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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 [문예정원] 학교종이 땡땡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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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정숙인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19-09-26 14:01 조회1,85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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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b65ddf2763a728e91e36ae23014a1e4_1569531636_0373.png 정숙인/캐나다 한국문협


나이를 먹고 어른이 되어도 쉽게 잊혀지지 않는 것들이 있다. 그것은 아무래도 어릴 적

기억속에 더 많이 존재한다. 마치 오랫동안 잊혀졌던 나만의 왕국이었던 다락방에 먼지로

켜켜이 뒤덮여 구석에 놓인 소중한 보물 상자 같다. 겉으로 보기에는 허름하고 볼품없는

낡은 상자지만 세상 어디에서도 구하지 못하는 어린 시절의 보물들은 어른이 되어 인생의

힘든 시간을 맞닥뜨릴 때 잠시동안이라도 나를 현실에서 이끌어내 꿈의 섬에 살고 있는

피터팬이 되게 해준다. 모아 놓은 보물들을 찬찬히 들여다보며 웃음을 잃고 살았던 나를

미소 짓게 하고 따뜻한 추억을 회상하며 다시금 용기와 힘을 갖게 한다.

해마다 새 학기가 되면 학생이 아니더라도 누구나 마음이 설렌다. 새로 시작한다는 것은 그

무엇이건 축복이다. 새 학용품을 사고 새 책가방과 신발주머니, 그리고 새 옷을 준비한다. 나

역시 새로운 물건들이 뿜어내는 냄새가 무지하게 황홀하여 옆에 두고 함께 자면서 그것들에

코를 박고 킁킁거렸었다. 드디어 우리 형제들이 줄줄이 초등학교 일, 이, 삼 학년이 되었다.

보통 때 같으면 오빠들이 쓰던 것들을 물려받기 일쑤였는데 첫 학교 입학이었고

여자아이라서 그랬는지 어머니는 빨간색 책가방과 신발주머니를 사주셨다. 얼마나 좋았으면

나는 거기에 내가 가진 딱지들과 안 먹고 아끼던 쭈그러진 사탕 두 알과 껌 종이, 오빠들을

따라 학교 운동장에 놀러가서 주운 돌멩이를 담아두었다. 그리고 어서어서 꽃피는 봄이

오기를 목놓아 기다렸다. 왼쪽 가슴에 하얀 손수건을 매달고 드디어 소원하던 입학식을

치렀다. 책가방을 메고 신발주머니를 힘차게 앞 뒤로 흔들며 신나게 학교를 오고 갔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어머니가 사 주신 신발주머니를 잃어버리고 말았다. 정확히 말하면

교실 밖 복도에 놓인 그것이 사라져버렸다. 나는 영문을 모른 채 텅 빈 신발장을 보며 마구

울었다. 담임 선생님이 아무리 달래도 소용이 없었다. 이미 사라진 신발주머니는 아무리

기다려도 나타나지 않았다. 어머니가 마음먹고 사준 것은 비싼 것이었다. 모두가 어려웠던

시절에 탐욕을 이기지 못해 누군가 훔쳐간 거였다. 실내화를 신은 채 집으로 돌아간 나는

어머니의 폭풍같은 노여움을 고스란히 받으며 집에서 쫓겨나고 말았다. 너무나 화가 난

 

어머니는 잃어버린 신발주머니를 찾아오라고 하였다. 화가 치밀어 그랬던거지 정말로

찾아오라고 한 뜻은 아니었는데 아이는 집에 다시 들어갈 생각을 못하고 무작정 학교로

향했다. 서산에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고 있었다. 집에서 학교까지 터벅터벅 논두렁 길을

따라 걸으며 두 눈을 왕방울 만하게 뜨고 거북이처럼 땅을 굽어보고 걸었다. 학교까지 간

길을 다시 되짚어가며 걸었다. 학교에서 잃어버린 신발주머니가 길에 떨어져 있을 리

없었다.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땅바닥을 헤엄치듯 살피고 살폈다. 같은 것이

아니라도 좋았다. 신발을 담을 수 있는 거면 어떤 것이라도 좋았다. 해가 모두 넘어가버리고

논두렁 옆 들판은 캄캄했다. 하늘에 떠오른 달님을 바라보며 간절한 마음으로 소원을

빌었다. 눈을 뜨는데 문득 천쪼가리 같은 게 보였다. 시장갈 때 가지고 다니는 보자기 같기도

했다. 비죽이 밖으로 빠져나온 끈을 잡아당기니 흙과 함께 들려 나온 그것은 문방구에서

파는 싸구려 신발주머니였다. 얼마나 거기에 파묻혀 있었는지 엄청나게 헤져 있었다. 그래도

좋았다. 그것은 내게 구세주였다. 어찌나 좋던지 허허실실 계속 웃었다. 비닐로 만든 오십

원 짜리 신발주머니를 팔랑대며 바람처럼 집으로 내달렸다. 어머니는 캄캄해져 돌아온

나에게 이번에는 걱정으로 화를 내며 반가워하셨다. 비록 빨간색 헝겊바탕에 인기 만화가

그려진 것이 아님에도 나는 그것을 가지고 즐겁게 학교를 다녔다. 무엇보다도 싸구려

신발주머니를 다시는 도둑맞을 일이 없을 것 같아 마음은 편했다.

내가 지닌 물건의 소중함을 너무도 절실히 깨달은 보물같은 기억, 세상에 하찮은 물건은

아무것도 없다. 나의 물건이 소중하면 다른 사람의 물건도 소중한 법이다. 어린 시절에

뜨겁게 경험을 해서인지 그 이후로 나는 물건을 여간해서 잃어버리지 않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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