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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 [바다건너 글동네] 그대가 더 오래 살기를 바라기 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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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송무석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19-10-02 11:37 조회2,03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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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db74957aec59f1bf4b13c8b60992ef_1570041398_8455.jpg 송무석 (사)한국문협 캐나다 밴쿠버지부 회원



나이가 들어가면서 죽음을 생각해 보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비단 불치병이 걸리거나 지병을 앓고 있는 사람만이 그런 것은 아니다. 죽음은 누구도 피해 가지 않는다. 다만, 오는 시기가 다를 뿐이다. 그럼 혹시 나의 묘비명에 무어라고 쓸 것인지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이런 시간은 진지하게 인생을 돌아보고 더 의미 있는 삶을 추구하게 한다. 옛날 우리나라 묘지의 비석에는 이름과 벼슬, 관직 등을 주로 새겼다. 캐나다 공원 등에는 의자에 죽은 이를 기리는 문구가 흔히 적혀 있지만, 이것들은 보통 망자(亡者)가 남긴 글이 아니라 남은 가족이 죽은 이를 생각하면서 쓴 것이다. 그럼 만약 내가 내 묘비명을 정한다면 무어라 쓸까?

 

벌써 수십 년 전에 읽었지만, 아직도 가끔 생각나는 이야기가 있다. 어떤 외국 사람의 묘비에 “아내가 좋은 사람을 만나 재혼해 행복하게 잘 살게 해 주세요”라고 쓰여 있다고 했다. 그 해외 토픽 같은 기사를 읽으면서 참 의아했다. 그는 어떤 사람이기에 그런 비문(碑文)을 썼을까? 죽음을 앞두고도 아내의 행복만을 염원하는 애처가이었을까?

 

결혼은 사실 무엇보다 배타적 관계를 선언하는 의식이다. 지금부터 이 두 사람이 부부로 살아가는 것이니 누구도 이 두 사람의 애정 관계에 개입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결혼은 새로운 가정을 꾸미는 것을 축복하고 축하받는 일만큼 사실 이런 의미가 크다. 돌부처도 돌아앉는다는 그런 배타적 관계의 틀을 깨고 다른 남자와 내 아내가 행복하게 살기를 바라는 비문을 쓴 그는 시대를 앞선 멋진 남성일지도 모른다. 자기를 저버리고 가는 애인을 저주하고 원하기보다 깨끗이 단념하고 축복을 기원하는 사람처럼. 물론 그래도 그렇게 포기한 사람의 가슴에는 평생 지워지지 않는 사랑과 미련의 감정이 남아 있게 마련이다. 그래서, 영화 소설에서는 중년이 넘어 재회 과거의 연인들이 새로운 불꽃을 피우는 게 아닐까?

 

하지만, 과연 재혼이 배우자의 행복을 위하는 최선의 길일까? 아무리 이혼과 재혼을 과거보다 쉽게 생각하고 관대하게 보는 시대라지만 이혼이나 재혼은 분명 인생에서 가장 큰 스트레스 요인 중 하나이다. , 가족 성원 모두에게 심각한 충격과 변화를 초래하는 사건이다. 한 번 결혼해 잘 사는 것만 못하다는 말이다. 사별도 부부 관계는 단절되는 것은 마찬가지이다.

 

물론, 살고 죽는 것은 명백히 우리 의지대로만 되는 일은 아니다. 그래도 배우자가 본인보다 더 오래 살기를 바라고 그게 사랑하는 사람을 향한 마땅한 마음 가짐이라 생각이 든다. 그러나, 막연히 더 오래 살기를 바란다는 것만으로는 뭔가 빠진 느낌이다. 단지 오래 살기보다 건강하게 원하는 삶을 오래 살아야 하지 않겠는가? 그리고, 큰 걱정 없이 여생을 살 수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폐지를 줍으며 하루하루의 생계를 걱정하면서 살 수는 없지 않은가?

 

그러기에 배우자가 ‘나보다’ 오래 살기를 바란다면 이보다 한 단계 더 나가야 한다. 현대 의학의 발전과 공중위생의 개선, 그리고 영양 상태의 호전 덕에 인간의 수명은 급증하고 있다. 덕분에 예전에는 아주 드물던 구십을 넘긴 노인이 흔하고 백세 시대를 노래한다. 하지만, 이런 수명 연장이 꼭 건강한 수명의 증가를 뜻하지는 않는다. 골골하게 투병하면서 살아가는 기간이 많이 늘어나고 있다. 그렇지만, 자녀가 최고이자 유일한 노후 보장이었던 시대가 끝난 현대의 우리는 건강한 배우자가 병든 배우자를 돌보며 살아야 한다. 재력이 풍부해 간병인을 고용할 수도 있지만, 가족이 간병인을 감독(?) 하지 않을 때 가족처럼 환자를 정성껏 돌보는 간병인이 얼마나 많을까? 이러니, 가능하다면 내가 건강하게 오래 살아 배우자를 돌볼 수 있는 게 배우자에게 간병의 짐을 지우는 것보다 나을 수도 있지 않을까?

 

그렇지만, 실제로 누가 먼저 죽을지 아니면 언제 의사 결정 능력이나 독립생활 능력을 잃을지 아무도 알 수 없다. 러기에 복잡한 현대 사회를 사는 우리는 이런 경우를 대비해 유언장도 쓰고, 연명 치료와 장례에 대한 결정, 그리고 자산 정리 계획도 미리 해 두어야 한다. 그리고, 나보다 배우자가 오래 살 경우를 대비해 재정적 준비도 해 두어야 한다. 다시 말해 내가 가고 난 뒤에 배우자가 겪어야 노고와 고통을 최소화할 수 있게 준비해야 한다는 말이다. 그래야, 어느 날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졌을 때 심각한 충격과 비탄에 빠질 배우자의 짐을 덜어 줄 수 있고, 재정적 안정도 보장해 줄 수 있는 길이다. 그것이 진정 배우자를 위한다면 묘비명을 쓰기 전에 생존한 배우자가 경제적 이유로 어쩔 수 없이 바라지 않는 재혼을 하지 않고 원하는 여생을 살 수 있게 미리 야 할 일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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