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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 [문학가 산책] 빗 속 인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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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정숙인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19-06-28 08:59 조회1,38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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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31709ceb288d20dcb8e2c3a1bb4c22f_1561737524_7269.jpg정숙인/ 수필가(캐나다한인문학가협회)

 

 

 

오월에 내리는 비는 청춘이라 할 수 있다. 덥지도 춥지도 않은 채 쾌청한 날들이 계속되는 가운데 가끔 내리는 비는 봉오리를 머금은 것들에 선물같은 영양분과 힘을 공급한다. 또한 뜻밖의 소나기는 식물들뿐만 아니라 무료한 사람들에게까지 예상치 못한 기쁨을 선사하기도 한다. 더구나 활활 타오르는 불같은 청춘이 오월의 단비를 만나면 자만심과 이기심이 스러지고 차분하게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한때 오만했던 자신의 모습을 반성하게 될지도 모른다. 위대한 자연 앞에서 인간은 언제나 힘이 없는 법이다. 자연에 의해 철저히 깨지면서 비로소 자연이 주는 교훈에 감사하고 반성하게 되는 것도 자연이 인간에게 내리는 선물이 아닌가 싶다.

 

 

그 날은 지루한 일상이기보다는 매우 기분이 좋지않은 날이었다. 한참 연장자인 동료와 다툼이 있었고 이십대 초반의 사회 초년병은 나름 마음의 상처를 입고 일찍 퇴근을 한 날이었다. 빈 버스를 타고 집으로 향하다 말고 올림픽 공원앞에서 내렸다. 이대로 집으로 돌아가기에는 왠지 자존심이 상했고 무엇이라도 해야만 마음이 풀릴 것 같았다. 누군가와의 다툼은 순식간에 상처를 안겨주고 인간이 가지고 있는 깊은 우물같은 감정을 찬찬히 들여다보게 한다. 하지만 아무리 들여다보아도 도대체 알 길 없는 인간의 마음을 헤아리다 결국 지치게 되고 한동안은 인간에게 실망하여 혼자 있게 된다. 오직 시간이 답이라는 것을 그 때는 알 수 없었고 어떻게 해야 스스로 치유가 되는지도 알 길 없던 아직은 어리기 짝이없던 어른이었다. 무작정 발길닿는대로 드넓은 공원안을 돌아다녔다.한낮이었고 누구든 그 시간은 한참 일할 시간인지라 공원 안은 개미 새끼 한 마리도 보이지 않았다. 누구라도 불쑥 나타난다면 엄청난 공포가 들 정도로 공원 곳곳에 적요가 흐르고 있었다. 올림픽 공원은 1986년 서울올림픽을 기념하여 조성된 곳으로 그 안에는 펜싱, 역도, 체조경기장과 아울러 공원의 본래 기능에 걸맞는 드넓은 잔디밭, 미술관, 파크텔 등의 문화 휴식 공간이 자리잡고 있었다. 일반 공원과 달리 무척이나 깨끗하였고 가는 곳마다 세심하게 관리가 잘 되어 있었다. 세계 5대 조각공원답게 신기한 여러 나라의 유명 조각가들의 예술품들이 곳곳에 놓여져있어 보기에 아름다왔다. 천천히 그것들을 감상하고 다시 걷기를 반복했다. 걸을수록 기분이 점 점 좋아졌다. 곁에 아무도 없는것이 위안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처음 깨달았다. 북적거리는 서울 한복판에 이렇듯 나 홀로 있어보기는 처음이었다. 그 새로운 경험은 좋지 않은 기분을 서서히 날아가게 해주었다. 후두둑 갑자기 굵은 빗방울이 떨어졌다. 하늘을 올려다보니 어느 새 머리위로 시커먼 먹장 구름이 드리워있었다. 갑자기 작달비가 마구 내게 안겨들었다. 일단 옆의 나무 아래로 몸을 피했다. 다른 때 같았더라면 우산이 없어 낭패의 감정이 앞섰겠지만 왠지 웃음이 자꾸만 나왔다. 일단 비 내리는 공원에 혼자 있다는 사실에 안도감이 들었고 그래서 신비스러웠다. 너무나 꿈 속 같이 느껴졌다. 이리저리 아무리 둘러봐도 공원엔 아무도 없었다. 마치 영화속의 장면처럼 심해고도안에 홀로 갇힌 듯한 착각이 일었다. 소낙비치고는 빗줄기가 너무 세차 시야에 안개가 어른거리는 듯 했고 온통 나무로 둘러싸인 숲 속에 내리는 빗소리는 나를 무아지경에 빠지게 하였다. 서울 한복판 안에 있는 공원이라고 상상할 수 없을 만치 빗소리는 모든 도시의 소음을 철저히 차단시켰다. 푸른 나무들이 비를 맞자 그들이 내뿜는 시너지는 대단하였다. 목말라 생기를 잃어가던 생명이 수분의 공급을 받고 다시 살아나 꿈틀거리며 온 몸에 생생한 기운이 뻗쳐 하늘을 뚫을 듯 독야청청 슉슉거리며 푸른 초록빛을 뿜어냈다. 그 위로 내리 퍼붓는 빗줄기는 작고 하얀 포말을 일으키며 신비스런 장관을 연출하였다. 나는 그것을 바라보며 내 안의 무엇인가가 내부로부터 솟구치며 몸안에서 자꾸만 빠져나오려 온몸이 전율함을 느꼈다. 신고 있던 구두를 벗어들었다. 도심 한복판에서 신발을 벗고 걷는 일은 결코 인생에서 일어나지 않을 줄 알았다. 나는 철철 비를 맞으며 맨발로 정처없이 걸었다. 길은 내리는 비로 금세 젖었고 반들거리며 경사진 곳에서 가느다란 소용돌이를 이루며 아래로 맴돌아 흘러내렸다. 맨발로 밟는 비에 젖은 매끈한 포도의 감촉은 무어라 형언키 어려울 정도로 느낌이 좋았다. 흘러내린 빗물을 발로 차며 걸었다. 그것은 내 발에 튕겨지며 철벅거리는 소리를 냈다. 그 소리는 맑은 울림으로 아무도 없는 공원에 메아리쳤다. 작달비는 가느다란 부슬비로 바뀌어 한동안 내렸다. 나는 숲이 우거진 공원을 거의 한바퀴를 돌았다. 물에 빠진 생쥐마냥 비를 흠뻑 맞으니 몸이 떨렸다. 단순히 지나가는 소나기가 아니었다. 재채기가 연거푸 터져나왔다. 뒤돌아 공원을 빠져나오며 나는 비님에게 안녕을 고했다. 나를 위로해주고 새로운 만남을 가져준 비님에게. 어쩌면 다시는 오지 않을 인연이 될런지도 모른다는 생각, 나의 젊은 시절에 다시는 오지 않을 인연이라는 느낌이 가슴에 뜨겁게 차올랐다. 마치 연인과 헤어지 듯 눈물이 두 눈에 그렁그렁 열렸다. 버스를 타고 창문을 통해 멀리 공원의 우거진 숲을 바라보며 안녕을 고했다. 그리고 우리의 인연은 그렇게 멀어졌다. 비가 오는 날이면 그 날을 떠올리며 가슴이 뛴다, 하얀 포말로 나를 감싸던 신비스런 비님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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