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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 | [안충기의 삽질일기] 하루 1m20cm 자란다, 5G엔진 장착한 호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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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중앙 쪽지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19-06-21 23:00 조회1,52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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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 접시꽃을 처음 봤을 때는 별 감흥이 없었다. 스테이크를 담는 접시만큼 커서 그런 이름이 붙은 줄 알았는데 앞접시보다도 작았다. 마음 줄 만큼 예쁘지도 않았다. 그런데 자꾸 보니 좋아졌다. 이제는 수수해서 좋다. 도종환의 시 <접시꽃 당신>을 다시 읽었다. 옥수수잎에 빗방울이 나립니다/ 오늘도 또 하루를 살았습니다/ 낙엽이 지고 찬바람이 부는 때 까지/ 우리에게 남아 있는 날들은/ 참으로 짧습니다/ 아침이면 머리맡에 흔적 없이 빠진 머리칼이 쌓이듯/ 생명은 당신의 몸을 우수수 빠져 나갑니다/ 씨앗들도 열매로 크기엔/ 아직 많은 날을 기다려야 하고/ 당신과 내가 갈아엎어야 할/ 저 많은 묵정밭은 그대로 남았는데/ 논두렁을 덮는 망촛대와 잡풀가에/ 넋을 놓고 한참을 앉았다 일어섭니다/ 마음 놓고 큰 약 한번 써보기를 주저하며/ 남루한 살림의 한구석을 같이 꾸려오는 동안/ 당신은 벌레 한 마리 함부로 죽일 줄 모르고/ 약한 얼굴 한 번 짓지 않으며 살려 했습니다/ 그러나 당신과 내가 함께 받아들여야 할/ 남은 하루하루의 하늘은/ 끝없이 밀려오는 가득한 먹장구름입니다/ 처음엔 접시꽃 같은 당신을 생각하며/ 무너지는 담벼락을 껴안은 듯/ 주체할 수 없는 신열로 떨려왔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우리에게 최선의 삶을/ 살아온 날처럼, 부끄럼없이 살아가야 한다는/ 마지막 말씀으로 받아들여야 함을 압니다/ 우리가 버리지 못했던/ 보잘것없는 눈높음과 영욕까지도/ 이제는 스스럼없이 버리고/ 내 마음의 모두를 더욱 아리고 슬픈 사람에게/ 줄 수 있는 날들이 짦아진 것을 아파해야 합니다/ 남은 날은 참으로 짧지만/ 남겨진 하루하루를 마지막 날인 듯 살 수 있는 길은/ 우리가 곪고 썩은 상처의 가운데에/ 있는 힘을 다해 맞서는 길입니다/ 보다 큰 아픔을 껴안고 죽어가는 사람들이/ 우리 주위엔 언제나 많은데/ 나 하나 육신의 절망과 질병으로 쓰러져야 하는 것이/ 가슴 아픈 일임을 생각해야 합니다/ 콩댐한 장판같이 바래어 가는 노랑꽃 핀 얼굴 보며/ 이것이 차마 입에 떠올릴 수 있는 말은 아니지만/ 마지막 성한 몸뚱아리 어느 곳 있다면/ 그것조차 끼워넣어야 살아갈 수 있는 사람에게/ 뿌듯이 주고 갑시다/ 기꺼이 살의 어느 부분도 떼어주고 가는 삶을/ 나도 살다가 가고 싶습니다/ 옥수수 잎을 때리는 빗소리가 굵어집니다/ 이제 또 한 번의 저무는 밤을 어둠 속에서 지우지만/ 이 어둠이 다하고 새로운 새벽이 오는 순간까지/ 나는 당신의 손을 잡고 당신 곁에 영원히 있습니다.

 
밭둑 너머 솔밭은 농장에서 나오는 온갖 산물·부산물의 무덤이다. 이웃들은 뽑아낸 풀이나 벌레 먹거나 발육이 시원찮은 채소를 여기 버린다. 김장거리를 심을 때면 철 지난 작물들을 몽땅 쓸어다 던진다. 이웃에게는 솔밭이 쓰레기장이지만 내게는 자재창고다. 농사에 필요한 물건들은 웬만하면 다 있으니 말이다. 이 주변에서는 버려진 채소들이 다시 뿌리를 내려 대를 잇기도 하고 부추·고들빼기·씀바귀·미나리·민들레·머위 같은 나물들이 흩어져 자란다.      

수확 않고 놔둔 20일무가 꽃을 피웠다. 종자는 같은데 분홍꽃이 있고 하얀꽃도 있다. 무와 배추는 종류가 꽤나 많은데 꽃은 거의 비슷하다. 매년 보지만 나도 헷갈린다.

 
늦가을 어느 날이었다. 밭둑을 지나는데 뭐가 발에 툭 걸렸다. 지지대였다. 하나가 아니었다. 멀쩡한 지지대들이 마른 풀 더미에 섞여 머리를 비죽비죽 내밀고 있었다. 이웃들이 얼마 전에 무·배추를 심으며 거추장스럽다고 뽑아다 버린 모양이었다. 옳거니 했다. 내 밭에 친구들이 합류해 농사짓는 면적이 늘어나며 여름에 쓸 지지대가 아쉽던 때였다. 사서 쓰면 1개에 500원이다. 내 밭에는 100여개가 필요하다. 풀 더미를 헤치며 지지대를 모았다. 한해만 농사짓고 떠난 밭의 지지대도 뽑았다. 이렇게 서너 해 거두어들이니 아쉽지 않을 만큼 모였다.    

지지대 꽂는 적기는 로타리를 친 땅이 굳어지기 전이다. 비 몇 번 내리면 땅이 단단해져 삽날이나 망치로 두드려 박아야 하니 힘이 배로 든다.

 

옆 밭에 아주머니가 세운 지지대는 얌전하다. 5월 중순 밭 모습이다. 농장의 요순시절.

호박·참외·수박처럼 옆으로 기며 자라는 넝쿨 작물들은 지지대가 필요 없다. 관리는 편하지만 이런 작물을 주말농장에 들여놨다가는 눈총 받는다. 넓은 땅을 차지하고 자라는 속도가 만만찮기 때문이다. 특히 호박이 그렇다. 시인 함민복이 선운사 동운암에 머물 때 쓴 <호박 달력>은 이렇다.  
 
암자에는 해우소가 두 곳에 있다. 하나는 새로 지은 신식 요사채에 있고 하나는 채마밭 구석에 있다. 나와 공양주보살 두 할머니는 채마밭의 냄새나는 해우소를 사용한다. 헛기침 하고 발소리 내며 다가가면 헛기침 소리로 사용하고 있다고 답하는 그 허름한 예의가 나는 좋다.  
또 내가 그 해우소를 찾는 이유는 호박 달력을 보기 위해서다. 해우소 뒤에는 오래 묵은 거름더미가 있고 거기에는 호박이 심겨 있다. 나는 호박 덩굴 한 줄기를 평지 쪽으로 펼쳐놓았다. 그리고 이곳에 온 날부터 호박 덩굴이 하루에 자라는 길이를 땅바닥에 금을 그으며 표시해왔다. 비가 개고 날씨가 무더웠던 어제는 호박이 일 미터 이십 센티미터나 자랐다.
호박꽃 속에서 나오는 벌들의 날개에는 호박꽃가루가 노랗게 묻어 있었다.
 
하루에 1m20cm 자라는 호박, 믿기 어렵겠지만 사실이다. 1시간에 5cm가 자라는 셈이다. 대지가 자글자글 끓을수록 호박은 신난다. 눈 밝은 사람은 자라는 순을 본다는 말이, 아주 뻥은 아니다.  

모종으로 심어 알뜰하게 발라먹은 상추. 포기마다 10장정도 따내면 봄이 간다.

상추 잎을 따내는 놀라운 방식. 아예 목을 쳐버렸다. 밭에 와서 놀던 어느 분의 제3세계 전위예술 작품이다. 꽃대가 올라올 때도 돼서 포기 째 뽑아 북망산 보냈다.

고라니가 훑어먹은 그린볼샐러드. 그래도 양심은 있어서 생장점은 남겨뒀다.

지난주에 고라니에게 크게 당한 옆 밭. 통배추를 담았던 망사로 은폐를 시도했다. 부디 약효 보시길. 고라니야, 그렇다고 내 밭 덮쳤다가는 밤길 조심해야 할 거다.

신도시에서 삽질할 때는 경사진 밭둑이 꽤 넓어 호박을 넉넉하게 심었다. 한여름부터 첫서리 오기까지 밥상에서 애호박과 호박잎이 떨어지지 않았다. 이웃에게 나눠주고도 남았다. 미처 따내지 못한 호박은 제자리에서 몸을 불렸다. 겨울이 되면 베란다에 늙은 호박 20여 통이 쌓였다.  

내 양배추 잎을 갉아 드시는 도적떼다. 1주일 전에는 눈에 불을 켜고 찾아도 보이지 않았는데 통통하게 살이 오르니 금세 눈에 띈다. 돌돌 말아서 휙. 몇 년 전에 지인이 딸을 데리고 밭에 놀러왔다. 딸과 샘에 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채소를 씻는데 잎 뒤에서 벌레가 나왔다. 손으로 집어내 발로 비벼서 처리한 청순한 딸, 며느리감으로 찍었다.

낯짝 두툼한 양배추 벌레. 먹성이 보통이 아니다.

 
서울에 밭을 얻은 뒤로는 호박을 심기 어려웠다. 바둑판처럼 나눠 분양하는 농장에 ‘밭의 깡패’를 심었다가는 뒷감당을 못한다. 궁리 끝에 밭 일부를 가장자리에 얻어 서너 번 호박을 심어봤다. 비료를 주지 않아서인지 제대로 자라지 않았다. 올해 다시 심어볼까 하다가 때를 놓쳤다.  
더운 날 호박 없는 내 밭에서는 토마토가 왕이다. 고추는 성골, 오이와 가지는 진골, 옥수수는 성곽을 지키는 수문장쯤 된다. 호박만은 못하지만 토마토도 기세가 만만찮아 내 키보다 높이 자란다. 놔두면 금세 정글이 되니 틈틈이 지지대를 손보고 순을 쳐줘야 한다.  
겉보기와 달리 이놈들은 옥수수 빼고는 생활력이 떨어진다. 보약 먹여주고, 물 갖다 바치고, 귀찮게 하는 놈까지 제거해주며 상전 대접을 하니 그렇다. 몸은 빨리 크는데 다리와 허리가 시원찮다. 꾸준히 돌보지 않으면 사춘기에 배 째라며 누워 버린다. 모른 척 하고 놔둬도 풀들과 싸우며 그럭저럭 자라지만 대개는 그 꼴을 못 보고 아이고 내 새끼 하며 지팡이를 쥐어준다. 나도 그렇다.  

토마토는 주먹과 방울 두 가지를 심었다. 요놈은 주먹, 출생지는 신탄진.

방울토마토 알이 굵어지기 시작했다. 어떤 색으로 익을지는 알 수 없다. 올해는 순을 제대로 쳤으니 작년보다 크고 많이 달릴 테다.

주워다 쓰니 내 밭의 지지대는 각양각색이다. 쇠로 만든 정식 지지대가 있고 부서진 빨래건조대와 자른 대나무도 있다. 알루미늄 파이프와 공사장에서 쓰는 묵직한 쇠파이프도 있다. 밭 쥔장이 봄에 두릅순을 따며 쳐낸 나뭇가지도 있다. 길이도 제각각이라 지지대를 모두 꽃은 밭은 스카이라인이 울퉁불퉁하다.

지지대 꽂는 적기는 로타리를 친 땅이 굳어지기 전이다. 비 몇 번 내리면 땅이 단단해져 삽날이나 망치로 두드려 박아야 하니 힘이 배로 든다.

 
지지대에 작물을 묶는 노끈도 ‘자재창고’에서 구한다.  
신도시에서는 밭둑에 자라는 칡을 끊어 썼다. 지금 밭 주변에는 칡넝쿨이 없다. 산에 올라가 끊어올 수도 있지만 풀이 무성해 꺼려진다. 지지대가 있던 마른 풀 더미 속에는 비닐 끈도 널려있다. 이웃들이 지지대와 작물을 뽑아 던질 때 딸려간 끈이다. 적당한 크기로 잘라 묶어놓은 터라 풀어 쓰면 된다. 옥 맨 끈도 요령껏 풀어쓴다. 올 농사 마치면 다시 모아놨다가 내년에 쓸 생각이다. 옆에서 구하니 나도 편하고 밭 주변도 깨끗해진다.          

이웃들이 내다버린 풀 더미를 뒤져서 가져온 노끈. 지지대와 키 큰 채소를 묶는 용도다.

 
재활용의 꽃은 역시 풀과 채소 부산물이다. 땅에서 풀은 ‘절대반지’다. 약을 들이부어봐야 비 두어 번 오면 벌떡 일어난다. 나는 ‘풀 제왕’에게 일찌감치 투항했다. 이제는 밭에 갈 때마다 낫 들어 이발 조공을 바치고, 너무 자란 분은 살포시 하늘 향해 뒤집어 놓고, 꽃대를 올리는 분은 살며시 눕혀드릴 뿐이다.  

대파밭 꼬라지. 고랑을 풀과 채소 부산물로 덮었더니 가관이다.

임무를 다한 모종상추. 두 달 반, 굵고 짧은 생을 장렬하게 마감했다.

상추씨를 다시 뿌리려 흙을 고르다보니 꽤 많은 풀이 나왔다. 몽땅 가져다가 대파밭 고랑을 덮어줬다. 남들이 밭둑 너머로 버리는 부산물도 주워다 덮었다. 정신 나간 아저씨로 보일까봐 이웃들이 없을 때 슬쩍 했다. 풀은 마르고 썩으며 왔던 자리로 돌아간다. 어수선하고 볼썽사납지만 그 덕에 내 밭은 물을 많이 주지 않는다. 그래도 채소들은 잘만 크고 그 아래서 지렁이가 기고 땅강아지는 흙을 뒤집으며 돌아다닌다.    

상추 잎을 들춰보니 땅강아지가 발라당 뒤집어져서 허우적거리고 있다. 자존심을 지키면서 이승을 하직하는 저들만의 자세인가 했는데 한참을 들여다봐도 팔다리를 버둥거리기만 한다. 혹시 다른 문제가 있는 걸까.

놈을 뒤집어 원래상태로 돌려놓으니 어리둥절한 자세로 두리번거린다. 잠시 숨을 고르더니 내 눈치를 보며 응달 속으로 슬슬 기어간다. 그러니까 이놈은 먹이를 찾다가 균형을 잃고 자빠진 뒤 다시 일어나려고 용을 쓰고 있던 거다. 배 불룩하고 다리 짧은 자의 비애다.

 
계절을 가르는 경계선은 감각과 취향에 따라 다를 테다. 에어컨을 돌리기 시작한 날이나 콩국수를 먹은 날을 기점으로 잡을 수 있겠다. 반팔과 반바지를 꺼낸 날, 샌들을 신은 날, 걸어서 출퇴근하다가 버스나 지하철로 들어간 날, 또는 샤워를 하지 않으면 잠이 오지 않는 날부터라고도 할 수도 있겠다. 내 여름의 시작은 오이와 고추를 처음 따는 날이다. 잎채소 전성기가 지나고 밭이 지옥문으로 들어가는 시기다.    
 

넝쿨이 지지대를 타기도 전에 오이가 달렸다. 수분이 충분하면 일주일에 저만큼 자란다.

첫 수확. 엄마는 같은데 생긴 건 딴판이다. 아버지가 다른가.

뚝 분질러 반은 친구 주고 나머지는 내가 우적우적

봄이 떠난 자리, 뿌리 깊어진 바랭이와 비름은 호미 날에 격렬하게 저항한다. 날이 뜨거워질수록 농장 출근 시간은 당겨진다. 이웃들 동작도 점점 빨라져 잽싸게 풀을 뽑고 날쌔게 거둬간다. 나는 새벽같이 가도 이 구석 저 구석 다니며 사진 찍기 바빠 정작 해가 중천에 오를 즈음에야 낫질을 시작한다. 마음이 급해 부지런히 몸을 놀리지만 6~7시간은 금세 간다. 구부리고 다니다 허리를 펴면 눈앞에서 아지랑이가 왔다 갔다 한다.

바랭이를 뽑았더니 파뿌리를 감고 나온다. 독한 놈. 혼자 죽을 수 없다는 물귀신작전인데 그렇다고 사정 봐줄 내가 아니다. 파만 골라내 따로 심어줬다.

 
늦은 봄에 뿌린 들깨는 실패작이다. 부지런한 친구가 주 중에 와서 열무를 다 뽑아내고 씨를 다시 넣었다. 콜라비와 시금치도 함께 뿌렸다. 나는 청경채가 있던 자리를 정리하고 상추씨를 세 번째 뿌렸다. 장마가 오기 전에 제대로 싹이 틀까 모르겠다. 
옆 밭은 벌써 감자를 캐냈다.    
 
 
 

장정 키만큼 자란 아욱. 꽃이 피기 시작해 중심 줄기를 잘라줬는데 옆에서 나오는 가지도 꽃망울을 달고 있다. 여차하면 몽땅 뽑아 낼 예정.

접시꽃 색깔은 다양하다. 내 밭 들어가는 길가에는 빨간색과 하얀색 꽃이 피었다. 꽃이 가장 황홀한 시간은 햇살 퍼지기 전이다.

올해는 근대가 두툼하니 제대로 자랐다. 된장국거리인데 아욱 잎과 같이 넣어 끓이면 풍미가 훨씬 좋다. 시장에서 올갱이가 보이면 앞뒤 가리지 말고 한 줌 사다가 넣을 것.

고추 두 포기가 말라간다. 뿌리를 벌레가 갉아먹고 있는 모양이다. 작년에는 운이 좋아 요절한 고추가 별로 없었다. 올해는 얼마나 살아남을지 하늘에 맡긴다.

짝짓기의 계절이다. 얘들도 수놈이 먼저 암놈을 탐한다. 뭐가 그리 급한지 대낮부터, 끌끌.

민들레꽃 위에 올라앉은 꽃등에. 흔한 사진이다. 친구1이 ’꽃은 다 이뻐“하니, 친구2가 ’집에 있는 꽃만 안 이뻐“. 농담이지만 집에 들어가서 이랬다가는 그길로 끝장난다. 아저씨들은 자나깨나 오나가나 말조심할 것.

열무를 뽑아내고 들깨·콜라비·시금치를 뿌린 자리. 다른 풀들이 먼저 싹을 틔우고 주인행세를 할 거다.

흙을 한번 뒤집었는데 용케 쇠비름이 살아남아 꽃을 피웠다. 뽑아내려다가 용기가 가상해 선처해줬다.

소나무 가지에 걸어놓은 내 일용할 양식 주머니. 물 한통, 콩물 한 통, 지갑이 들었다.

적겨자채에는 벌레들이 엄청 꼬이는데 이놈은 멀쩡하다. 풀밭에서 자라면 힘이 세진다.

친구1이 가지고 온 새참. 냉장고에서 꺼내왔단다. 두유도 건네주며 하는 말이 자기네 집에서는 바깥에 놔두고 마시니 그런 줄 알라나. 시원 쫄깃 달콤한 보리빵에 한낮 기온과 같은 두유가 섞이니 그 맛 참 오묘하고 신묘하다.

 
 
그림·사진·글=안충기 아트전문기자 newnew9@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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