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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 [문예정원] 그리고, 그래서 또한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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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유병수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19-07-12 09:13 조회1,45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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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6a4bb1a5e849386c0b65817e38367a7_1562947926_3276.jpg 유병수 / 시인. 소설가 

 

1.

잠을 잔다. 잠을 자다가 잠을 깬다. 몸을 씻는다. 몸은 깨끗해져 있다. 높은 언덕에서 산다. 산을 바라보며 산다. 가장 뛰어난 위선자가 될 것을 희망하며 산다. 잡소리를 그치기 위해 언덕을 내려온다. 사람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나도 은근히 사람이 된다.

공중전화가 있다. 공중전화 옆에는 과일이 쌓여 있다. 수화기를 들고 번호를 돌린다. 말한다.

"학보사 좀 부탁합니다. ...네? 전화를 받지 않아요? 큰일이군. 아무도 나와 있질 않다구요? 알겠습니다."

사람들 사이에서 쉽게 불통감을 느낀다. 단절감이다. 사랑  얘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사랑은 쉽게 이루어지지 않는다.

 

마침 가게에서 여자가 나온다.

"아주머니 껌 주세요. 씹어도 씹어도 재미나는 껌 주세요. 사랑도 증오도 씹어 버릴 수 있는 껌 주세요."

여자는 그 동그란 눈으로 나를 본다. 자연스럽게 슬퍼진다.

옛날 나는 교수님께 이렇게 말했다.

"약속은 어떻게 맺어지는 거예요? 우리들의 시간은 왜 이렇게 우스운가요? 신문이 잘 만들어지지 않네요. 어려워요. 죄송해요. 교수님 앞에 서면 항상 죄스러워요."

교수님은 웃었다. 나도 웃었다. 기억 속에서 있었던 얘기다.

어느 날은 술을 먹었다.

사람에게 속고 사람에 취했다. 취해서 비틀거리며 언덕내 자리로 찾아들었다. 사람들은 나를 봤다. 나는 부끄러웠다. 부끄러웠기 때문에 나는 말했다.

"술 한 병 주세요. 아주머니. 전 괴로워요."

여자는 나를 보지도 않았다. 마침 주인 남자가 들어왔다. 화가 났으므로 남자에게 말했다.

"전 괴롭고 슬픈 깡패예요. 잠깐 나와보실래요."

우린 골목으로 갔다.

우리는 말 실랑이를 벌였다. 난 주인 남자의 어깨를 토닥거린다. 말했다.

"기분 나빠요. 정말, 재미없어요. 죽이겠어요, 정말."

남자는 내 손을 이끌었다. 지척의 거리에 파출소가 있었다. 난 으름짱를 계속 했다. 그때 여자가 쪼르르 달려왔다.

"여보 식사하세요. 상대하지 말고 어서 나와 식사나 하세요."

남자는 여자와 함께 가게로 들어갔다. 나는 계속 소리냈다.

"나쁘군, 정말 나쁘군. 왜 날 보곤 밥먹으란 말을 안해! 나도 밥 먹을 줄 알아!"

여자의 남편은 내가 아니었다. 언덕으로 올라가는 나는 이미 사람이 아니었다.

 

2.

무상이 갑자기 정다워진다. 그래서 나는 자꾸 흘러간다. 어느새 이렇게 자란 모습으로 누가 나를 키운 것도 아닌데, 아마 크려고 하는 희망이 나를 나되게 만들었나 보다. 네가 곁에 있을 때 나는 너를 알지 못했다. 너 역시 나를 아는 것 같지 않았어. 결코 무언가 서로 오해하면서 그냥 다 통하는 줄 알았지. 이를테면 착각이나 헛봄이라 할 수 있는데, 아아, 이상하게도 그것이 우리를 또 밝게, 따뜻하게 비추어 주고 있었다. 나를 잊어버려. 그러면 나를 알게 될 거야. 나도 그렇게 하겠어. 네가 종종 나 들으라고 한 말. 그래 나 듣고 안다. 너무 '적(的)'인 것만 좋아 한다고? 아냐, 아냐. '적'이 아니라 그 자체야. 아니 끝없이 나아가고 있는거야. 위와 앞의 양쪽 방향을 향해. 그래서 통속적이지만. 앞으로 나는 무상(無上)이 되겠다. 좋겠지? 안녕. 인사가 늦었다. 네게는 할말이 없다. 미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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