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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 [문예정원] 기차 칸을 세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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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반숙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19-08-08 16:30 조회1,79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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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1f25f12d3f4ea6f01cec73e0f76ab00_1565307030_3901.jpg 반숙자 /캐나다 한국문협 회원

 

 

노부부가 가만가만 풀을 뽑는다. 호미를 쥔 손등에 동맥이 내비쳐 쏟아지는 햇살에 푸르게 빛난다. 올 봄내 몸살감기를 달고 사는 남편은 기운이 달리는지 호미를 내려놓고 질펀하게 내려다보이는 들녘에 눈길을 꽂는다.

 

그 들녘을 가르고 기차가 지나간다. 음성 역에 정차하지 않고 그냥 지나가는 것을 보니 화물차인 모양이다. 꼬리가 길다. 디젤기관차로 바뀌기 전에는 기차 소리가 칙칙 폭폭으로 들렸었다. 언젠가부터 기차 소리는 털커덕털커덕하다가 요즘은 뿌우웅한다. 하루에도 여러 차례 기차가 지나가는 기차역을 바라보며 일하는 이 언덕에서는 어려서와 마찬가지로 기차는 장난감이다.

 

무료해지면 노부부는 기차 칸을 센다. 하나, , 열하나……. 번번이 숫자를 놓친다. 아니 숫자가 아니라 기차 화물칸이다. 숫자 때문에 옥신각신할 때가 많다. 남편이 스무 칸 하면 나는 스물 한 칸이라 우기고, 그런 실랑이 끝에 가까이 있는 전신주나 나무 하나를 기준으로 세우고 거기를 지나가는 차 칸을 세는 것이 정확하다는 것을 알았다. 그것도 노안으로는 어사 무사하다. 하여 한쪽 눈을 찡긋하게 감아 놓고 한 눈으로만 세는 것이다. 그때 서로의 표정 때문에 웃는다. 승자도 패자도 없는 기차 칸 세는 일에 저녁 외식으로 삼선해물짬뽕을 걸어놓으면 어려서 땅따먹기 할 때처럼 재미가 난다.

 

젊어서는 우리에게도 매달고 가야 하는 기차 칸이 여럿이었다. 지금 일하고 있는 밭은 장정 힘으로는 하루 새벽 일감도 되지 않는다. 사과나무 400주를 농사짓던 밭이 30년 세월을 삼키면서 30여 주로 줄더니 또 20여 년이 지나면서 이제는 열 그루가 남았다. 골고루 유실수를 남겨놓고 힘에 부치는 것은 임대를 했다. 학교 운동장만 한 텃밭에 큰 농사라도 짓는 양 날마다 올라와서 자는 듯 노는 듯 풀을 뽑는다. 일의 능률이 오르지 않아 작은 밭인 데도 이쪽 뽑고 나면 저뽁 풀이 자라고 서로 번차례로 시소를 태운다. 어떤 날은 기차 타고 여행한 이야기로 시간을 보내다 오기도 한다.

 

차량 스무 칸에 시멘트를 채우고도 이탈하지 않고 씩씩하게 달리는 기차처럼 사람들은 저마다의 삶의 차량을 달고 레일을 만들어 잘도 달린다. 목적지가 분명하고 하역 할 역을 알아 임무를 완수한다. 그런데 나는 레일을 잘못 찾아 저 아래 세상에 살 때는 욕심도 많았고 그에 따르는 독선도 많아 평지풍파를 일으키기도 했다. 나 아니면 안 되는 줄 알고 과녁을 아파하면서도 거기 따르는 성취의 부가가치를 즐기기도 했다. 그런 내가 성취보다는 더 큰 기쁨을 농장에서 느끼고 두렵던 사람들에게서 평화를 얻는다.

 

그 사이 메밀꽃이 피었다 졌고 배꽃이 핀다. 옆에 사과 꽃도 발갛게 꽃망울을 내민다. 좀 더 있으면 밤꽃이 비릿한 냄새를 불온하게 날리며 피어날 것이다. 그 다음으로는 죽은 척하고 있는 대추나무가 깡다구를 보이며 잎을 내밀 것이다.

 

올해 8학년에 올라선 남편은 몸이 먼저 말하는지 자주 피곤해한다. 작년만 해도 강원도 여행을 두 번이나 운전했다. 이제는 한 시간거리 문강온천 나들이가 고작이다. 그럼에도 아이들 소꿉놀이 같은 농사 시늉을 여태껏 하는 것은 철 따라 길들여졌던 농사꾼 체질이 남아서 일 것이다. 양은 적어도 때맞춰 남들처럼 배와 사과나무 열매 솎기를 하는 일도 즐겁고 봉지를 싸고 가을에 수확하는 재미를 잊지 못해서다.

 

요즘 모든 것들이 고맙다. 여기 밭과 농막은 내가 첫 수필집 《몸으로 우는 사과나무를 쓰게 했던 곳이어서 더 질긴 애착이 가고 고락을 함께 한 남편에게도 부부 이상의 고마움을 느낀다. 70년대 농산물 값 폭락으로 사과나무를 베면서 붙들고 울던 곳도 여기다.

 

옷장을 열면 친구가 사준 옷들이 먼저 눈에 들어오고, 제자가 여행 중에 나를 기억하고 사다 준 컵, 엽서 한 장, 사소한 기억 하나까지 모조리 떠오르는 날에는 그만 가슴이 벅차서 가만히 합장한다. 이만큼 세월에서 돌아보니 친구로 후배로, 제자로 이웃으로, 스승으로 이름을 달리하고 함께해 주었던 사람들이 바로 나의 분신이었음을 깨닫는다.

 

어떤 때는 사랑도 부담이라고 마음을 끓였었다. 받은 것보다 더 많이 갚지 못해 의기소침할 때도 있었다. 정도 욕심내 스스로 아파하기도 했다. 요즘은 고맙고 좋았던 기억만 살아난다. 함께 정을 나눌 사람이 있어 고맙고 이미 세상을 떠나 갚을 수 없음은 사랑만 남아서 아프다.

 

어느 수도자가 어떤 기도도 사랑만 못하다고 하더니 점점 실감이 난다. 어느 만큼 살면 사람은 세상을 떠나게 마련이다. 아무리 좋은 작품을 남겼다 한들, 아무리 화려한 명예를 남겼다 한들, 사람들 가슴에 각인된 사랑의 기억에 비하랴.

 

이제 우리 인생의 기차 칸은 다 떨어져 나가 각기 제 기차를 몰고 간다. 홀가분해서 좋다. 비록 기차 칸을 세는 일이 의미 없다 하더라도 무위자연을 누리며 조용히 늙어가는 이 삶도 아직 생이라는 레일 위에 있으니 이 아니 고마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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