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예정원] 청소하지 않는 집 > LIFE

본문 바로가기
사이트 내 전체검색
Vancouver
Temp Max: 8.6°C
Temp Min: 6.24°C


LIFE

문학 | [문예정원] 청소하지 않는 집

페이지 정보

작성자 윤의정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19-11-29 08:52 조회1,588회 댓글0건

본문

 

 

       ca4efa9874166c6bd1ccb23976934c0d_1575046356_7052.jpg윤의정 / 캐나다 한국문협 회원

 

"내가 치우랬지? 너무 지저분하잖아!"

 

어느 날, 아이의 소리를 들었다. 무척 기분이 나빴다. 내가 늘 하던 말을 아이가 어투까지 똑같이 흉내 내서 하는 것이더라. 무언가 나의 싫은 모습 중 일부를 마주한 기분이랄까? 내가 그렇게 아이들에게 자주 치우라고 하곤 했지.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집안일을 썩 잘하는 편은 아니지만, 집안이 깨끗한 걸 좋아한다. 어려 서부터 깔끔한 성격의 어머니가 항상 집안을 쓸고 닦으셨고, 먼지 낀 모습을 지독히도 싫어하셨기 때문인지, 조금만 집 안이 지저분해져도 마음이 편치 않았다. 그럴 때면 어머니가 그러하셨 듯 나 또한 쓸고 닦기를 반복했다.

그런데 일상생활의 공간에서 깨끗함이라는 것이 참으로 쉽지 않더라. 생활 속에 쌓이는 쓰레기와 먼지들도 많았고, 아이들은 어리니 먹으며 흘리고, 놀며 어지럽히고, 제대로 치울 줄 모르니 혼자 치우는 나는 점점 지쳐만 갔다. 게다가 끝이 보이는 일이라면 모를까, 도무지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 일에 진을 빼는 나 자신에 짜증이 쌓여갔다. 그럴 때면 나도 모르게 아이들에게 신경질을 냈나 보다.

 

“엄마, 레고 가지고 놀아도 돼요?”

“안돼! 더럽힐 거잖아.”

“클레이는요?”

“너희가 들러붙은 거 닦을 거야? 하지 마!”

 

자꾸만 하지 마라, 가만히만 있어라. 그런 소리로 아이들의 일상을 채워갔다. 그런데도 여전히 집은 내 성에 차지 않을 만큼 더러웠다. 치우고 쓸고 닦아도 여전히 지저분한 건 마찬가지인데, 저녁이 되면 지쳐가는 나 자신의 모습에 헤어나올 수 없는 그 어딘 가에서 부유하고 만 있는 기분이 들었다. 대체 무엇이 잘못되었을까? 나는 답을 차지 못 하고 있었다.

그러다 하루는 나처럼 아이 둘을 키우는 친구 집에 초대를 받아 아이들과 함께 방문하게 되었다. 처음 집을 들어서는 순간 나는 조금 놀랐다. 여기저기 널브러져 있는 물건들과 지저분한 바닥이 눈에 들어왔다. 아이들은 열심히 뛰어놀면서 그 와중에도 계속 무언가 만지고 벌이고, 집을 더럽히고 있었다. 그리고 그 아이들의 어머니는 전혀 아무렇지 않은 듯, 아이들에게 다 놀고 스스로 치우라고만 이르고 나에게 차를 권했다.

어색한 기분이 들었지만, 이내 이들을 살피게 되었다. 우리 아이들도 이것저것을 만지고 함께 하니, 즐거운 기색이었다. 그리고 아무도 화가 나거나 지쳐 보이지 않더라. 나의 어색한 분위기를 눈치챈 것인지, 나를 초대한 친구가 편히 말을 하더라. 조금 지저분해도 이해하란다. 자신이 집을 너무 깔끔하게 치우려 들면 이들이 잘 못 놀 수 있고, 자신은 지칠지 모른 단다. 그리고 엄마가 지치면 그 피해는 다시 고스란히 아이들에게 돌아가게 되므로, 자신은 적당히 자기 자신을 아끼면서, 그 에너지를 자식들에게 나눈다는 것이다.

일단, 나도 모르게 불편한 기색을 보인 게 미안하더라. 그리고 일견 그 친구의 말이 맞게 느껴지더라. 자꾸 끝없는 일에 힘을 쏟아 스스로 피곤하고 힘드니 아이들에게 화를 내곤 했는데. 마침 내 이야기를 듣는 듯 얼굴이 화끈거렸다. 그때부터 였던 것 같다. 더는 집을 치우는 데 온 힘을 다 쏟지 않게 된 것이.

물론 아예 집을 방치하는 것은 아니지만, 세 번 청소하던 것을 한 번으로 줄였다 고나 할까. 아직 가끔은 참을 수 없긴 한데, 힘들게 나를 괴롭히다가 아이들에게 화를 내느니 더러움에 눈을 감기로 마음먹었다. 처음엔 조금 힘들었는데, 지금은 그럭저럭 잘 지나칠 수 있게 되기도 했다. 무엇보다 집을 어지럽힌다는 이유로 아이들에게 아무것도 하지 못하게 하지는 않을 수 있다. 그리고 깨끗하지 않은 집에서 더 내 정신과 신체가 건강할 수 있다는 것을 새로이 알게 되었다.

지금도 거실과 주방, 아이들 방의 너저분함은 보기 좋지 않은 수준이긴 하다. 하지만 깨끗한 모델 하우스에서 삭막하게 사느니, 지저분한 사람 사는 집에서 아이들이 실컷 놀게 하고 싶다. 그렇게 오늘도 잘 넘기는 중이다. 참, 편안 해졌다. 마음이.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플러스로 보내기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LIFE 목록

Total 5,739건 3 페이지
게시물 검색
회사소개 신문광고 & 온라인 광고: 604.544.5155 미디어킷 안내 개인정보처리방침 서비스이용약관 상단으로
주소 (Address) #338-4501 North Rd.Burnaby B.C V3N 4R7
Tel: 604 544 5155, E-mail: info@joongang.ca
Copyright © 밴쿠버 중앙일보 All rights reserved.
Developed by Vanple Netwroks Inc.
모바일 버전으로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