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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 [문예정원] 길냥이와 집냥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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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선희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19-12-06 08:56 조회1,71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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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d2b783df0add612916c929752dff9a3_1575651395_4393.jpg김선희 / 캐나다 한국문협 회원 

 

며칠 전 마당에 나가보니 고양이 한 마리가 죽어 있었다. 우리 마당에는 비슷한 고양이들이 많이 오가기 때문에 정확하지는 않지만 얼마 전 새끼들을 낳아 데리고 다니던 어미와 많이 닮았다. 어쩌다 이렇게 됐을까, 무슨 일이 있었길래 이 아이가 목숨을 잃었을까, 안타깝고 짠하기 그지없다. 어미가 맞다면 새끼들은 어찌 됐을까 더럭 걱정이 들었다. 네 마리의 새끼들이 마당에서 뛰어놀던 모습이 참 사랑스러웠는데 한동안 모습이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마당 구석에서 서로 엉켜 놀기도 하고 비가 오면 데크 위로 올라와 몸을 기댄 채 비를 피하던 모습이 귀여웠는데 말이다. 이후로도 새끼 네 마리의 모습이 전혀 보이지 않고 다른 고양이들만 마당을 어슬렁거리며 왔다 갔다 한다. 

고양이를 잘 묻어주고 나서도 누가 그랬을까, 무슨 일이 있었을까 계속 궁금증이 일었다. 혹시 음식을 잘못 먹어서 죽었을까. 그럴 수도 있겠다. 그런데 새끼들도 보이지 않는 건 왜일까. 새끼들이 자신의 영역을 침범한다고 생각한 또 다른 고양이가 공격을 해서 죽인 게 아닐까. 그것도 그럴 수 있다. 그렇게 까지 가혹하게 서로의 영역권을 주장할까 싶은 맘이 들지만, 마을 내 고양이의 개체 수가 점점 많아지고 있다. 경쟁이 치열할 수 있다. 새끼 고양이들이 살아있었으면 하는 희망 섞인 기대를 해보지만 야생의 세계는 잔인하다. 살기 위해 서로 공격을 하고 그로 인해 상처를 입어 죽기도 한다. 현장을 보지 못했으니 그저 이런저런 짐작만 해볼 뿐이다.

어찌 된 건지 알 수는 없지만 우리 마당에서 장난치며 놀거나, 비를 피하거나, 먹을 것을 구하던 어린 새끼들이 보이지 않는 것은 아무리 내가 키우지 않던 동물이라도 마음이 서늘해지고 안타까운 일이다. 길냥이들의 삶이 순탄하지 않다는 것은 그들의 평균 수명만 보아도 알 수 있다. 집고양이들이 10년 이상 산다면 길냥이들은 길어야 3년 정도라고 한다. 열악한 음식과 질병, 사고 등이 원인일 것이고 서로 간의 영역 다툼도 원인일 것이다. 야생의 삶이 얼마나 위험하고 험난한지 보여주는 것이다. 

우리 집에서 키우는 고양이는 자주 창밖을 바라본다. 내가 정원에 나가려는 눈치만 보이면 제가 먼저 뛰어가서 문을 지키고 있다. 나가고 싶은 것이다. 떼어놓고 나가면 안에서 내가 정원 일을 마치고 들어올 때까지 눈을 떼지 않고 지켜보고 있다. 내 발치를 따라다니며 울 때가 있는데 역시 나가고 싶다는 표시다. 요즘 갈수록 우는 모양이 끈질기고 절실해 졌다. 바깥에 나갔다가 혹시나 병균에 감염될까 싶어 데리고 나가는 것이 꺼려졌었는데 너무 간절해 보여 어쩔 수 없이 잠깐씩 마당에 풀어 놓고 있다. 그 잠깐 동안 풀을 뜯거나 돌아다니며 냄새를 맡거나 잔디 위에 배를 깔고 앉아 편안히 쉬기도 한다. 한번 바깥바람을 쐬고 오면 그날은 다시 보채지 않는다. 

간혹 우리 고양이와 마당을 지나다니던 길냥이가 거실 창문을 사이에 두고 마주 보고 있을 때가 있다. 한참을 뚫어져라 바라보고만 있다. 서로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너무 궁금해지는 광경이다. 왠지 서로의 처지를 부러워하며 상대방과 삶을 바꾸고 싶다고 생각하는 것도 같다. 요즘 우리 고양이가 자주 나가고 싶어하는 걸로 봐서 자신들이 갖지 못한 것에 대한 동경을 가지고 서로를 보고 있을지 모르겠다는 아주 인간적인 생각을 해보게 된다. 

그런데 나의 인간적인 생각과 달리 실제로 고양이는 다른 곳에서 살고 싶어 하기보다 자기 영역을 침범당하는 것을 경계하는 면이 많다고 한다. 고양이는 자신의 영역에 대한 애착이 강하니 서로의 영역을 침범당하지 않으려는 기싸움인 것이다. 그러고 보면 우리 고양이가 가끔은 밖에 나가고 싶어하는 것도 풀을 뜯어먹거나 자기 영역을 확인하고 싶어할 뿐인 것 같다. 밖에서 자유롭게 살고 싶어 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나의 착각이다. 오히려 안전하고, 먹을 것이 풍부하고, 익숙한 집안에서 더 편안함을 느끼는 것이다. 우리 고양이는 가끔씩 밖에 나가는 것을 즐기지만 이웃집에서 키우는 고양이는 문이 열려 있어도 아예 창문 밖으로는 발도 내밀지 않는다고 한다. 오히려 밖에 나가면 고생이라는 걸 제가 더 잘 알고 있는 것이다. 

창문 안과 밖의 고양이가 서로를 바라보고 있는 모양은 인간의 눈에는 신기하고 속내가 궁금한 광경이지만 그들에게는 단순하다. 안에 있는 자는 자기 영역을 지키려 긴장하고 있고 밖에 있는 자는 내 영역을 뺏으려는 상대가 언제 나올지 몰라 경계하는 것이다. 다만 바깥의 길냥이들은 몇 번의 경험으로 안에 있는 경쟁자가 쉽게 나올 수 없는 것을 알아서 좀 더 편안히 쳐다볼 뿐이다. 그래도 인간으로서는 여러 가지 착각과 상상을 하게 되는 광경이다. 또 길냥이와 집냥이의 삶을 비교해보고 각자 사는 처지가 다를 때의 삶의 양상에 대해 깊이 생각하는 계기도 된다.

길냥이들이 너무 드나들어도 짜증이 날 때가 있지만 이런 사고를 만나고 보면 우리 마당에서 조금이라도 안전한 환경을 누릴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든다. 집안의 고양이와 길냥이들이 처한 상황은 달라도 각자의 영역에서 최소한도의 행복을 누리며 살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행복’까지는 어렵다면 의미 없는 공격이나 폭력에 희생되지는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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