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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정숙인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19-11-15 08:51 조회1,44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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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4dea22eff20d8048c6ab51d1cbf3ded_1573836699_1743.jpg정숙인 / 캐나다 한국문협 회원

 

    

 

어르신 그 간 평안하셨습니까?

저물어가는 십이월 마지막 날의 일을 끝내고 클라이언트 가족과 크리스마스 인사를 나누고 헤어졌습니다. 다시 재계약을 하게 될런지 모르지만 일 년 동안 성실히 책임과 의무를 다했다고 자부합니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 인연을 맺고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것만큼 보람되고 힘든 일은 없을 것입니다. 내 쪽에서 아무리 마음을 주어도 상대가 받아들이지 않으면 소용이 없고 상대에게 하는 만큼 대접받는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계약으로 맺어진 인연이었지만 그래도 헤어지는 순간에는 아무래도 한 번은 내 쪽에서 뒤돌아보게 되더군요. 인간의 감정이란 참으로 단순하면서도 미묘합니다.

어제는 제가 운영하는 한국어 학교의 종강파티가 있는 날이었어요. 학생들이 재료를 가지고 와서 손수 김밥을 만들었어요. 저는 떡볶이를 만들어 주었고요. 참으로 따뜻한 시간이었습니다. 아이들 모두가 이제는 각 각 한국 이름을 가지고 있습니다. 모두가 캐나다에서 태어난 아이들로 케네디언 부모를 둔 학생들입니다. 처음 시작할 때와는 달리 실력들이 일취월장하여 마음이 매우 뿌듯합니다. 현재 밴쿠버 총영사관으로부터 그 어떠한 지원조차 받을 수 없는 열악한 환경이지만 언젠가는 지원에 필요한 숫자 이상으로 학생들이 늘어날 거라 믿고 있습니다. 아이들을 가르칠 때는 제가 글을 쓸 때와는 또 다른 기쁨과 희열을 느낍니다. 이따금 돈을 받고 아이들을 가르치는 것에 대하여 매우 미안함을 느낍니다. 한국어 배우기를 간절히 원하는 이들에게 만큼은 무상으로 봉사한다는 계획을 가지고 있는데 그것이 언제 이루어질런지 모르지만 그 날을 위하여 부단히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온전한 저의 소망이자 목표입니다. 현재 저에게 배우고 있는 학생들이 나중에 기회가 되면 저를 도와 자원봉사를 하겠다고 합니다. 그런 아이들의 마음에 너무나 고마울 따름입니다. 

저는 삼 주간의 기나긴 칩거에 들어갈 것입니다. 이 곳은 산 아래에 있어 겨울에는 눈이 제법 많이 쌓입니다. 차가 겨우 다닐 정도의 과수원 길은 옆 집에서 치워주지 않으면 눈이 금세 무릎 위까지 차오릅니다. 그럴 때면 동화에 나오는 마법에 걸린 눈의 나라가 되어 버립니다. 눈으로 가득한 하얀 세상이 너무나 아름답기만 합니다. 저는 다시 어린 아이로 되돌아가 마냥 눈밭을 구르며 행복해합니다. 

저를 위하여 크리스마스 선물로 마사지기계를 샀습니다. 늘 책상 앞에 앉아있는 저의 굳어진 목과 어깨를 풀어줄 것입니다. 어느 지인은 오천 불을 주고 기계를 장만했다는데 저는 달랑 백 이십 달러를 줬습니다. 지그시 눈을 감고 의자에 편안히 앉아 머릿속으로 그 오천불짜리 마사지를 받았던 기억을 떠올리면 쫀득쫀득 몸에 감기는 기계의 감촉은 똑같이 전달됩니다.   

어르신은 현재의 한국 생활이 어떠 신지요 오래전에 잊혔던 추억속을 거닐며 때로는 달콤함에 때로는 지나간 시간에 대한 씁쓸함에 만감이 교차하는 시간을 여행하고 계시리라 추측합니다. 제가 한국을 떠날 때 스물 여섯이었는데 고국 산천의 아름다운 곳들을 면면히 둘러보지 못한 채 한국을 떠나와 참으로 안타까운 마음이 듭니다. 그 젊었던 시절에 느꼈을 아름다움은 얼마나 절절한 찬란 함이었으며 형언치 못할 갖가지 감정들로 청춘의 가슴에 묻혀졌을까요. 경상도와 충청도 땅을 한 번도 밟아보지 못한 채 한국을 떠나와 후회가 듭니다. 아름다운 부산에도 지리산에도 가보지 못하였어요. 지리산에 올라가 텐트를 치고 며칠을 지내보고 싶었고 조용한 산사에서 마음의 빗장을 풀어보고도 싶었지만 꿈을 이루지 못했어요. 여행은 사람을 변화시키고 무지로부터 눈을 뜨게 하여 성숙한 인간이 되어가는데 많은 도움을 주는데 지나버린 시간은 되돌릴 수 없기에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기회가 주어진다면 많은 여행을 하리라 생각합니다. 

어르신, 아무쪼록 행복하시고 어디에 계시든 건강 하십시오. 내년에는 꼭 만나 뵐 수 있기를 바랍니다. 

메리 크리스마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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