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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 [문학가 산책] 가을에 하는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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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정숙인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19-11-01 09:02 조회1,18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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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62d2e112120bc978d58f57b488cbd02_1572624114_5984.jpg 정숙인/수필가(캐나다한인문학가협회 회원) 

 

 

 

마지막이 주는 새로움은 설레이는 그 이상의 무언가를 가슴에 얹히게 한다. 그것은 가슴에 얹히어 쉽게 내려가지도 않고 나를 옥죈다. 그것은 쉴 새 없이 지나는 시간들을 잠깐 멈추게 하고 천천히 아주 천천히 생각하고 또 생각하게 만든다. 마지막으로 만나는 저물녁의 황혼이 그렇고 삽시간에 만들어져 황홀한 일렁임을 선사하는 하늘의 구름이 그렇다. 갑작스런 소나기 뒤로 어둠이 가시지 않은 회색빛 하늘에 신비하게 만들어지는 무지개가 그렇고 철마다 이동하는 철새들의 아름다운 비행이 그렇다. 또한 가을이면 꼭 만나게 되는 숙명인 듯 첫 만남에 속절없이 떠나 보내야하는 낙엽들이 그렇다. 마지막 새로움에 빠져들게 되면 어느 새 무아지경의 세상을 헤매이게 된다. 그것에 깊게 빠져들수록 일상적인 생활은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된다. 먹는 것이나 자는 것도 잊어버린 채 심지어 씻지도 않고 움직이지도 않고 거기에만 매달려 시간이 어떻게 가는 줄도 모르고 온통 몰입하게 된다. 깜깜한 늦은 밤에 집에 돌아와 하늘에 무수히 깔린 별무리 중에서 아주 커다란 북두칠성을 난생 처음 보았던 날도 그랬다. 꼼짝도 않고 넋을 잃은 채 하염없이 그것을 바라보았다. 엄청나게 커다란 국자모양을 한 그것은 세상 사람들에게 한 번에 국을 퍼줄 만큼의 크기를 가지고 있었다. 별자리에 대한 해박한 지식이 없어도 그것은 누가봐도 딱 북두칠성이었다. 그리고 나는 어리석게도 감히 휴대폰을 꺼내 들고 수 없이 사진을 찍었었다. 기온이 떨어져 쌀쌀한 영하의 날이었는데 발길이 쉬이 떨어지지 않아 덜덜 떨면서도 계속해서 바라보았다. 산 아래에 사는 덕분에 누릴 수 있는 행운이었다. 언젠가 새벽에 들었던 부엉이 울음소리도 잊을수가 없다. 정월 혹한의 추운 겨울밤에 자다가 들린 부엉이 소리에 현혹되어 나는 입던 옷 그대로 몽유병 환자처럼 맨발을 하고 데크로 나갔다. 그 울음소리는 천상에서 들리는 것 마냥 상당히 매혹적이었다. 슬픈 꿈을 꾸었던 듯도 하고 꿈속에서부터 나를 이끌었던 것 마냥 그 날 밤에 일어난 일은 참으로 미스테리였다. 어떻게든 그 울음소리를 녹음해서 이따금 들을 요량으로 휴대폰만 손에 움켜쥔 채 얼어붙은 바깥으로 나간 거였는데 데크에 발을 딛자마자 부엉이는 울음소리를 더 이상 내지 않았다. 그 자리에 낮은 포복자세로 엎드려 숨을 죽이고 십 분 또 십 분을 기다렸는데도 더 이상 울지 않았다. 할 수 없이 언 몸을 일으켜 집 안으로 들어오자마자 가까이에서 다시 부엉이가 울었다. 다시 몸을 돌려 문을 열고 나갔다. 달빛도 없는 칠흑의 어둠 가운데 그보다 더한 정적의 그림자들만이 사방에 포진해 있는데 둔중하면서도 가볍고 맑은 성대에서 나는 소리는 새벽의 어렴풋한 미명을 알리는 천상의 나팔소리처럼 내 가슴을 울리며 설렘을 안겨주었다. 한 발자욱을 내딛자 그 울음은 더 이상 울려나오지 않았다. 미동없이 기다리다 이내 포기했다. 녀석은 내 움직임을 기민한 촉수로 미리 알아차리고 울음을 멈추는 거였다. 평소에 자연이나 동물에 대한 인간의 해코지를 익히 알아서인지 절대로 인간이 부리는 속임수에 속지 않으려나 보다는 생각이 들었고 나의 이러한 행동 또한 인간의 이기심인지라 미안한 마음에 그만두고도 싶었다.

 

날마다 떠오르는 해가 다르듯이 우리에게 찾아오는 계절 또한 다르다. 하물며 해마다 찾아오는 가을은 떨어지는 낙엽들로 하여금 우리를 기쁘게도 슬프게도 만든다. 해마다 가을이 되면 나는 어여쁜 처자들을 만나 사랑에 빠진다. 그 사랑은 어느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슬프고도 아픈 순간의 스러져가는 사랑이다. 만나는 처자들은 정녕 신이 빚어낸 어찌 표현할 수 없는 아름다움으로 속세에 찌든 인간은 범접할 수 없는 우아함과 기품을 지니고 있다. 제각각 빛깔 고운 모습은 단아하면서도 무심한 요염이 한껏 베어 있다. 연인이었던 나무와 작별하고 쉬이 떠나지 못하고 곁을 맴돌며 소리없는 통곡을 하고 있다. 여기도 저기도 아직도 황홀하도록 곱디고운 자태가 여실히 남아있는 처자들이 나무와의 작별을 오열하며 불어오는 바람에 가녀린 몸을 추스리지 못하고 바르르 떨어대며 길 가던 나를 멈추게 한다. 매 년 마다 새로운 낙엽을 주워 책갈피에 꽂는다. 그 아름다운 것들을 숨겨야해서 미안하고 그러지못하면 떨어진 그대로 땅 위를 구르며 시들어 말라버리는 안타까운 가을이다. 가을에 하는 사랑은 너무나 아름답지만 곧 떠나야 하는 사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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