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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 [문예정원] 보름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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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정목일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19-09-06 09:17 조회1,74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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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445d38dccc704df604e9ae5aa072f50_1567786643_2743.jpg 정목일 / 캐나다 한국문협 고문
 

보름달을 보면 현기증이 일어 여자라면 월경이라도 하지 않을까.

한 모서리도 부족함이 없이 꽉 찬 모습에서 원숙을 느끼지만, 절정과 완성 속엔 위태함이

있다.

최상의 아름다움 속엔 가슴 설레는 황홀감이 있지만, 곧 사라질 모습에서 저미는 안타까움이

숨을 죽인다.  

보름달 밤에는 그리움의 오솔길을 걸어 임을 만나고 싶다.

텅 빈 고요 속으로 긴 그림자를 끌며 추억 속으로 걸으면, 어디쯤 에서 대금 가락이 들려올

듯하다.

대금의 음계를 밟으며 달빛 속으로 임을 만나러 간다.

보름달은 이 세상을 채우는 비단 고요 속에 공허함을 품고 있다.

만남에 가슴 설레면서도, 다가올 이별이 깃들어 있다.

달은 임과 보아야 더 좋고, 달빛의 끝까지 마음이 닿아야 아름답다.

보름달 밤인 데도 임이 없어 비애와 고독감이 밀려온다.

그대와 있다면 말 한 마디 없어도 좋다. 꽃들이 피어 있지 않아도 좋다. 달빛만으로도

충분하다.

저녁노을을 보면 애처롭다.

짜릿한 아름다움이 가슴에 파고들지만 별리의 시간이 다가오는 발자국 소리가 들린다.

미의 절정은 감동이지만 오래 가지 못한다. 아름다움이란 섬광에 불과하다.

    

만개한 꽃을 보면 공중에서 땅을 내려 볼 때처럼 아찔하다.

남강에 몸을 던진 논개처럼, 인당수에 뛰어든 심청처럼 바닥도 모를 수렁 속으로 떨어질

듯싶다.

꽃은 벼랑 위에 서 있다. 이제 몸을 던져도 좋을 때를 기다리고 있다.

삶의 집중력을 기울여 필 때를 기다렸으니, 지는 때도 기다려야 한다.

꽃 핀 자리가 아름답다면, 진자리도 아름답지 않으랴.

 

절정은 벼랑처럼 위태롭다. 폭포처럼 떨어질 일만 남아 있다.

마지막 도착점에 서있음을 안다. 그만 숨을 멈췄으면 하는 감정이 들기도 하는 순간이다.

아름다움이 순간이 아니고 변하지 않는 것이라면, 진정한 감동을 얻지 못한다.  

그리움이란 결핍에서 얻어진 보석이 아닐까.

진주조개가 안으로 상처를 얻어 진주를 키우듯이 그리움도 결핍이 키워낸 꽃이다.

원하는 사랑이 이뤄졌다면 그리움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못 잊어 그리움에 목말라 하다 가도, 임을 만나면 그리움은 사라지고 만다.

애절한 사랑은 결핍에서 오는 그리움의 한(恨)이 아닐까.

그리움이란 채워질 수 없고, 어디서도 얻을 수 없는 목마름이다.

보름달은 풍요와 번성을 느끼게 하지만, 완성 속에 고독이 보인다.

보름달은 마음속으로 늘 갖고자 하는 것, 소원하는 것, 채워지지 않는 것,

잃어버린 것, 다시 만나고 싶은 것에 대한 아쉬움의 충만이 아닐까.

결핍과 상실을 메워주는 은은한 위로이자 그리움의 향기가 아닐까.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눈이 내린 듯한 광경을 본다.

진달래꽃 개나리꽃이 다투듯 피어도 무슨 소용인가.

마음만 혼란스러울 때가 있다. 꽃들이 철마다 피어도 그대 없이는 무슨 소용인가.

20대의 어느 보름달 밤에 그대를 만나고, 또 어느 날 남강 촉석루를 배경으로 이별했다.

  그 때의 보름달이 잊지 않고 떠올라 은은한 그리움의 도취를 안겨주곤 한다.

사랑, 절정, 아름다움을 얻지 못했다고 탄식하지 말아야 한다.

결핍과 한(恨)이 초승달처럼 시리지만,

살아가면서 조금씩 그리움으로 채워 가면 만월(滿月)이 되고, 다시 마음을 비워낸다.

      

보름달 아래 그대는 없다. 마음 어느 구석에서 그리움의 대금 소리가 들릴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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