 보는 낯선 젊은이들에게 자신의 나이 많음을 내세워 반말은 기본이고, 막말도 서슴지 않는 노인은 주변에서 쉽게 볼 수가 있었다. 마치, 환갑이 큰 벼슬인 양 행동하는 그들에게서 나는 단 한번도 그들의 꿈과 열정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 본 적이 없다. 욕심 많고 심술궂어 나와는 전혀 상관없는 다른 세상에 사는 사람들처럼 바라볼 때가 많았다. 그로부터 사십 여년을 훌쩍 뛰어 넘고 나의 환갑이 코 앞으로 다가오고 있다. 세월의 가속도는 언제부터 시작되었고, 붙은 것인지……

 

내가 중학교에 입학하던 1970년대는 ‘장수 만세'라는 TV프로가 있었다. 경노사상과 가족의 화목을 도모하고자 편성된 프로그램이다. 50세 이상의 연세 많은 남녀로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출연하는 방송인데도 큰 인기를 끌었다. 그다지 특별한 방송프로가 없던 시절이라 장수 만세의 등장 인물은 화제의 중심이 되기도 했다. 50대의 할머니 할아버지들도 사위와 며느리, 손녀와 손자를 줄줄이 대동하고 출연했다. 회가 거듭될수록 참가자들의 다양한 장기자랑은 재미를 주었고, 경합으로 우승상품도 받았다. 가끔 방송에선 환갑을 맞는 노인네들의 환갑 잔치를 중계 하기도 했다. 온 동네가 떠나갈 듯 소문난 잔치로 이어지는 환갑은 자신의 늙음을 대외적으로 인정 받는 날 같았다. 공공장소에서 큰 목소리로 거리낌없이 며느리의 단점을 들추어 내기도 하고, 경쟁 하듯 그들의 아들과 손주들의 자랑으로 주변에 침을 튕겨가던 사람들. TV 드라마의 단골 소재로 고부갈등이 끊임없이 이슈가 되는 것 역시 내가 노인에 대한 부정적인 편견을 갖게 된 것에 영향을 주었을 지도 모른다. 어찌되었든 막상 내가 육십이라는 숫자에 도달하고 보니 내가 생각해왔던 것과 많이 다르다. 어린 시절 막연히 환갑을 맞은 노인네들에 대한 느낌을 아이러니하게 지금의 내 모습에서는 찾을 수가 없다.  

 

서른 중반이 되는 큰 아들녀석이 아직 미혼이라 나는 며느리가 없다. 그러니, 손주가 없는 것은 당연지사고, 손주가 없으니 혈연으로 연결된 할머니란 직함도 내겐 없다. 등을 덮는 긴 생머리를 찰랑 거리며 청바지를 즐겨 입는 나의 모습은 부르는 이도 어색해 하며 차마 할머니라 부르지 못한다. 주일마다 교회에서 만나는 삼십팔 개월 된 아리따운 숙녀가 있다. 내가 교인들을 맞으며 좌석으로 안내할 때마다 방긋 웃어주던 귀여운 한국인 숙녀이다. 네발로 기어 다니고, 내 다리를 붙들고 일어서던 꼬마 아가씨를 나는 내심 할머니 된 마음으로 손녀 바라 보듯 흐뭇해 했다. 그런데, 말문이 트인 꼬마 숙녀가 어느 날 나를 반기며 “언니”라고 불렀다. 할머니라 부르라 해도 도리질을 하고, 아줌마라고 해 봐 해도 아냐 아냐 심하게 고개를 가로 저어 나를 당황하게 했다. 꼬마 아가씨는 내 얼굴에 손가락질을 해대며

 

“언니야! 언니!”

 

민망해서 어쩔 줄 모르는 내게 아이 엄마는 아이들은 솔직한 거라며 나를 기분 좋게 부추긴다. 나는 네 살배기 아이에게도 ‘언니’로 불리는 뻔뻔한 육십 살이다.

 

오십여 년의 세월이 흘러가는 동안 사람들의 생각도 시선도 많이 바뀌었다. 예전과 달리, 칠십 대가 조기 축구팀에 합류하는 것은 물론이고, 스포츠 댄스에 다양한 문화활동을 하는 노인들이 꽤 많아졌다. 내가 속해 있던 합창단의 평균연령은 육십 대와 칠십 대가 주를 이루고, 문인협회 또한 삼분의 일이 칠십 대다. 백세시대라는 이야기가 성급한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드는 요즘이다.

 

환갑이면 엄청 늙었다고 생각했던 내 스스로가 민망할 만큼 나는 지금도 꿈을 가지고 있다. 나의 삶의 정년이 칠십이 라 해도 십 년이라는 시간이 남아 있고, 팔십이 라 해도 이십 년이라는 긴 시간이 주어진다. 내 주변에는 젊은이들이 많다. 늦둥이 아들 또래의 친구들도 있다. 한국인들은 내게 어머님이나 이모님이라 부르지만, 외국인들은 나의 이름을 부른다. 영락없는 다정한 친구의 모습이다. 내가 그들 보다 더 살았다는 이유로 가르치려 들고 윗사람 노릇을 하려 들었다면 지금 내 곁에 그러한 좋은 친구들이 있을 리 만무하다. 나이 많은 나를 배척하지 않고, 나와 친구 해 주는 그들이 얼마나 고맙고 감사한 지...

 

젊은 이들에게 대접을 받으려고 할 것이 아니라, 그들과 친구처럼 그들의 말에 귀 기울이고, 존중해 주는 마음부터 가져야 한다. 빈 자리가 있다고 가방부터 던지고 앉는 모습이 아니라 고단한 몸을 잠시라도 쉴 수 있도록 내 자리도 내어주는 마음. 나이가 큰 벼슬인 양 함부로 말하고 곤란한 질문도 서슴없이 해대는 그런 노인은 되지 말아야 한다.

 

 육십이 되고 보니, 감회가 새롭고, 뭔지 가슴이 뜨겁다. 지금의 내 나이가 내가 젊은 날 바라보던 그 나이 아닌가?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에서 오십여 년을 훌쩍 뛰어 넘어 미래로 온 것 같다. 생각보다 늙은 사람은 아니었고, 생각 보다 보기 좋은 모습으로 시간을 즐기는 모습이 신선하다. 꼬부랑 할머니가 되어 있을 것 같았는데 의외로 꼿꼿하고, 광고모델 섭외도 받았을 만큼 겉 보기에는 멀쩡하다. 그런데, 이 것은 모두 겉으로 드러나는 외향적인 모습이고, 나를 지칭하는 나의 참 모습은 과연 어떨까? 또다시 타임머신을 타고 앞으로의 십년 후, 이십 년 후의 내 모습은 어떤 모습으로 있으며 어떠한 삶의 자세를 지니고 있을 까? 갑자기 호기심이 생기고 궁금해 지기 시작한다. 그래서 사도행전 2장17절에서 사도바울은 나의 궁금증을 감지하고 있었다는 듯이 내게 들려 준다.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말세에 내가 내 영을 육체에 부어 주리니 너희의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

 

여기서, 예언이란 단순히 미래의 일보다 감추어진 하나님의 진리를 밝히는 것을 의미한다. 환상을 보는 것은 허황된 꿈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신 원대한 비전, 영혼 구원에 대한 비전을 품고, 땅끝까지 예수님의 증인이 되는 것을 가르치는데…… 늙은이가 꾸는 꿈은 무얼까? 무기력하게 세상 떠날 날을 기다리는 삶을 사는 것은 아닐 것이다. 앞으로 이 땅에 실현될 하나님의 뜻을 바라보며 기도하는 삶을 말하는 것 같다.비록, 몸은 쇠약해지고 늙었지만, 영혼은 청춘이라는 것을 기억하며.  

 

나의 청춘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드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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