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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 [바다건너 글동네] 무한에 이르는 길 (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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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박병호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19-08-21 11:32 조회1,537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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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4bdea66f48f7bdb1df39615c561d94_1566412290_0309.png박병호/ (사)한국문협 캐나다 밴쿠버지부 회원

 

맥도날드에 가려고 집을 나선다. 프레이저강과 버라드만을 남북으로 연결하며 강과 바다로 나

가려는 알뷰러스 그린웨이를 걷는다. 땅은 끝이 있다. 그러나 기름진 땅은 무한 바다로 이어진다.

바다는 수증기의 씨앗을 만들어 하늘로 쏘아 올린다. 하늘에 닿으려는 아름드리 시다 나무가 태

양을 받쳐 든 포인 그레이 세컨더리 스쿨 앞에서 샬렌과 마주친다. 학교는 유한한 인간을 무한 세

상으로 안내한다. 샬렌은 하얀 원반을 한 손에 들고 있다. “원반 던지러 가는구나?” 반바지 밝은

운동복 차림이긴 하지만 얼굴은 창백하기 그지없다. 날개 없는 원반이 상상의 날개를 달고 하늘

을 난다며 아이처럼 아끼는 그 원반을 들고서 그렇다.

무슨 일이 있을 것인가. 이동 중 만난 동종 동물은 누군가에겐 기회이고 누군가에겐 위험이라는

데. 여전히 눈을 땅에 붙인 샬렌이 공원 방향으로 걷는다. 뒤에서 보니 그녀의 손에 들고 있는 것

은 원반만이 아니다. 다른 한 손에 들고 있는 시티마트의 연초록 비닐포장지에 뭔가가 들어 있다.

평소, “창의력에는 복습보다 예습이...”라고 PW 미니스쿨 험프 교장 선생님 같은 말을 하면서도,

눈을 오래 주시하며 우정을 잉태하던 샬렌이 눈길을 피한다. “혼자서 생각하는 훈련과 친구와 함

께 응용력을 기르는 연습이 창조적 뇌로 가는 길.”이라며 MIT 미디어랩 미첼 교수를 따르는 그녀

가 “이제 창의적 내일은 없다.”라고 돌변한 모습이다.

말이 폭포수로 흘러나오던 샬렌, 평소보다 말을 좀 많이 한 때는 자신의 말이 나비처럼 훨훨 날아

간다고 하며 수줍어하던 원래의 그녀가 아니다. 전혀 그녀 같지 않을 뿐만 아니라 마치 들개떼를

만난 하이에나가 그 길을 빨리 도망치려는 것처럼 정신없는 모습이다. 토끼를 기르고 싶다던 샬

렌이 혹시 비닐봉지 안에 토끼집을 넣고 가는 것은 아닐까. “아니야, 그 귀여운 동물 때문에 이러

지는 않을 거야.”

아빠 엄마를 먼저 보내드리고, 반원형의 오던 길을 빠르게 되돌아 샬렌을 따라잡는다. 나는 그녀

옆에 나란히 걷는다. 그녀는 여전히 말이 없다. 내 말 역시 표시되어 나오지 않는다. 퀼체나파크

누군가가 기증한 벤치에 나란히 앉는다. 내 시선은 비닐봉지에 꽂혀 있다. “그건 뭐야?” 한동안 대

답이 없다. 더 묻지는 않는다. 그 봉지는 여전히 샬렌의 손에 들려 있다. “잔디에 내려놓든지, 벤치

에 내려놓든지.” 여전히 반응이 없다. 그 순간 긴꼬리 추켜든 다람쥐가 나무에서 내려오더니 봉지

에 다가선다. 멍한 눈길의 그녀가 다람쥐와 눈을 한 번 마주치고는 눈물을 훔친다.

나는 물티슈를 꺼내 건넨다. 샬렌이 고개를 끄덕여 고맙다는 표시를 하고는 원반을 벤치에 내려

놓은 손으로 연신 콧물을 훔친다. 나는 물티슈를 봉지째 들이민다. 그녀가 비닐봉지를 잔디에 내

려놓고는 티슈 한 장을 꺼내 젖은 눈가를 닦는다. 남이 높다고 하는 나무가 아니라 네가 보기에 높

은 나무가 진짜 높은 것이다. 남의 길이 아니라 자기의 길이 무한에 이르는 지름길이다. 진실을 위

해 하늘에 이르는 길, 영원을 위해 한계 없는 길을 걸라는 교장 선생님의 말씀에 공감하던 어제의

샬렌을 포기하고 내 갈 길 갈까 싶다가도 잠시뿐이다. 나의 뇌가 지금의 그녀 모습은 받아들이지

않는다. 자유는 진실을 위한 것이다.

비닐봉지가 미풍에 벌리어 속이 드러난다. 흰 천으로 둘러싸인 구두 박스 크기의 누런 상자 하나

다. “그건 뭐야?” 여전히 응답이 없다. 호기심은 쉽게 사그라지지 않는다. 거부당할수록 의지는

더 굳어진다. 너비 25, 길이 40, 높이 20cm 정도의 상자 안에 무엇이 담겨 있을까? 달려들어 열

고 싶어진다. 생후 3개월이 지난 토끼도 들어갈 크기인데. 나는 재빨리 내 가방을 열어 붕어빵 아

이스크림을 꺼낸다. 아직 녹지 않았다. 엄마 아빠는 빵 없이도 커피를 맛있게 드실 것이다. 두 분

은 커피 앞에서 서로가 상대의 아이스크림 빵이 될 줄 안다. 나는 지금, 이 순간 아이스크림 앞에

서 샬렌의 커피가 된다.

샬렌의 눈이 공원과 트레일을 가르는 베리 숲을 향한다. 장미과 쌍떡잎식물 블랙베리와 미국 향

나무종 적삼목이 가지치기 없이 어우러진 공원과 옛 철길의 경계지점은 가시덤불이 우거져 있는

것처럼 보인다. 샬렌이 갑자기 불쑥 일어서며 중얼거린다. “저런 곳에 집을 지을 수는 없어.” “뭐라

고 샬렌?” 대꾸하지 않는 그녀가 양손을 다시 두 물건으로 채우고 잔디밭을 가로지른다. “어디로

가려고~?” 질문에 대한 대답은 아니었지만, 드디어 고개 들어 손가락질과 함께 입을 여는 샬렌..

대화가 이뤄질 수 있다는 희망이 솟아난다. “네 집이네? 하나 부탁해도 될까?” 나는 고개를 끄덕

인다. “그래 우리 집, 무엇이든 말해.” “집에 꽃삽 있으면 ~?” “응 얼른 가져올게.” 내가 서두른다.

 

샬렌은 다시 벤치로 돌아가 앉고 나는 공원 아래 집을 향해 달린다. 궁금증들이 튀어나와 함께 뛴

다. 미친 사람처럼 혼자 말하며. “꽃삽은 어디에 쓰려고? 집을 짓는다고? 공원에 토끼집을 지으려

는 것은 아니겠지? 대학 가면 도시공학을 전공하고 싶어 하는 샬렌이 건축 가능지와 불능지를 구

분 못 할 학생은 아니지. 우리 반 30명 중 가장 공부 잘하는 그녀가 어떻게 된 것은 아니겠지. 벤

쿠버 웨스트 학군과 관계없이 광역 밴쿠버 전역의 모든 초등학교 학생들이 세 단계의 입학시험을

치러야 들어올 수 있는 공립 영재 미니 스쿨에서 수재 중의 수재. 아무리 극과 극은 통한다지만 엊

그제까지도 멀쩡하던 그녀가 갑자기 잘못될 리가 없지.”

꽃삽을 찾은 순간 다른 생각들이 날개를 단다. “혹시 상자 안에 들어 있는 것은 샬렌네 기니피그

쿠스가 아닐까? 아마도 확실해. 꽃삽은 땅을 파는 데 쓰는 물건이야. 그녀가 다람쥐를 보고 울었

어. 안락사? 가장 친한 나의 눈도 마주치지 않았고. 죽을 때는 되었나. 샬렌의 샤네시 초등학교

입학 기념으로 아빠가 사줬다고 했으니까 만11년, 평균 수명을 훨씬 넘긴 거야. 그런데 샬렌 아빠

는 퀘벡에서 아직 안 오셨나?” 생각들을 정리하고 천천히 돌아가려고 했으나 자동반사적으로 서

둔다. 냉철한 이성의 소유자로 알았던 샬렌이 감성에 편향해 기다리고 있다.

샬렌이 어제 그제 혹시 먹이를 주지 않은 거 아냐? 하루면 몰라도 이틀이나 먹이도 물도 먹지 않

았다면 금방 노화가 진행되는데. “혹시 쿠스에게 먹이는 주고 나왔니?” 흠칫 놀라며 샬렌이 되물

으며 답한다. “어떻게 알았어? 어제 당근을 줬는데 하나도 먹지를 않았더라고.” “다른 증상은 없었

어?” “믿을 수가 없어.” 샬렌이 벤치에서 일어서며 말한다. “확실한 건 알 수 없지만, 전염병일 수

도 있어.” “자초지종을 말해봐 샬렌.” “늦잠을 자고 있는데 엄마가 놀라서 소리쳤어. 빨리 나오라

고, 쿠스가 힘이 없다고. 잠결에 나갔는데...” 말을 잊지 못한다. “그래서?”

“소리 없는 쿠스가 목을 뒤로 젖히면서 팔다리는 발광하듯이 떨었어. 힘이 빠진 채 옆으로 계속 누

워있고.” “그래서?” “케이지와 주변을 대청소하고 목욕시킨 후 강력 살균제, 빨간 포비돈으로 몸을

닦아 주었어.” “급수기는?” “급식 기랑 퐁퐁으로 닦은 후 세제 물로 소독했어.” “세균 처리는?”

“햇빛에 두 시간 정도 쬐어 바짝 말렸지. 그 정도면 박멸되었겠지 하고.” “그때 쿠스는?” 내가 수사

관처럼 느껴져서 가능한 한 저음으로 느리게 물었다. “상자 갖다가 천 깔고 그 안에 집어넣고 물도

줬는데 코에서 콧물이 계속 나오고 물을 입에 대주면 더 발광하더라고.” “감기 들었었나?”

“몰라, 좋아하던 사과를 줘도 *랄하듯 발광하고 몸을 가누지 못하고 옆으로 누워있어 병원에 데

리고 갔어.” “수의사는 뭐래?” “정밀검사를 하게 되면 쇼크사로 죽을 수도 있다며 쿠스가 편히 쉬

도록 진통제를 놔주더라고 항생제랑.” “세균성 병이라면 항생제를 맞고 치료가 될 텐데.” “ 응 그렇

게 되면 쌩쌩해지니 다시오라고 했어.” “바이러스 감염이면 항생제가 효과 없을 거라고는 안 해?”

샬럿이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병원에서도 아프다고 발광하던 쿠스가 진통제

를 맞더니 조용히 꾸잉 소리를 냈는데...” “그러더니 죽었어?” “쿠스를 천을 깐 상자에 넣고 걸어오

는데 조금 움직이는가 싶더니 죽은 금붕어처럼 계속 옆으로 누워있더라고.

“효과가 없었구나.” “나아지는 것은 없고 점점 집에 가까워질수록 눈을 감더라고. 만져보니까 온

몸이 굳어 있었고 .” “그렇게 무지개다리를 건넜구먼.” “털 빠짐이 시작되었을 때 발견해 치료해 주

었더라면, 오줌 색깔이라도 점검했었더라면..” 우울과 자책감에 빠져있던 샬렌이 대화를 할수록

정상으로 돌아오는 것 같았다. 주인의 죽음을 슬퍼하며 자리를 지키다 죽어간 충견처럼 음식도

친구도 거부하여 쇼크사나 자살이 염려되었던 그녀가 돌아온다. 평소에 지극히 건강하고 활달했

다는 것이 항 우울증 치료제나 노화 방지제가 되지는 못한다.

“상자에 넣어 묻어주려고 하는데 어디에 묻어야 좋을지.. 공원 경계 밖에 묻으려고 했는데, 가시덤

불에 묻을 수는 없고.” 비닐 상자를 보며 내가 조용히 묻는다. “내가 도울게. 쿠스는 나의 친구이기

도 해. 엘리자베스 파크는 덤불이 없는데.” 샬렌은 잠시 생각하더니 고개를 끄덕인다. “쿠스가 특

히 할머니를 좋아했는데, 여왕 할머니도 빙글빙글 돌면서 좋아할걸. “아빠는 안 오셨어?” 샬렌이

고개를 끄덕인다. “엄마는? 엄마는 쿠스를 싫어하시지?” “아마 속이 시원하실걸. 쿠스의 자유를

환영한다는 핑계로. 동물을 실내에서 키우는 것을 구속이라고 하는 하객은 초청할 수 없지.” “그럼

우리 엄마를 부를까? 쿠스를 참 좋아하셨으니까.”

“걸어가면 한 시간 못 걸리겠지?” 샬렌이 묻는다. “아마 한 45분쯤 걸릴 거야. 천천히 걸으면 한 시

간이고.” “나는 걸을 수 있는데.” 샬렌이 내 눈치를 살핀다. “그래, 빨리 헤어지기 싫지? 함께 걷자.”

몇 개의 교회 및 천주교회와 에릭햄버 스쿨이 나타났다 사라진다. 드디어 해바라기 얼굴을 한 태

양이 웃음 짓고, 귀여운 토끼들이 뛰어놀고, 꽃이 화사하게 피어 있는 동산의 풍경이 나타난다.

주택사업자들이 지으면서 분양 중인 비슷한 모양의 5층 콘도들이 공원 건너편 길 따라 몇 동이 모

여있는 캠비가를 지난다.

공원 입구부터 엄청나게 키가 큰 나무들이 듬성듬성 들어선 사이 사이로 햇빛이 꽤 잘 들어온다.

사람이 별로 없는 곳에 2차선의 자동차 길이 있다. 차길을 아무리 걸어도 차도 사람도 흔적이 없

다. 도로 옆의 햇빛이 쏟아지는 나무 밑 공터를 발견한다. 샬렌이 그곳에 다가간다. 일부러 만들어

진 곳이 아니라 키가 10층 높이만큼 큰 나무가 한나절을 햇빛을 가려 다른 나무들이 자라지 못해

서 생긴 공간이다. 석양 햇빛만이 눈 부시게 쏟아져 연초록 풀밭을 밝게 비추는 자연스러운 공간

이다.

 

한낮에는 거대한 나무의 그늘이 만들어내는 어둠 속에서 오후 늦게 불쑥 나타난 햇빛 쏟아지는

공터는 어찌나 아름답고 기분을 좋게 하는지, 마치 엘리자베스 여왕의 황금 목걸이 같다. 브리티

시 컬럼비아는 아름다운 곳에는 어디나 거의 사람이 없다. 아름다운 곳은 사람으로 가득 찬 한국

이나 싱가포르와 다르다. “주변이 아름답고 온화해. 쿠스도 좋아할 거야.” 크고 귀여운 눈망울을

가진 하늘 다람쥐가 긴 꼬리를 위로 치켜올리고 나무를 오르내린다. “다시는 멍에를 메지 말라.”고

꼬리 춤 춘다.

나무 위에서는 영특한 까마귀가 하늘 향해 입을 벌린다. “스스로 결정하도록 창조된 사람!”이라고

목청 높인다. 샬렌이 묻을 지점을 가리킨다. “저쪽이 어떻겠어?” 나는 꽃삽을 들고 그곳에 다가선

다. 샬렌이 손을 들어 소리친다. “잠깐! 이 지점이 공원 구역인가 밖인가?” “이 도로 바깥쪽이니까

공원 밖인 것 같은데.” “저 버스 길까지 공원 구역이 아닐까?” 마침 해지는 방향으로 멀리 한 녹색

지붕의 집 현관이 열리며 할아버지 한 분이 지팡이를 짚고 나오신다. “내가 가서 여쭤보고 올게.”

샬렌의 대답도 듣지 않고 내가 달린다. 할아버지도 80년을 여기 살지만, 공원 경계는 잘 모르신단

다. 할아버지는 매우 깊게 땅을 파고, 둔덕도 십자가도 만들지 말고, 잔디를 잘 덮어 다른 잔디밭

과 구별되지 않게 하면 그곳에 묻어도 된다고 하신다.

샬렌이 다른 분한테 한 번만 더 물어보자고 한다. 그러나 길거리엔 지팡이 할아버지 외에는 그 어

떤 사람도 보이지 않는다. 할아버지가 집으로 들어가실 때까지 기다린다. 그런데 돌아가시기는커

녕 우리에게 다가오신다. “얘들아, 너희가 친구를 여기에 묻는다고 해도 아무도 나무랄 사람이 없

을 거야. 저 봐라. 다람쥐와 까마귀도 환영하지 않니? 고심할 것 없다. 나도 도와주마.” “아니요, 스

스로 할 수 있어요. 쿠스도 그걸 좋아할 거예요.” “아무렴 그렇고말고. 인간의 능력은 무한해. 아름

다운 정신만 가지면 자신을 이기는 힘이 생기지. 한계는 사라지고.” (다음 호에 계속,

joel.park@investorsgrou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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