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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 [문예정원] 시월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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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정목일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19-10-23 12:17 조회1,73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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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7eddebf5be4839fa8d9bf70001c810c_1571858199_9392.jpg 정목일 / 캐나다 한국문협 고문
 

 

우리나라 오월에게 ‘계절의 여왕’이란 왕관을 씌운다면,

시월에겐 ‘계절의 황제’라는 대관식을 거행해야 마땅하다.

예전부터 시월을 ‘상달’이라 불러 다른 달과는 달리 사뭇 격을 달리해 왔다.  

시월이 오면 다른 달과는 느낌부터 달라진다.

일 년 중에 하늘이 가장 맑게 열려, 영원의 얼굴이 비춰 보일 듯하다.

만물의 시선이 문득 하늘로 향하게 만들고, 우주와 교감의 시간을 갖게 만든다.

시월이면 까닭모를 고독과 그리움이 밀려드는 것은 하늘의 무한한 깊이만이 아니다.

바람의 촉감과 풀벌레들의 언어와 초목들이 보여주는 색채미학 때문만이 아니다.  

 

시월은 풍요 속에 비움이 있고, 채움 속에 해체가 있으며, 만남 속에 별리의 순간이 있다.

시월은 마음의 거울을 꺼내 들고 한 번씩 자신의 영혼을 비춰보고 싶은 달이다.  

인생이란 일상 속에 허우적거리다가 삶의 본질과 의미를 잊어버리고 보낸 세월이 아닐까

한다.

시월이 오면 티끌 한 점 묻지 않은 하늘을 볼 수 있어 삶의 궤적과 마음을 들여다 볼 수 있다.

가을 하늘은 무한대의 투명 거울이다.

시월은 하늘 거울을 보면서 혼탁하고 어지러운 마음의 때와 얼룩을 씻어내고 정화시키는

달이다.  

마음이 청결하고 순수해지면 국화 향기가 마음속으로 풍겨오고, 풀벌레의 말이

귓가에 들린다.

풀잎의 이슬방울 한 알 과도 눈을 맞춘다.

 

시월은 하늘의 맑음과 깊이, 땅의 풍요와 바람의 상쾌한 촉감-.

하늘과 땅, 인간과 자연, 영원과 순간이 함께 교차하며 우리들 영혼을 더 높은 곳으로

고양시켜준다.

시월이 주는 영감(靈感)의 눈빛과 표정을 본다.

하늘은 텅 비어 무한과 영원으로 열리고, 땅은 결실의 빛깔들로 풍요를 이룬다.

시월이면 누구든지 일상에서 벗어나서 자연의 품속으로 가보고 싶어 진다.

자연 속이어야 생명의 순리와 계절의 순환을 느낄 수 있다.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으뜸인 청자(靑瓷)와 백자(白瓷)를 빚어낸 도자기의 나라이다.

고려 청자는 가을 하늘의 청명을 담아 놓은 그릇이다.

우리 선조들은 깊고 맑으며, 그리움을 실어오는 하늘을 청자에 담아 놓으려 했다.

영원의 마음을 담고 싶어 했다.

고려 5백 년 동안 오로지 청색(靑色) 탐구에만 매달려온 도자기문화는

높고 맑음을 지향했던 우리 민족이 하늘에 바치는 마음의 선물이 아니었을까.

 

청자엔 우리나라 시월 하늘과 맑은 영원으로 향한 마음이 담겨져 있다.

청자 빛깔은 우리로 하여금 볼수록 깊이와 그리움 속으로 빠져들게 한다.

영혼을 한 차원 높은 곳으로 이끌어 준다.

우리 겨레는 청자에 국화문양이나 학을 그려 넣고, 우주와 대화를 나누고자 했다.  

 

초목들은 가장 아름다운 빛깔을 펼치고, 오곡백화는 결실을 이루어 고개를 숙이고 있다.

시월은 단풍과 결실의 계절이다. 일 년의 절정, 황금기임을 알려준다.

일 년의 농사를 추수하는 성스럽고 환희에 찬 달이다.

일 년의 삶을 돌아보면서 자신의 삶에서 추수할 수 있는 의미와 가치가 무엇인지를

성찰하고 점검할 때가 왔음을 알려준다.

 

시월의 하늘과 땅과 기후는 한 톨의 열매라도 잘 익히려고 은총을 베풀고 있다.

과실들의 빛깔을 무르익게 하고, 과액을 맛들이고 있다.  

시월이 가고 말면 각양각색으로 빛나던 단풍들도 어느새 해체의 순간을 받아들여,

낙엽으로 돌아갈 채비를 한다. 절정과 극치는 시월의 한 달이면 끝나고 만다.

풍요와 결실은 언제나 우리 곁에 머물러있는 게 아니다. 곧 비움과 텅 빈 벌판을 보여준다.  

 

시월은 신선하고 감미롭다. 내 인생의 결실, 모습, 향기, 빛깔을 생각해 볼 때가 왔다.

나는 땀과 성실로써 온전히 제 모습을 갖고 있는가?

시월의 풍요와 황홀 속에 껍데기가 아닌, 내면이 충일한 한 알의 열매가 되고 싶다.

 

시월이면 모든 생명체들은 삶의 결실을 보여주어야 한다.

뙤약볕과 가뭄과 폭풍을 겪었지만, 생존의 의미와 가치를 드러내야 할 때가 왔다.

시월은 엄숙한 표정을 지녔다. 일 년이란 관문을 헛되게 지나가게 할 수 없음을 가르쳐 준다.

헝클어진 마음을 가다듬고, 마음의 때와 먼지를 씻어내며, 자신이 서 있는 인생의 좌표를

점검할 때다.  

시월이면 마음의 길을 찾아 나서야 한다.

하늘 거울을 보며, 마음에 쑥부쟁이 꽃 한 송이를 선물하고 싶은 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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