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가 산책] 콩이와 네로 > LIFE

본문 바로가기
사이트 내 전체검색


LIFE

문학 | [문학가 산책] 콩이와 네로

페이지 정보

작성자 정숙인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19-08-15 16:49 조회1,937회 댓글0건

본문

cb16f97d59cdd00d99b9c9672de88001_1565912923_685.jpg  정숙인/ 캐나다 한인문학가 협회
 

사람에게 받은 상처가 있다면 사람으로부터 치유받아야 한다고 어떤 이는 말하지만

반려동물이 주는 위로와 사랑은 상상을 초월하여 놀라움과 감동을 안겨준다. 살아가는

내내 우리는 속절없는 좌절의 늪으로 가라앉거나 풀리지 않는 삶의 수수께끼 속에서

우울하거나 화가 나는 시간들과 종종 맞닥뜨린다. 일상생활 속에서 쌓이는 스트레스를

지인을 만나 술 한 잔을 나누며 회포를 풀기도 하고 좋아하는 취미 생활을 함으로써

정신과 육체에 찌든 노폐물을 걸러내 버리고자 한다. 나 역시 운동으로 쌓인 스트레스를

해소하여 왔으나 어느 순간부터 운동만으로 모두 해결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사람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어도 책을 읽어도 음악을 들어도 풀리지 않는 그 무엇이 나의

내면 깊숙이 자리잡고 있었다. 그것을 깨닫는데 다행히 오랜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사람과의 교류에서도 풀지 못하는 것, 그것은 내가 오히려 위안을 받기보다는 사랑을

주고 끊임없이 돌봐줌이 필요한 반려 동물과의 만남이었다. 그렇게 해서 현재 두 마리의

고양이들을 나는 키우고 있다. 동물이 아닌 가족을 맞이하는 심정으로 밥그릇, 물그릇,

그리고 편안하고 안락하게 몸을 눕힐 수 있는 지붕이 있는 침대를 정성스레 골랐다.

어느 것 하나 중요하지 않은 것이 없는 물품중에서 더 없이 중요한 화장실 변기를

신중하게 고르고 용변을 처리할 조그만 삽도 장만했다. 아기냥이가 드디어 입양되어

오는 날, 더디게 째각거리는 시계만 바라보았다. 태어난 지 11주 되는 암컷 샴고양이,

땅콩이 왔다. 끝자만 떼어 ‘콩’이라 부르기로 했다. 낯선 곳이라 저도 긴장한 탓인지 앉은

채 꾸벅꾸벅 졸았다. 엄마와 헤어져 묘생살이 시작한 아기 고양이가 한없이 안쓰러워 꼭

안아주고는 ‘우리 서로 사랑하자. 살다보면 좋은 일이 많을거야.’라며 다독였다. 천성이

순하디 순한 콩이는 이내 적응하였고 하루에 나로 하여금 뽀뽀를 백 번 이상씩 하게

만드는 예쁘고 착한 콩주로 성장했다. 현재 한 살하고 일개월이다. 한 달 전 생일파티를

해줬다. 해피 버스 데이 머리띠를 두르고 동생인 네로와 사진을 찍어주고 여러 종류의

간식도 골고루 맛보게 해주었다. 4개월 전에 콩이 동생, 네로가 입양되어 왔다. 네로는

‘검은고양이 네로 네로’ 하며 어릴 적 노래에 나오던 그 녀석과 닮았다. 네로는 암컷으로

아메리칸 숏 헤어종이다. 없는 듯 존재하는 콩이와 정반대의 성격을 지녔다. 정글에 사는

침팬지마냥 커튼에도 매달리고 줄이 길게 늘어진 것은 무엇이나 붙들고 뛰어올라 높은

곳까지 단숨에 올라간다. 동작이 어찌나 잽싼지 발톱을 깍거나 닦아주려 하면 앙칼지게

할퀴고는 도망가 버린다. 콩이보다도 어린 8주때 입양되어 와서 더욱 애잔한 마음에

안아주려다 매 번 실패하였다. 그래도 나는 녀석을 계속 보듬어 줄 것이다. 아기 네로는

콩이를 엄마처럼 여긴다. 사람으로치면 십대인 콩이의 젖을 스스럼없이 빨며 잠을 잔다.

순한 콩이는 몸을 내맡기고 가만히 있거나 네로의 머리나 몸을 엄마처럼 정성스레

핥으며 씻겨준다. 그 둘의 모습을 보고 있자면 참으로 평화스럽다. 서로 다른 부모밑에서

 

태어나 평생 같이 살기위해 가족으로 만난 아이들과의 인연이 참으로 놀랍고 소중하다.

내 안에 주어야 할 사랑이 아직 이토록이나 많이 남아있다는 걸 다시금 깨닫게 해준

아이들의 존재가 말로 표현못할 커다란 위안으로 안겨온다. 사람만이 사랑의 대상이

아니란 것을 이 세상의 동물도 식물도 살아 숨쉬는 것들은 모두 엄연히 사랑받아 마땅한

귀한 존재임을 깨닫는다. 느닷없이 네로가 얌전히 있는 콩이에게 펀치를 날리고

도망간다. 여지껏 참았던 콩이가 그 뒤를 쫓는다. 둘이 엉켜 싸우는 것 같지만 이윽고

둘은 여전히 다정스럽게 서로를 핥아주며 애무한다. 그들을 바라보고 있자니 하루가

멀다하고 싸우고 미워하고 시기하는 인간의 이기적인 모습에 반성의 마음이 든다. 좋은

환경에서 살아야 네로와 콩이도 건강할 것 같아 나도 좋은 모습을 아이들에게 보여주려

결심한다. 우리 서로에게 좋은 영향력을 주도록 하자. 이따금 눈을 마주하고 일어났던

일들을 말해주며 대화를 시도해 본다. 콩이는 지그시 눈을 맞추고 가만히 귀기울인다.

요리를 할 때에도 옆에 앉아 얌전히 지켜보고 있다. 십 년쯤 뒤에는 개를 한 마리 입양할

생각인데 네로와 콩이가 그 때는 어린 아기 강아지에게 더 없이 좋은 엄마가

되어주리라. 그들과 함께 정을 나누며 나는 적어도 자애로운 할머니로 늙어갈 것이리라,

내 주름 하나 하나에 그들과의 추억을 짜넣으며, 따스하고 사랑이 넘치는 추억을 가슴에

새긴 화평한 노인으로.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플러스로 보내기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LIFE 목록

Total 5,756건 6 페이지
게시물 검색
회사소개 신문광고 & 온라인 광고: 604.544.5155 미디어킷 안내 개인정보처리방침 서비스이용약관 상단으로
주소 (Address) #338-4501 North Rd.Burnaby B.C V3N 4R7
Tel: 604 544 5155, E-mail: info@joongang.ca
Copyright © 밴쿠버 중앙일보 All rights reserved.
Developed by Vanple Netwroks Inc.
모바일 버전으로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