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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 [문예정원] 살아 있다는 것, 그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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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은소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19-11-01 08:58 조회1,52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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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62d2e112120bc978d58f57b488cbd02_1572623889_662.jpg강은소 / 캐나다 한국문협 자문위원 

 

노을 지는 풍경을 바라봅니다. 

산등성이의 노을이 아름답다고, 쉽게 말할 수 있는 이유는 지는 해가 내일이면 다시 떠오르기 때문이지요. 오늘의 노을은 다시는 떠오를 수 없을 것처럼 마지막 숨을 삼키고 서늘하게 잦아듭니다. 빠르게 저녁이 찾아오는 걸 보니 겨울이 오기 전에 어디선가 또 하나, 삶의 노을이 지려나 봅니다. 

사람의 어깨에 내리는 삶의 노을이 지는 모습을 본 적이 있습니까. 삶의 노을이란 나이가 들어 늙어가는 노년의 모습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죽음의 그림자가 깃드는 육신의 노을을 말하는 것이지요. 죽음이 찾아왔을 때, 마주하며 받아들이는 자세를 말하는 것입니다. 

이즈음 나는, 그리 길지 않은 시간 속에서 3번의 죽음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오늘 또 한 번의 부음을 들었습니다. 매번 슬프고 안타까운 일이지만 떠나기엔 너무 이른 나이도 있어 더욱 애석한 떠나보냄도 있었지요. 떠나는 사람도 그렇지만 임종을 지키며 살아남은 사람의 홀로서기를 지켜보는 일이 더 큰 일이었습니다.

남은 부인의 목을 놓은 울부짖음에 조문을 하던 모두가 함께 흐느끼고, 통곡 소리가 꺽꺽 목젖에 걸릴 만큼 극에 달한 부인이 실신하기도 했습니다. 그래도 부인은 살아 있는 사람입니다. 시간이 지나면 남은 사람은 다 살아가게 되어 있지요. 아픔은 가슴 한쪽에 묻어두고 하루하루 살아 있다는 증거를 남기게 됩니다.

살아 있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요. 

우리가 모두 잘 아는 스티븐 호킹 박사가 생각납니다. 언젠가 TV 화면으로 본 그의 모습은 불안해 보였습니다. 검은 휠체어 위에 얹힌 쪼그라든 육신, 휠체어가 좌우로 흔들릴 때마다 박사의 몸은 금방이라도 떨어질 것만 같았습니다. 

스티븐 호킹 박사는 루게릭병 환자였습니다. 온몸이 마비되고 위축되는, 근 위축성 측생경화증이라 불리는 병이지요. 호킹 박사가 20세가 되던 1962년, 물리학자가 되기 위해 한창 준비 중이던 그는 신발 끈을 묶기가 힘들어진 사실을 알게 됩니다. 짧으면 2년, 길면 5년의 시한부 인생임을 선고받았지요. 그런 그가 기적처럼 살아남아, 자신에게 주어진 삶의 노을을 광활한 우주를 위해 오래도록 불태웠습니다. 

2018년 향년 76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 호킹 박사는 「시간의 역사」라는 저서를 통해 현대 물리학의 개념과 이론을 널리 알렸습니다. 우리가 흔히 인용하는, 우주의 탄생과정을 설명하는 ‘빅뱅’이나 에너지를 모두 태워 버린 별의 죽음을 의미하는 ‘블랙홀’ 같은 우주 물리학 개념들이 그에 의해 알려진 것입니다. 하지만 이런 업적보다도 그의 긍정적인 사고방식이 우리를 진정 겸손하게 만들지요. 루게릭병에도 불구하고 “살아 있는 것”이 자신의 가장 큰 업적이라는 말을 망설이지 않았습니다.

스티븐 호킹 박사의 “살아 있는 것”에서 살아 있다는 것의 의미를 찾는다면 지나친 의미부여일까요. 그는 자기의 악한 상황이 자기 일에 더욱 전념할 수 있는 배경이 되었다며, 자신은 행운아라는 말을 잊지 않았습니다. 우리에게도 자신의 악조건을 오히려 행운으로 돌리는 삶의 사고방식이 필요한 때입니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받는 스트레스 중에서 가장 큰 일이 배우자의 죽음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떠난 사람 때문에 남겨진 사람의 삶이 흔들려서는 안 됩니다. 혼자 남겨졌다는 슬픔과 외로움의 무게를 빨리 털어내고 살아 있다는 것의 의미를 잃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살아 있기 때문에 떠난 사람을 그리워할 수 있으며 떠난 사람이 남기고 간 일들을 대신에 할 수 있는 기쁨도 있습니다. 

살아 있다는 것은 열심히 살아가야 한다는 책임을 말하는 것이지요. 살아 있다는 것의 의미는 남은 사람의 몫으로 떠난 사람의 몫까지, 아무 일 없는 듯 그렇게 살아가는 것입니다. 오래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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