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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 [문예정원] 강아지와 나,그리고 반성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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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윤의정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19-07-25 13:17 조회2,25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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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aa90d1f53954216fae02a70314f3acf_1564085807_5911.JPG 윤의정/캐나다 한국문협 회원


"삼천 오백 불이요?"

 

나는 당황스러웠다. 너무 비싼 금액에, 너무 심각한 상황에.

 

얼마 전부터 우리 집 반려견이 다리를 절더라. 특별히 다친 적이 있던 것은 아닌데, 갑자기 다리를 저는 것이 이상해 보였다. 며칠을 지켜봐도 호전될 기미가 없어 보여서 동물병원을 들러 보기로 했다. 두근두근 조금은 떨리는 마음이었다. 이곳에서 반려견이 아프다는 이유로 동물병원을 방문해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우리 집 강아지는 래브라도리트리버다. 강아지라고 하기엔 이미 몸집이 다른 강아지들에 비해서 무척 크기도 하고 나이도 이제 3살에 가까이 다가가고 있어서 어린 상태는 아니다. 하지만, 어려서부터 자라오는 모습을 보아온 터라, 다른 이들에겐 덩치 큰 성견이지만 여전히 우리 가족에게는 귀여운 강아지처럼 느껴진다. 강아지가 병원에 가서 제발 아무 이상이 없다는 진단을 받기를, 간단한 외상 정도길. 그렇게 바랬던 것 같다.

 

처음 도착한 병원은 이 도시에서 가장 명성이 좋은 곳이었다. 그런데, 역시나 예약이 없이는 진료를 받을 수 없는 구조더라. 그리고 그 예약도 당장 잡을 수 없을 만큼 이곳은 바빴다. 어쩔 수 없이 동네에 작은 병원, 좀 덜 유명한 곳에 물어 물어 당일 예약을 해서 갈 수 있었다. 사람들이 모두 다 추천하던 그곳과는 무척 다른 조용하고 작은 곳이었다.

 

검사를 하고 난 후, 수의사에게서 들은 이야기는 예상을 뛰어넘는 것이었다. 래브라도리트리버는 고관절이 유전적으로 약한데, 아직 어린데도 이미 고관절 탈구가 진행 중이었다. 그리고 당장 시급한 문제는 바로 양쪽 무릎뼈 이탈 현상, 슬개골 탈구 증세였다. 대체로 소형견들에게서나 일어나는 문제인데, 이렇게 대형견에게서 문제가 있는 경우는 본 적이 없다고 하더라. 또 해결방법은 수술밖에 없다고 했다. 그 수술비는 한쪽에 삼천 오백 불에 달했다.

 

마른하늘에 날벼락이라고 할까. 그런 심정이었다. 멀쩡히 잘 지내던 강아지가 왜 그런 현상을 겪게 된 것일까? 잠시 수술은 생각해보겠다고 돌아왔다. 한국으로 가서 수술해야 하나? 다른 자연치료 방법은 없나? 내가 알아낼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해서 강아지의 슬개골 탈구 증세를 찾아봤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수술밖에 방법이 없다는 사실을 재확인한 것과 이 증세가 유전적인 요인이 크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이유로 이 병을 앓고 있는 경우, 자손을 갖는 것을 권하지 않는다는 것도.

 

문득 돌이켜 보니, 강아지를 나는 한국의 애완동물 가게에서 데려왔었다. 같은 래브라도리트리버들이 여러 마리 옹기종기 있는 모여 있던 우리가 몇 개씩 줄지어 있던 전문 애완동물 가게였다. 그리고 그 종이 얼마나 순수 혈통인지를 입증한다는 곳이었다. 모두 다 어여쁘게 생긴 종들이었는데, 그렇다면 그 아이들의 부모는 과연 누구일까? 과연 유전적인 증세를 몰랐을까? 아니면 정말 안전하게 유전적인 거리가 먼 종들과 만남으로 이 강아지들이 생긴 것일까? '예쁜 것'만을 위해서 만들어진 아이들일까?

수술을 고민하며 여러 생각이 꼬리를 물던 나는 그간 내가 키워오던 반려견들이 앓던 다양한 질병에 대해서도 기억해냈다. 평생 피부병을 앓아오던 강아지도 있었고 치아 문제를 가진 경우도 있었다. 한편으로, 자연스레 삶 속에서 아플 수야 있지만, 유전적 질병이란 과연 어디서부터 도래한 것일까 생각해보았다. 그리고 강아지를 키우며 알게 된 순수한 혈통에 대한 인간의 몰이해와 만행에 대해서도 기억해냈다. 지금의 강아지들의 모습이 100년 전과 다르다 하던데, 근친교배로 자꾸만 만들어내 유전병을 키워왔기 때문이란다. 예쁠 순 있지만, 당연히 건강하지 않을 수 있다.

 

약 이틀은 꼬박 생각으로 시간을 썼던 것 같다. 그 결과 나 자신에 대한 반성의 마음과 한편은 속죄의 마음으로 수술을 결정했다. 수술 이후 관리가 더 걱정이긴 했지만, 이대로 둘 수는 없는 문제라 생각했다. 외식 한번 덜 하고, 불필요한 지출을 더 줄이는 한이 있더라도 반려견에 대한 배려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물론 그 와중에 도대체 왜 쓸데없이 돈을 낭비하냐는 핀잔도 들었고, 무의미한 일에 투자한다는 비판도 들었다. 매우 큰 돈을 '그깟 강아지' 때문에 쓰다니 라는 말과 함께.

 

솔직히, 거금을 들이며 이런 고생을 하는 건 나의 미래를 위해서 10%, 나의 과거에 대한 반성 90%. 아마 나는 은연중에 알면서도 이 아이들이 어디서 왔는지 궁금해하지 않았었던 것 같다. 아마 나는 알면서도 그냥 예쁘고 보기 좋은 것을 찾았나 보다아마 난 알면서도 물건 사듯 사고파는 곳에서 강아지를 사 온 것이었나 보다. 아마 난 알면서도 또한 알고 싶지 않았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면서 동물을 보호해야 한다고 외쳤고, 그러면서 저 멀리 동물보호 단체에 후원했더랬다. 참으로 스스로가 어리석게 느껴지며 절로 부끄러워졌다.

 

나의 과거 과오에 대한 빚, 그 빚을 갚는 것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알면서도 모르는 체하던 것이 무엇보다 크리라.

 

 

수술일이 결정되었다. 아마 이후로도 완쾌까지 꽤 많은 경험이 있을 것이다. 영락없이 지난여름, 내 무릎뼈가 부러져 몇 주간 집에서 요양만 해야 했던 것처럼 또다시 집에 박혀 이 여름을 즐기기를 포기해야 할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거의 빚과 만나는 순간을 나는 기다린다. 그 빚을 다 청산해야 미래로 한 발짝 나갈 수 있을 테니. 마치 수술 후 강아지가 한 걸음 씩 다시 내딛게 되는 것처럼, 나 또한 함께 조금씩 더 걸어갈 수 있을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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