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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 [문예정원] 염색 안 하면 안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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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정관일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19-07-04 15:07 조회2,09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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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7fc8c85cab36ac4d4f4c981bef0bc71_1562278051_9488.jpg정관일/ 캐나다 한국문협 회원 

 

“거, 당신 머리염색 안 하면 안돼? “ 지인 몇 사람과 식사 중에 한 사람이 나를 보고 하는 말이다. 아마 모르긴 몰라도 내 헝클어진 머리칼 사이, 사이로 보이는 흰 머리카락 무더기들이 몹시 보기 흉했던 모양이었다.  “ 아차!, 이번에는 보수공사(?)를 하지 않았지. “ “ 그러니 그런 소리가 나오는게 당연하지.”

모발 염색을 해 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염색을 한다는 게 여간 귀찮은 것이 아니다. 그리고 이발 즉시 염색을 한 후 대략 2주 후에 다시 한번 약하게나마 염색을 해 줘야 그것이 다음 이발 시기까지 그럭저럭 흉하지 않게 겨우 지낼 수 있는 것이다. 나는 이 짓을 보수공사라고 명명하고 가능한 한 이를 지키려고 하는데 가끔은 이번처럼 빼먹어 제일 먼저 집사람으로부터 보기 흉하단 소리를 듣기도 한다.

 나의 흰 모발은 단언컨데 100프로 유전이다. 돌아가신 아버지께서는 50세 정도의 연세에 백발을 보이셨고 형은 40대 후반에 이미 염색을 시작했다. 나도 이에 질세라 40대 후반이 되니 벌써 흰 머리칼이 검은 것 보다 많아지고 50대가 되기도 전에 완전 백발임을 공인받았다. 회사에는 나와 비슷한 연령에 백발이 된 사람도 몇명 있었지만 모두 염색을 해서 감쪽같이 이를 숨기고 있었다. 이들이 나에게 접근해서 염색파에 참여하라고 권고를 하였지만 나는 이를 일언지하에 거절하였다.

 “ 생긴 대로 살자. “ 이것이 나의 평소 지론으로  나는 이 흰머리를 이고 사는 날까지 견디리라 다짐 하곤 했다. 그러나 세상일이란 것이 어디 내가 마음먹은 대로 되어 가는 것이 하나라도 있었던가? 

   어느 해 여름 토요일 오후, 예외적으로 해가 중천에 떠 있던 날 퇴근 ( 당시에는 토요일도 오전 근무를 하던 때 임 ) 해서 집 앞에 당도 했을 때 집사람이 마침 동네 아줌마들과 수다를 떨다 나를 발견하고 “이제 오냐고? ” 아는 체를 했다.  당시 거의 모든 직장이 다 그렇듯이 새벽 일찍 출근에 밤늦게 귀가하기에 한동네에 몇 년을 살았지만 나는 그들을 전혀 몰랐다. 물론 그들도 대낮에 나를 본 것은 이 때가 처음이었다.   

  잠시 후 집안으로 들어온 아내가 나를 보고 대뜸 “당신, 머리염색을 해야겠어요” 한다. 이게 무슨 뜬금없는 소린가 하고 물었더니 아까 밖에서 마주친 동네 부인들이 아내를 보고 남편과 나이 차이가 아주 많아 보인다고 하더란다. “그게 어때서? “ 라고 했지만 얼핏 지피는 것이 있었다. 이곳에 이사오기 전에 살던 동네에 나이 차이가 많아 뵈는 부부가 있었는데 알고 보니 부인이 2호였더라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 왜? 내가 나이 든 데다 허우대 멀쩡하고 부티가 나 보이니까 당신을 후처 아니면 2호로 볼까 봐? “ 

  “ 아이고! 참, 착각은 자유라고 하더니. 웃기고 있네.  하여튼 머리염색 하면  그래도 좀 젊어 보일 것 아네요? “

   “ 나는 염색 안하고 그저 생긴 대로 살겠네요. 아시겠수? “

   이런 일이 있고 얼마 안돼 갓 취임한 재벌2세인 젊은 우리회사 사장을 수행해서 해양소년단 창설 몇 주년 기념식에 참석하게 되었는데 그 자리에 참석했던 귀빈들이 나를 회사 사장으로 잘못 알고 “ 사장님 ” 하며 나에게 먼저 인사를 청해서 진짜 사장을 소개 하느라 진땀을 뺀 적이 있었다.  젊은 사장 모시기가 쉽지 않다고 회사로 돌아온 내가 동료들에게 자초지종을 이야기 하자 염색파들이 “ 그것 보라니까. 괜히 우리말 안 듣고 고집부리다 그런 꼴 당했으니 싸다 싸. “  “ 내일 당장 염색 해! “ 그러나 나의 대답은 한결 같았다. “ 당신들이 아무리 그래도 난 내가 생긴 대로 살 거다.”  이후에도 젊은 사장을 모시고 거래처나 관공서를 드나들 때 역시 이런 민망한 사태가 몇 번 더 벌어지곤 했지만 나는 개의치 않았다. 나는 의지의 한국인이고 더구나 “ 당나귀 고집” 이라는 정씨 가문 출신 아닌가?

     이런 상태가 몇 년 더 지속 되다 드디어 올 것이 왔다. 그 악명높은 IMF사태가 도래 한 것이다. 나이가  55세 전후로 찰거머리처럼 회사에 붙어 이미 수 십년간  회사의 고혈(? )을  빨아 먹은 우리 같은 사람이 정리대상 영순위가 되었다. 이로써 근 30여년에 걸친 나의 머슴생활 (동료들과 술자리에서 가끔 자조적으로 쓰던 말 ) 에도 종지부를 찍게 되었다.  아마 모르긴 몰라도 그 젊은 사장이 나를 숙청(?) 대상 1호로 지목 했었는지도 모르겠다. 

   어찌 어찌하여 전 회사 덩치가 코끼리 였다면 새앙쥐에 불과한 소규모 회사에 재취업 하였는데 회사규모나 회사내에서 내가 최고령 인 점은 그렇다 해도 정말 견디기 어려운 것은 내가 상대 해야 하는 고객들의 연령대가 모두 나보다 한참 어리다는 점 이었다. 그리고 그들은 모두 우리회사에 대해 갑의 입장에 있다는 사실을 얄밉도록 잘 알고 있었다. 수시로 벌이는 갑질에 나도 힘들지만 그들도 큰 형님 뻘인 을을 상대 해야하니 힘들기는 마찬가지였으리라.  사무실에서 업무 이야기를 하거나 접대를 할 때도 전 회사에서 젊은 사장을 모실 때 보다 더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 아, 그리운 그 때의 머슴살이여…

   그러나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내가 이걸 이겨내지 못하면이나마 수입도 끊어지게 됨이라.  바뀐 환경에 빨리 적응하기 위하여는 “ 내가 먼저 변해야 한다 “ 라는  성현의 말씀에 따르기로 큰 결심을 하고 일차로 나의 변화된 모습을 머리염색을 통해 들어내기로 했다. 염색 후 출근한 나를 본 직원들은 모두 “엄청 젊어 지셨다”고 했다. 회사직원들 뿐만 아니고  나를 여태까지 알고 지내던 모든 사람들이 한마디씩 했다. “젊어 졌다””더 멋있어 졌다.” 심지어는 “한결 똑똑해 보인다” 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다.  머리칼 색깔 하나 바꿨는데 이렇게 사람들의 평가가 달라지다니. 신기한 일이다. 아하! 이래서 가수니, 뭐니 뭐니하는 연예인들 그리고 심지어 정치인들까지 모두 얼굴을 칼로 조각하고 다리미로 다리듯이 얼굴주름을 펴고 두발을 가꾸는 구나! 신세계의 발견이었다.

   그러나 나의 고객들인 갑과의 관계는 크게 바뀐 게 없었다. 그들이 보기에는 조금 젊어진 모습의 을과 상대한다는 것뿐이지 그렇다고 그들이 갑질을 포기하려고는 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수입이 좀 아쉽기는 했지만 더 이상 스트레스 받다가 암이라도 걸리면 병원비가 더 들 것 같아 그 회사 와도 작별을 고했다. 6개월 만의 일이었다. 그리곤 내 평생에 제일 큰 모험을 감행하기로 한다. 나이 60에 캐나다로 이민을 가기로 한 것이었다.

     당시 유행하던 “ 나이와 관련된 3대 얼빠진 놈” 이야기가 있었는데, 그중 3위가 “나이 80에 좀 더 즐기겠다고 비아그라 먹는 놈.” 2위가 “나이 70에 골프 좀 더 잘 쳐보겠다고 골프레슨 받는 놈.” 그 위에 1위가 “나이 60에 이민 간다고 영어회화 배우러 다니는 놈” 이라고 했다. 그런데 나는 그 3대 또라이 짓거리 중에 대표 또라이 짓거리를 하겠다고 하니 나를 아는 모든 분들이 제 일이 한참 바쁜데도 불구하고 만사 제치고 나서서 말렸다. 그러나 그들이 아무리 말려도 내 “ 당나귀 고집 “을 꺾을 수는 없었다.

    드디어 이곳에 이민을 와서 사업이라고 벌리긴 벌렸는데 그 이야기는 나중에 하기로 하고. 머리염색이 서울에서는 돈 만원만 갖고 가면 이발소에서 말끔히 아주 시원하게 되던 것이 이곳에서는 아무리 싼 곳을 찾아도 40불+ 텍스에 그것도 사전예약을 하란다. 돈도 돈이지만 그깟 놈의 예약까지 해야 한다니 치사해서 내가 염색약을 사서 직접 하려는데 약값만도 12불 +택스다. 이 금액이면 서울의 이발소에서 편안히 염색을 해 받던 금액이다. 제기랄! 그러나 여긴 한국이 아니고 캐나다 아닌가?

 이렇게 시작한 자가 염색이 어언 15년. 이제는 누가 뭐래도 염색에는 베테랑이 되었다고 자부하나 자칫 보수시기를 놓치면 앞서 이야기했듯이 보기 흉한 몰골이 되어 “염색 제대로 하라.” 던지 아니면 “ 그 나이에 염색 안 하면 안돼? “ 라는 이야기를 가끔 듣곤 한다. 그렇지만 나는 이제 와서 염색중단을 하고픈 마음이 추호도 없다. 정치인들 특히 국회의원 ( 요즘에는 지방자치단체 의원들까지 가세 해서) 들이 유관단체로부터 돈을 받아 외유성 해외여행을 떠나면서 그것이 관행이란다.  그 관행은 고래힘줄 보다 더 질겨서 주위에서 아무리 비난과 욕설의 칼날을 들이대도 끊어질 줄 모른다. 아마 우리들은 심정적으로 그것이 지금까지의 관행이라고 하면 쉽게 면죄부를 주는 경향이 있는듯 하다. 그래서 나도 이젠 관행(?)이 된 머리염색을 계속 밀고 나가려 한다. 옛날에 생긴 대로 살겠다고 백두를 고수하던 그 당나귀 고집이 지금은 구차하게 “관행”을 들이대며 염색을 고집하는 이 아이러니에 대해 묻는다면 나는 대답대신 미소만 지을 것이다.  

 세상은 내가 느끼는 것 보다 훨씬 더 빠르게 변하고 있다. 신세대가 구세대가 되고 진보가 보수가 되고  오늘의 적이 내일의 우방이 되기도 하고 더구나 “알파고” “AI” 가 어쩌고 하는 세상에 누가 흰 머리칼을 검게 염색 하던가 염색했던 머리를 원래대로 돌렸다 한들,  이곳 말로 “ NONE OF MY BUSINESS “  아닌가?  

 옛날의 나처럼 머리가 하얀 어떤 꽁생원이 모처럼 이발소에서 이발에 염색도 하고 목욕까지 한 후 거울을 보니 자신이 보기에도 영 달라 보이는지라 집에 돌아와 아내를 보고 자랑스럽게 그리고 기대에 차서 “ 여보 , 이렇게 이발에 염색까지 하니 10년은 젊어 보이지 않우 ?  “ 글쎄 말이 우, 그런데 그게 밤이었으면 얼마나 좋겠수.” 시큰둥한 부인의 대답이었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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