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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 [문학가 산책] 삶의 속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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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정숙인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19-08-29 14:29 조회1,947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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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460272dafd260c733ef08b89c372a6_1567114125_9786.png 정숙인/수필가 (캐나다한인문학가협회) 

어르신그 간 평안하셨습니까?

오곡백과를 수확하는 풍성한 가을이라고 하나 아름답게 물들어 고왔던 것들이 모두 자취도 없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져버리고 뼈처럼 앙상하게 남은 가지들을 보니 가슴은 벌써부터 설렁설렁 찬바람이 드나드는 것 같아 솔직히 씁쓸하기만 합니다저희 집 입구에 족히 백 년은 되어보이는 커다란 호두나무가 있습니다해마다 시월이 되면 풍성한 위엄을 자랑하며 가지마다 주렁주렁 수 많은 호도들이 매달리는데 그 모양새가 제법 위풍당당 합니다과수원 길을 차로 달려 내려가거나 집으로 귀가할 때마다 항상 마주하게 되는 그 나무를 볼 때마다 왠지 한국의 어머니들이 떠올라 코 끝이 시큰해지기도 합니다주어도 주어도 끝이 없는 희생과 봉사로 점철되는 자식에 대한 가없는 사랑을 품에 안고 평생 가시밭길을 걸어가다 그저 그렇게 하나의 우물같은 인생살이를 끝내버리는 우리네 어머니들이 있지 않습니까이처럼 풍요로운 시대속에서도 빈곤의 시대를 여전히 가슴에 품고 살아가는 어머니들을 떠올리며 기나긴 만고풍상의 세월과 마주한 호도나무가 서로 닮았다는 안쓰러움에 그것을 볼 때마다 조금이라도 더 건강하게 오래 살기를 소원합니다어제 아침그 호두나무에 까치 세 마리가 노닐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마치 천상에서 날아온 양 그들의 모양새가 어찌나 아름답던지요넋을 잃고 그들의 날개짓을 쫓아 하늘로 땅으로 시선이 옮겨졌더랬습니다날씬하게 빠진 꽁지도 우아하니 예뻤고 두르고 있는 그윽한 색상이 지닌 깃털의 조화로움으로 새삼 까치가 너무나 아름다운 새라는 것을 처음 알게 되었습니다아침에 까치를 보면 반가운 소식이 날아온다는 말은 정말인 것 같습니다영국 여행에서 돌아와 밴쿠버에서 허겁지겁 부친 원고가 미국의 문학공모전에 당선되었다

는 전화를 받고서야 불현듯 나무 주위를 노닐던 까치 녀석들이 생각났습니다절로 웃음이 입가에 어렸어요런던에서 비행기를 타고 오는 내내 자리에서 꿈쩍도 하지 않은 채 교정작업을 하였는데 배터리가 부족하여 한 편은 완성하였지만 두 편은 아쉬움을 달래며 끝맺을 수 밖에 없었던 터라 기쁨은 두 배가 되었습니다같은 문우로서 어르신께 이 기쁜 소식을 제일 먼저 알려드리고 싶었습니다딸의 일로 이메일을 통하여 우리가 서로 만났던 처음을 기억하시는지요이 넓은 캐나다 땅에서 저는 비씨주에 어르신은 온타리오 주에서 생면부지인 저희들이 오손도손 이메일을 주고 받았더랬지요저에게 해주셨던 여러가지 따뜻한 말씀은 그 때 당시 외로웠던 저에게 많은 위로와 힘이 되었습니다만나보지는 않았어도 글이 가지는 놀라운 힘에 감동하였고 어르신의 진솔하면서도 훈훈한 편지글은 저에게 따스한 정을 느끼게 해주었습니다그 당시 저더러 글을 써보면 좋을 것 같다고 권면해 주셨는데 이미 우리는 서로가 다른 문협에 소속되어 창작활동을 하고 있던 터라 그래서 더욱 서로가 마음이 끌렸었나 봅니다그 또한 크나큰 인연이라 여깁니다밴쿠버의 가을은 어떠할지 궁금합니다북쪽에 위치한 이 곳켈로나는 조석으로 쌀쌀해졌습니다레이첼은 벌써부터 이른 겨울을 맞이한 듯 춥다고 엄살입니다어엿한 대학생이 된 레이첼은 이제 세상에서 가장 바쁜 사람이 되었습니다대학생이 되면 제 품을 벗어나나 했더니 공부하랴 일하랴 싸야 할 도시락때문에 저를 더불어 바빠지게 만들어 버렸습니다그래도 제 곁에서 집밥을 먹으며 학교를 다니니 이 또한 크나큰 축복이라 여깁니다참으로 감사한 일입니다.

어르신부디 건강하십시오또 소식 드리겠습니다.

 

2016년 저물어가는 시월에켈로나에서 정숙인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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