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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 [문학가 산책] 오빠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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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정숙인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19-11-29 08:58 조회1,50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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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4efa9874166c6bd1ccb23976934c0d_1575046671_9716.jpg정숙인/수필가(캐나다한인문학가협회 회원)

 

 

 

 

‘뜸북 뜸북 뜸북새 논에서 울고 뻐꾹 뻐꾹 뻐꾹새 숲에서 울제 우리 오빠 말타고 서울 가시면 비단구두 사가지고 오신다더니’ 노랗게 물든 나뭇잎을 바라보다 하늘거리는 갈대 하나를 뽑아들고 입에 물었다. 하늘로 시선을 옮기니 철새 가족들이 따뜻한 남쪽 나라를 찾아 이동하는 대열이 가득 들어왔다. 가족의 정이 그립다. <오빠생각>은 아동문학가 최순애 선생님이 소녀시절에 만든 곡으로 일제강점기 때 독립운동을 하신 분들을 기리는 노래라고 한다. 서울가신 오빠는 독립운동가이고 소식없는 광복을 바라는 것이며 나뭇잎 우수수는 일제의 약탈을 의미한다고 한다. 최순애 선생님은 <고향의 봄>을 쓴 아동문학가 이원수 선생님의 부인이기도 하다. 무심코 오빠생각을 부르니 오빠들이 보고 싶었다. 감정을 느낄 수 있는 동물이라는게 반갑기도 하고 밉기도 하다. 하지만 과거를 기억할 수 있고 따스함과 슬픔이 교차하는 추억을 간직할 수 있는 인간이라서 다행이다. 한 살 터울 위인 오빠와는 엄청나게 싸우며 자랐다. 연년생인 오남매가 가진 특성상 우리집은 매일 전쟁터 한가운데 있는 것 마냥 포화와 신음소리와 절규가 끊이지 않았다. 무엇을 하든 무엇을 먹든 무엇을 입든 싸움과 논쟁이 그치지 않았다. 우리가 싸울적마다 어머니는 뱃속에 차례로 들어갔다 나온 자식들끼리 싸우는 것이 세상에서 제일 슬픈일이라며 탄식하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날이면 날마다 으르렁댔다. 그러면서도 서로들 죽이 잘 맞아 싸운 것은 잊어버리고 금새 낄낄거렸다. 너무 추워 밖에 나가 놀지 못하면 아랫목에 깔아놓은 이불 하나를 갖고도 재미나게 놀았다. 학교가 끝나면 책가방을 팽개치고 캄캄할 때까지 골목에서 놀았다. 친구들이 돌아가고 까매진 얼굴로 집에 들어와 얼굴과 발을 씻고 엄마가 해놓고 간 저녁을 먹었다. 머릿수가 많아 불리한 점도 있었고 이로운 점도 있었다. 먹거리가 부족할 때가 그랬고 우리끼리도 편을 갈라 거뜬하게 놀고 독수리 오형제마냥 골목에서 엄청난 파워를 자랑할 때가 그랬다. 동지를 엊그제 넘겼으니 제법 추운날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중학교 1학년이 된 바로 위 오빠가 느닷없이 욕을 했다. 나도 질세라 들은 그대로 욕을 하며 마구 대들었다. 다른 형제들은 싸움을 하는 우리를 보고만 있었다. 갑자기 안방문이 열리며 호랑이같은 엄마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이노무 쉐키들이 뜨신 밥을 먹였놨더니만 싸우고들 있네!!” 그리고는 소파옆에 있던 스툴을 냅다 들어 던졌다. “나가라, 나가!! 꼴도 보기 싫다!!” 날아오는 스툴을 피하며 우린 번개처럼 줄행랑을 쳤다. 매정하게도 현관문은 철커덕 잠궈졌다. 엄동설한에 맨발로 쫓겨난 남매는 까치발을 하고 지하실로 향했다. 희미한 전구불 아래 부뚜막앞에 쪼그리고 얼음눈을 밟은 발바닥을 마구 문질렀다. 불에 데인 듯 너무나 아팠다. 신음소리가 절로 났다. 오빠는 하이에나처럼 이곳저곳을 마구 뒤졌다. 곧이어 또각거리며 양손에 뭔가를 들고 나타났다. 엄마가 처녀 때 신던 샌들이었다. 먼지가 수북했다. 오빠는 빨간색 하이힐을 신고 있었다. “히힛힛! 크크크!” 우리는 큰소리로 웃었다. 엄마의 헌 신발을 신고 연탄화덕 뚜껑을 열어놓은 채 불을 쬐었다. 연탄불에 비친 오빠의 까까머리가 우스워 나는 크게 웃었다. 힐을 신은 오빠는 이따금씩 일어나 제자리뛰기를 했다. 나는 스웨터라도 입었지만 오빠는 내복만 입은 채로 쫒겨났기 때문이였다. “오빠 춥겠다, 그치?” 물으면 “하나도 안추워!” 하며 자존심을 세웠다. 그러면서 제자리뛰기를 계속했다. 몸이 풀리자 우리는 놀기 시작했다. 오빠는 주머니에 여러 보물을 가지고 있었다. 딱지와 구슬과 동전들이 연이어 나왔다. 쫓겨나는 와중에도 이 많은 것들을 가지고 있었다니 오빠가 새삼 존경스러웠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 배가 고팠다. 오빠는 슈퍼맨처럼 이번엔 고구마를 찾아왔다. 그것들을 연탄위에 올려놓고 구웠다. 시간이 지날수록 오빠가 점 점 존경스러웠다. 왜 윗사람을 존경해야하는지 알 것 같았다. 우리는 까맣게 탄 껍질을 벗기고 덜 익은 고구마를 먹으며 킬킬거렸다. 아쉬운대로 배고픔을 면하자 졸음이 쏟아졌다. 오빠는 자기한테 기대어 자라고 하며 혹시 쥐가 나오면 지켜주겠다고 약속했다. 나는 그 말에 눈물이 조금 났다. 그 일이 있은 후로 오빠와 사이가 엄청 좋아졌다. 가끔 싸웠어도 확실히 달라졌다. 인과관계에서 새로운 경험은 사람을 변화시키고 많은 것들을 발견하게 한다. 그 변화와 발견속에서 자아는 성숙하게 되고 상대방에 대한 배려와 소중함의 감정을 알게 되는 것이 참으로 감사하다. 가을이 저물어가는 하늘을 보며 열심히 살고 있을 오빠의 건강과 안녕을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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