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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정숙인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19-07-25 13:10 조회2,71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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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aa90d1f53954216fae02a70314f3acf_1564085395_1159.jpg 정숙인 / 수필가 캐나다 한인문학가협회
 

밴쿠버에서 개최되는 행사중에 아직도 한국말 성경이야기 대회가 있는지 궁금하다. 2004년 딸아이가 다섯 살이었을 때 한국어 수업의 일환으로 대회에 참가해보라고 권유했었다기회가 생길 때마다 어떻게든 아이들에게는 기회를 십분 제공해 주어야 한다그래야 한 글자라도 더 익히고 잊어버리지 않는다재미있게 각색한 ‘노아의 방주’를 들려주니 아이는 낄낄대며 재밌다고 연습을 했다일주일 연습하고 예선을 통과하여 본선에 진출했다캐나다 전국대회 본선은 밴쿠버에서 개최되었다‘노아의 방주’에 나오는 캐릭터들의 독특함때문에 아이는 나름대로 코믹한 환상을 가지고 더욱 열심히 했던 것 같다우리말에 대한 좋은 경험을 갖게 해줄 생각으로 참가하였는데 뜻밖에 유치부 대상으로 뽑혀 캐나다 대표로 미주 본선대회에 출전할 자격을 얻었다대상을 받아 기뻤으나 뉴욕까지 비행기값이 만만치 않아 고민이 되었다.

상을 받으면 미국에 갈 것이라 기대에 부풀어 있던 경희는 북미주 본선대회에 당연히 참석해야 한다며 목소리를 높였다처음 예선대회를 권유했던 나는 쉽게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진짜로 아이가 대상을 받을 줄 전혀 예상치 못했었다비싼 비행기값에 현실적으로 고민이 되면서 한편으로 딸에게 모험과 자신감을 심어주고 싶었다다섯 살 꼬마는 뉴욕의 압도적인 풍경에 마음을 빼앗겨 날마다 뉴욕 타령을 했다인생을 살다 보면 어느 순간 생각지도 않게 엉킨 실타래가 거짓말처럼 스르르 풀릴 때가 있다이렇다할 만한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있을 때 뜻밖에 엉킨 실타래가 풀렸다밴쿠버를 방문한 어머니가 뉴욕에 사는 오빠를 만나러 가겠다며 함께 가자고 하셨다마치 그 말을 기다렸던 것처럼 우린 만장일치로 뉴욕행을 결정지었다. 7개월 전에 대회를 마치고 다섯살 나이로 유치원에 입학한 경희는 영어로 생활화가 되가는 중이라 혀가 꼬여가고 있었다정확한 한국어 발음을 처음부터 다시 연습해야 했다대회 날까지 서두르지 않고 조금씩 나누어 연습하는 수 밖에 없었다차분한 마음으로 연습하며 아이가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기를 기다렸다대로 채근하거나 서두르지 않고 시간이 주어질 때마다 재미삼아 연습을 했다여행을 앞두고 들떠있는 마음도 가라앉혀야 했다나부터가 먼저 차분하게 흔들리지 않아야 했다.

사람은 절대적으로 환경의 지배를 받는 동물이다평소에 아무리 집에서 한국말로 대화를 나누고 한국어학습을 하여도 무의식중에 툭툭 튀어나오는 영어를 단순히 그때마다 아이를 야단함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아이에게 왜 한국어를 사용해야 하는지 이해를 시키고 그것이 현실로 이행이 되지 않을 때는 서슴치 않고 제동을 걸었다“왜 나는 두 가지 말을 해야 하느냐”며 따지고 드는 아이에게 그때마다 설명을 해주고 이해를 시켰다그러면 아이는 “이제부터는 영어로만 말을 할 것이다”라며 괜한 심술을 부리기도 했다.아이가 영어로 말을 걸어오면 나는 묵비권을 행사했다어떻게든 한국어를 아이에게 심어주기 위한 나름의 노력과 방법을 아끼지 않았다아이에게는 절대로 이해할 수 없는 나쁜 엄마가 되었던 시간들이었지만 모국어를 잊지않기 위한 최선의 방법이었다외국에 살아도 우리는 변하지 않는 한국사람이라는 뿌리와 한국 사람이 되어 한국말을 못하는 것처럼 어리석은 일은 없는 거라고 틈나는대로 말해 주었다.

경희는 캐나다 대표로 미주 본선대회에 참가하여 유치부에서 가장 어린 나이로 대상을 거머쥐었다전혀 예상밖이었기에 아이의 이름이 호명되는 순간 나는 울컥하며 눈을 감았다그 동안의 힘들었던 시간들이 충분히 위로가 되었다강남의 어머니들 못지않게 뉴욕의 어머니들은 자녀를 향한 대단한 교육 열정을 가지고 있었다기념촬영이 끝나고 우리를 둘러싸고 도대체 캐나다에서 태어난 아이에게 어떻게 한국어교육을 시켰느냐며 질문공세를 해댔다경희의 발음은 모국에서 태어난 아이보다도 더 정확했기 때문이었다혀가 꼬이거나 혀 짧은 소리를 내지 않았고 질문을 받으면 전혀 주저하지 않고 정확한 발음으로 대답을 하였다심사위원장인 현직 아나운서가 경희가 대상을 받은 이유를 설명해주었고 뉴욕의 어머니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을 하였다내가 할 수 있었던 것은 아이와 끊임없이 한국말을 주고 받은 것이었고 더 나아가 쓰기 싫어해도 쓰기를 자꾸 반복해서 하게 했으며 매일같이 목이 쉬도록 밤낮으로 책을 읽어준 것이었다또한 아이의 발음이 틀릴 때마다 단 한 번도 그냥 지나치지 않고 그 때마다 정확하게 고쳐준 것이었다무엇보다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매일 가르쳤던 힘이 컸던 것 같다여행하느라 적지않은 경비가 들었지만 대회에 참가하여 얻은 것은 물질적인 것으로 환산할 수 없을만치 값진 것들이었다그 일을 계기로 경희는 한층 우리말에 대한 애착을 가질 수 있었고 중대한 고비를 겪으며 꼬였던 혀가 펴지고 우리말을 다시금 바르게 익힐 수 있었다자라나는 어린아이에게 있어 말이라는 것은 아주 중요하게 작용한다말을 하지 않고 시간이 지나게 되면 모국어는 금방 잊혀질 수밖에 없다아이가 직접 겪은 체험을 바탕으로 다시금 소중한 우리말에 대한 시간을 가질 수 있었음에 무한한 감사를 드린다.

 

현재 경희는 스무살 대학생이다자신이 좋아하는 시집과 수필집소설책을 한국에서 주문하여 읽는다독서를 좋아하여 늘 곁에는 보다 만 책들이 널려있고 오래된 한국 가요를 반복해서 들으며 잠들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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