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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 [바다건너 글동네] 텃밭을 일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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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심현숙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19-07-18 08:58 조회1,928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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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ed74469781f7affb986ba50ef16ffa_1563467216_9183.jpg수필가 심현숙 

(사)한국문협 캐나다 밴쿠버지부 회원

 

 

 

 

 

  얼마 전 뒷마당 한 귀퉁이에 있는 2평 남직한 텃밭에 온갖 야채 씨앗을 뿌렸다. 상추와 오이는 씨앗을 구하지 못해 모종을

얻어다 심을 셈으로 두 두렁을 남겨두었다. 작년에 밭농사를 해보니 그 재미가 이만 저만 한 게 아니었고 이제는 어느 만큼

요령도 터득하게 되었다.

 

  나는 어릴 적 아버지 직장을 따라 호롱불이나 남폿불로 밤을 밝히는 농촌에서 유년기를 보냈다. 그리고 방학 때면 할머니를

뵈러 늘 시골에 갔고 결혼 전 2년간 그곳에서 교직생활을 하였다. 할머니가 돌아가신 후 어머니는 대농[大農]을 맡으셔서

관리하시느라 아예 농촌에서 사셨다. 이렇듯 농촌과 많은 인연을 가졌는데도 땅을 생각해 본 일이 없고 농사에도 관심이나 호기심은

없었다. 그저 봄이면 보리밭 사이로 불어오는 훈풍에 종아리를 드러내고 걷는 것이 기분 좋았고 가물거리는 아지랑이를 따라

논둑길을 달려가는 정도가 고작이었다. 흙을 만져본 것은 초등학교 5학년 실과 시간과 중학교 시절 어머니와 함께 고추밭의 풀을

뽑아 주었을 때라고 기억된다.

 

  캐나다에 이민 와서 보니 대부분 한인가정은 널따란 뒤 정원 한쪽에 텃밭을 가지고 있었다. 어느 교포 댁에 들렸더니 집주인은

대뜸 밭에서 호박을 따 가지고 나물을 볶고, 갓 솎은 상추에다 고추장을 곁들여 밥상을 차렸다. 고국에서는 특수층 사람들이나

먹는 무공해 식품을 어느 가정이나 먹고사는 것이 신기했고 그들이 누리는 소박하면서도 풍요로운 정서가 퍽 반가웠다.

 

  다음 해 봄이 되자 나도 삽을 들고 뒤 정원으로 나섰다. 예전에 산자락이었던 우리 집 뒤 터에는 산딸기나무가 풍성했다.

울타리 뒤쪽에서 집을 향하며 억센 줄기가 필사적으로 뻗쳐 들어오고 있었다. 산딸기나무를 뽑아내느라 두 손과 두 팔은 온통

상처투성이가 되고 군데군데 피멍이 들기도 했다. 그 다음은 삽으로 흙을 파서 뒤엎는 순서였다. 막상 삽질을 해보니 땅 속으로

가지각색의 뿌리가 칡넝쿨 모양 엉켜 있었다. 뿌리를 잘라내기도 하고 혼신의 힘을 다하여 잡아당기다 보면 뿌리가 뚝 끊어지면서

엉덩방아를 찧기도 하였다. 밭을 일구는 일이 이렇게 힘들 줄은 몰랐다. 흙 속에 묻혀 있는 잔디나 풀을 쇠갈퀴로 추려내고 돌을

주어 내고 있으면 손에 물컥 무엇이 잡히기도 한다. 깜짝 놀라 보면 살이 통통히 찐 지렁이가 아닌가. ‘에구머니’섬뜩해서

소리를 지르며 뛰쳐나오다가 순간 그런 자신이 사뭇 우습게 보인다. 땅속이 얼마나 기름지고 쾌적하면 지렁이가 이렇게 번식할 수

있겠는가. 그러고 보니 지렁이를 만나는 것도 참으로 오랜만의 일이었다.

 

  고랑을 치고 두렁을 만들고 골을 팠다. 소학교 때 선생님께 배운 씨뿌리기를 기억해 내며 씨를 뿌리고 고운 흙을 덮어

주었다. 모두 마치고 나니 어둑어둑 땅거미가 지기 시작하였다. 온 가족이 동원되었는데도 혼자서 작업을 다한 양 허리는 펴지지

않고 다리는 후들거렸다. 옛날에 농사일을 하는 일꾼들이 힘들다고 불평하는 소리를 들어본 기억이 내게는 없다. 밥을 꾹꾹 눌러서

사발위로 수북하게 담고 먹음직스러운 나물이며 된장찌개 곁에 농주를 얹어서 대접하면 그들은 항상 만족스러운 표정이었다. 그래서

농부들은 하루 세끼 배불리 먹기만 하면 일은 쉽게 되는 줄로만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그들이 묵묵히 흘린 땀 속에 어느

만큼의 인내와 노고가 들어 있었는지 이제야 조금은 알 것 같다. 땅에 흩어진 낱알 한 개도 반드시 주워 올리던 그들의 심중도

헤아릴 수 있게 되었다.

 

  씨앗을 뿌리고 얼마가 지나자 싹이 나오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신통치 않았다. 씨앗이 오래 되어 생명이 없어져 버렸는지

아니면 새가 파먹어 버렸는지 어떤 것은 전혀 싹이 보이지 않았다. 그 해 겨울 마늘을 심어 보았으나 역시 볼품이 없고 하여

다음 해는 그냥 빈 땅으로 내버려두었다. 아마 거름을 주지 않은 것이 실패의 원인이었지 싶다. 씨만 뿌려 놓으면 열매가 절로

맺는 것은 결코 아니었다.

 

  작년부터 집에 있는 시간이 늘어나자 다시 텃밭 일을 시도해 보았다. 이번에는 잡초만 제거하고 퇴비를 섞어 흙을 뒤엎고 골을

팠다. 큰 기대 없이 씨앗을 뿌렸는데 뜻밖에도 완전히 성공이었다. 싹이 자라자 솎아서 한국 사람들에게 모종으로 나누어주었다.

조석으로 들여다보며 풀을 뽑아주고 솎아 주며 토마토와 오이는 받침대를 받쳐주고 물을 주는 등 있는 정성을 다 기울였다. 조금씩

작은 결실이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내 가슴속엔 자연에 대한 경이로움이 싹트고 있었다. 아침에 눈만 뜨면 텃밭으로

달려갔고 새벽이슬에 운동화와 바짓가랑이를 흠뻑 적시는 것도 그지없는 쾌감이었다. 조심스레 오이 잎을 들치면 어제 못 보았던

오이가 잎새 사이에 숨겨져 있기도 하고 어떤 것은 팔뚝만 하게 자란 것도 있다. 난쟁이 피망나무엔 주먹만 한 피망이 주렁주렁

달려있다. 텃밭에 있다 보면 모든 시름을 잊을 수 있고 시간 가는 줄 모른다. 모래와 돌 사이로 걸러진 시냇물처럼 머릿속은

더없이 맑아진다. 화초나 밭을 가꾸는 것이 정신 건강에도 좋다는 것을 실감하게 된다.

 

  며칠에 한 번씩 소쿠리 가득 채소를 수확하여 이웃집과 가까운 지인들에게 나누어준다. 나누어주는 기쁨 또한 키우는 기쁨

못지않다. 오이와 깻잎으로 장아찌를 만들어 밑반찬도 준비하였다. 가을이 되자 들깨도 한 되 이상 털었다. 밑거름으로 넣은 퇴비

덕이 분명하다. 손바닥만 한 밭이지만 땅은 우리에게 참으로 넉넉한 응답을 안겨주었다. 땀 흘리는 노력이 결코 헛되지 않는다는

진리를 땅에서 다시 배운 셈이다.

 

  배은(背恩)과 망덕(亡德)이 난무하는 세상에서 신뢰할 것이 있다면 그건 대지(大地)가 아니겠는가. 대지는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인간을 배반하지 않는다. 언젠가는 그 곳으로 끝내 돌아가야만 하는 우리들의 영원한 고향, 그 땅과 흙 앞에서 나는

밀레가 그린 ‘만종’의 농부 마냥 고개 숙여 기도드리고 싶은 심정이다.

 

( 1995년 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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