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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 [문학가 산책] 다리가 너무 많아, 그게 내 운명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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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유병수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19-10-25 09:40 조회2,02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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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b16da2c60306369ab252e0755b546bd_1572021597_9193.jpg유병수/시인, 소설가

 

 

 

호수 같은 저수지가 있었다. 서울로 진학을 하러 옮겨 다니면서도 드넓은 저수지는 늘 내 생명의 부적이었다. 새벽에는 물안개가 자욱한 가운데 어느 바위를 스치는 물결소리처럼 물새들의 날개 소리가 들리는 그런 저수지였다. 발가락 틈을 꼼지락거리는 신선한 물결과 아주 작은 기름챙이들 그리고 모래를 닮은 아주 작은 게들의 촉감을 가끔 시의 행간 속에서 발견하곤 한다. 

 

나는 일찍부터 게걸음을 시작했고 그것은 또 고달프고 외로운 길이었다. 무언가 황급하면서도 꾸준히 걷기를 계속하는 나의 발을 걸고 스스로에게 물었다. 어디로 가오? 게같은 시인이여 어디로 가오?

 

내가 이의 없이 태어난 것과 마찬가지로 홀연히, 아주 홀연히 시인은 대답했다. 

 

살아남으세요. 살아남으세요. 죽은 것들이나 죽어가는 것들로 즐비한 당신의 일상에서. 항시 쓰러지는 몸짓의 당신을 겨우겨우 일으켜 세우며, 한 걸음 한 걸음 시로써 당신의 활로를 이루세요. 왜 그러세요. 게 같은 시인이여 왜 그러세요.

 

다리가 너무 많아. 그게 내 운명이지만 내 운명은 나의 한계야. 한계는 극복되어야 해. 

 

걷지 마세요. 뜨세요. 허공으로 뜨세요. 당신의 운명은 옆으로 걷는 것이지요. 걸어서는 한계는 깨지 못하죠. 뜨세요. 한치만 허공으로.

 

문학은 사람이 살면서 누군가와 혹은 무언가와 만나고 사랑하고 혹은 헤어지는 모든 것을 진실에 이르게 하는 행위다. 철저하게 자유스러운 영혼을 지니고 사랑의 정신으로 증오까지도 감싸며 다시 새로운 형식으로 나타내는 행위가 곧 창조요, 참된 시다.

 

단정한 머리에 가냘픈 인상을 주는 그의 눈은 잠시 허공을 응시한다.

 

어느 분인가 그런 말씀을 하셨죠. 다른 일을 하지 못해서 예술을 하는 것이 아니라 예술을 하기 위해서 다른 일을 하지 않는다고요. 신내린 무당이 굿을 하듯 자기가 하는 일에 경건한 신앙심을 가지고 자신의 촉수를 삶의 저 끝까지 뻗어볼 때 비로소 우리는 한 편의 시를 얻을 것이다. 그리고 또 한 가지 나의 생각은 문학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철저하게 개인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무당이 저마다 다른 신을 모시고 있듯이 말이다. 문학은 철저하게 독창이다. 다른 사람의 삶의 형태를 본받고 거기에 휩쓸리다가는 결국 아무것도 지니지 못한 자신의 모습을 보게 되고 자기 비하에까지 이르게 된다. 꾸준히 자기를 칼날 위에 올려놓고 춤을 추게 해야 한다.

 

우리의 정신이 우주의 삶과 죽음의 모든 시초와 모든 끝으로 끊임없이 갈구하는그의 촉수, 그의 하염없는 시선은 예술의 피안, 감동과 환상의 경지를 쳐다보며 자신의 내부를 깎고 있다. 

 

원래 게 같은 시인은 다족류의 그것처럼 다리가 많다. 다리가 많다는 것은 딛고 설 땅이나 세계와의 어쩌지 못하는 유대를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시인의 꿈이나 시인의 사고력은 저 무한의 자유를 위해서 치달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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