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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 [문예정원] 어른이 된다는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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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권은경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19-08-27 12:04 조회2,07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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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880050603d6645811a08d11e5a4b48d_1566932627_1084.png 권은경/ 캐나다 한국문협 회원
 

직장에 휴가를 내고 한인 어린이를 위해 마련된 교회학교에서 자원봉사를 했다. 나와

같은 검은 머리에 검은 눈동자를 가진 아이들을 맞이하며 괜스레 마음이 설레었다.

다양한 사람들이 섞여 사는 캐나다에서 인종이나 국가, 종교, 관습에 대한 편견을

내려놓아야 함이 마땅하겠지만 같은 민족에게 기우는 마음은 어쩔 수가 없다. 아이들

하나하나가 마치 내 아이와 같이 소중하게 느껴졌다. 우리 언어로 이야기를 나누고,

노래를 부르고, 한글로 쓰인 책을 읽어 주었다. 흰 쌀밥에 김치를 나누어 먹을 수 있는

그들이 어찌나 귀하게 느껴지던지 틈만 나면 안아주고 업어주며 사랑을 표현했다. 이제

곧 킨더가든에 들어갈 아이들은 단 하루 만에도 친밀감을 표시하며 스스럼없이

다가왔다. 엉뚱한 질문을 쉼 없이 쏟아내는 녀석들에게 일일이 응대하며 웃다 보니

일주일이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갔다. “선생님, 다음에 올 때는 형처럼 이만큼 커서

올게요.” 헤어지기 서운한지 엄마 손을 잡고 나가던 아이 하나가 되돌아와서는

까치발로 손을 높이 뻗으며 말했다. 아이의 눈은 별빛을 품은 호수처럼 눈부시게

반짝였다. 그 호수에 마음을 집중하니 어른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면서 칙칙하게 퇴색된

나의 지난날을 관조하게 되었다.

 아이들은 감정에 솔직하고 꾸밈이 없다. 좋은 것이든 싫은 것이든 경험을 통해

받아드린 모든 생각과 느낌을 온몸으로 망설임 없이 내어 보인다. 다른 사람의

시선이나 평가 따위를 의식하지 않고 아무도 보고 듣는 이가 없는 것처럼 노래하고

춤춘다. 한시도 가만히 있지 못하고 야단법석을 떠는 녀석들은 현재 자신의 감정에

솔직하게 대처하고 있을 뿐이다. 차지도 뜨겁지도 않으며 그저 미지근해져 버린 나와는

사뭇 대조적이다. 나이를 먹으면서 가진 것은 더 많아졌을 지 모르지만, 가슴을 뛰게

하거나 소리 질러 환호할 만큼 재미있고 신나는 일은 점점 줄어들었다. 좋아도 좋다고

하면 안 될 것 같고, 싫어도 싫다고 말하면 손해 볼 것 같아서 나의 감정에 솔직하지

못했던 순간들이 얼마나 많았던가? 어렸을 때부터 절제와 인내의 미덕은 성공한

사람들에게서 발견되는 필수 품성이라고 배워왔다. 그 가르침에 크게 어긋남 없이

 

살아온 것 같긴 한데 그다지 만족할 만한 결과를 얻은 것 같지도 않다. 그저 마음이

시키는 대로 나를 표현하면 살았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상상을 해 본다.

 아이들은 작은 것에도 세상을 다 얻은 사람처럼 행복해한다. 사탕 한 개, 손톱만큼 작은

스티커 하나를 얻기 위해서도 목숨을 건듯 열정적일 수 있고, 손에 쥐었을 때는 감사할

줄 안다. 자신의 소유물을 돈의 가치로 환산하지 않으며 돈을 가치의 척도로 삼지

않는다. 고액지폐는 멀리 던져버리면서 손때 묻은 곰 인형은 소중하게 품을 수 있으며

그렇기에 주변의 소소한 것 들로부터 쉽게 만족감을 얻는다. 행복의 가치를 외적인

것에만 국한했던 나와는 다르다. 그것이 행복하기 위해 애를 쓰면 쓸수록 나의 삶의

가치가 하락했던 이유이다.

 아이들은 오늘이 마지막 날인 것처럼 내일의 염려 없이 산다.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걱정하지 않으며 오늘 주어진 하루를 마음껏 누린다. 마치 내일이란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오늘에 집중하고 충실하다. 노는 게 제일 좋다고 노래하고, 만약 내일이

자신들에게 주어진다면 그날은 반드시 더욱더 좋은 날이 될 거로 생각하는 것 같다.

나는 아닌 척 하지만 내일 뿐 아니라 다가올 미래에 대한 염려를 마음 한구석에

담아두고 산다. 그래서 오늘을 망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굳이 우울할 필요가 없는 날에

우울해하고, 울 필요가 없는 날에 눈물을 흘리곤 한다. 무엇이 나로 어린아이들도 하지

않는 바보 같은 일에 시간을 허비하게 하는 것일까?

성공과 행복을 담보로 한 삶은 총알이 난무하는 전쟁터와 닮아 있다. 사회에서

낙오되고 경쟁에서 밀려날까 분투하다 보면 순수하고 진실한 영혼은 값싼 소모품

취급을 받고 사라지기 쉽다. 인간미를 상실한 사회는 삶에 대한 신뢰를 떨어뜨리고,

다른 사람에게 자신을 비교하며 결핍감을 안고 살아가게 한다. 감사와 기쁨, 감격과

웃음이 점점 메말라 가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안개가 걷히고 드러난 고요하고 맑은

호수는 아이들의 모습을 통해 오늘의 나를 볼 수 있게 해 준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아이의 가면을 벗고 다시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가지고 있는 순수성을 잃지

않고 인격의 성숙을 이루어 가는 과정일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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