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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빙 | 일본군 성노예를 다룬 영화 데일리 브레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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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전재민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19-09-11 06:37 조회3,02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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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데일리 브레드(Daily Bread) 

2018년 개봉. 루비 첼렌저(Ruby Challenger) 감독. 
첼렌저 감독은 호주인 위안부 생존자인 얀 루프 오헤른(애들레이드 거주) 할머니의 손녀로 감독 겸 연기자로 출연했다.

 


 
8월19일 자신의 일본군의 성노예의 삶을 책으로 만들었던 얀 루프 오헤른 여사가 96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그녀는 수십년을 숨겨왔던 자신의 아픈 과거를 책으로 써서 일제의 만행을 온세계에 알렸다. 

루프 오헤른은 유럽인으로는 처음으로 일본군 위안부였지만 그녀는 위안부라는 말을 혐오했다. 세계 2차대전 당시 일본군이 점령한 자바섬에 살던 네델란드인들중에 한명이었던 그녀는 1944년 2월 26일, 수용소에서 17세 이상의 미혼 여성들을 강제로 징발하여 여러 일본군 위안소로 끌고 갔다. 19살이었던 저자는 칠해정이라는 일본군 위안소로 끌려 갔다. 저자는 하얀 손수건에 날짜와 동료들을 이름을 적어 보관했다.이 손수건은 호주 전쟁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저자를 포함해 일곱 명의 네델란드 젊은 여성들은 약 석 달 동안 칠해정에서 일본군의 성노예로 살았다. 저자는 당시 경험을 공개적으로 밝힌 것은 70세를 두어 달 앞둔 1992년 이었다. 오십여년을 침묵하다 비밀을 공개한 것이다. 그녀의 책제목[50년동안의 침묵: 어느 전쟁 강간 생존자가 쓴 특별한 회고록(Fifty Years of Silenc:The Extraordinary memoir of a war rape survivor)]이다.그러나 50년의 세월에도 지워지지 않고 생생하게 기억된 그 날의 기억들을 이책에서 기술하고 있는 그녀는 아픔을 펼쳐 놓는다. 최근 일본이 주장하는 일본군이 강제로 데려가 위안부를 삼은 일이 없다거나 한국의 교수라는 자가 그들은 몸을 팔러 갔을뿐 강제는 없었다는 망발이 새빨간 거짓임을 증명하고 있다.일본군 ‘위안부’ 경험을 공개한 뒤, 그는 같은 경험을 했던 네덜란드 친구들과 반세기 만에 연락이 닿아 만날 수 있었다. 한 친구는 저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처음 네 기사를 보고, 나는 회피하고 싶었어. ... 하지만 곧 너에게 감탄했어. 나는 아직도 자녀들에게 내 이야기를 하지 못하고 있단다. ... 나도 너처럼 당시 일들을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어.” 또 다른 친구는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나도 이전에 너처럼 내 경험을 공개적으로 발표하라는 부탁을 받은 적이 있어. 그러나 혼자 이야기해서는 소용이 없다고 생각하면서 망설이고 있었어. 그런데 네가 공개적으로 말했다는 보도를 접하고, 나도 돕겠다고 결심했어.”

저자는 50년 만에 자바섬을 찾아가 자신이 다녔던 가톨릭계 학교를 방문하고 그곳에서 그녀의 교사였고, 함께 수용소에 수감되기도 했던 수녀님을 만나기도 했다. 그 수년님은 수용소에 강제로 징발된 어린 여성들의 숫자까지 정확하게 기억했다. 저자의이런 만남은 활자와 영상으로 기록되었다. 

 그녀가 만난 노인이 된 일본군 출신들과 만났다. 일본군 위안소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묻자 한 사람이 대답했다."그때는 그게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것은 군 시스템 일부였다. 우리는 위안소가 군대의 사기를 위해 필요한 것이라 들었다. 위안소는 우리에게 선물처럼 주어진 것이었다. 그게 바로 전쟁이다라고 들었다. 여성은 전쟁에서 강간 당하게 되어 있고, 강간은 우리의 권리라고 들었다. 대답한 사람은 자신이 주체임에도 들었다는 비겁한 화법을 썼다. 하지만 당시 일본군이 위안부를 어떻게 생각하고 이용했는지를 보여주는 중요한 증언이다.

일본인 중에는 일본군 위안부가 창녀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런데 창녀란  성매매여성을 지칭하는 것으로 금전적 댓가를 얻기 위해 성적 서비스를 제공하여 자신의 몸을 기꺼이 팔지만, 원하지 않을 경우 언제든지 싫다고 자유롭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다가 사전적 풀이다. 당시 전쟁상황이란 이유로 조직적으로 납치하고 감금과 폭행을 통해 이루어진 성폭행은 중범죄이다. 

그녀는 4대째 정착해 살던 네덜란드계 집안에서 다섯 남매 중 셋째로 태어났다. 그리고 일본군 위안소에서 풀려난 후 영국인과 결혼했다.영국에서 14년을 산 뒤 부부는 호주로 이주했다.네덜란드로부터 멀리 떨어진 호주이기때문에 자신의 과거 비밀을 아무도 알 수 없을 것이라는 안도감도 있었다. 강간당한 피해자라는 사실을 여전히 수치심으로 떠안고 살았던 것이다.

 결혼 후 두 딸을 얻었고 단란한 가정을 꾸렸다. 교사와 성가대원으로 사회활동도 열심히 하면서 남들이 보기엔 아무렇지도 않은 평범한 삶을 살았다. 하지만 늘 고통을 떨쳐 낼 수 없었고 평생 불안감에 시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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