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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 [바다건너 글동네] 우리 서로 마음의 고향이 되어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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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심현숙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19-12-19 08:50 조회1,81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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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e0d2bb49f62a395fa4aa76c5d16289_1576774200_8679.jpg심현숙 

(사)한국문협 캐나다 밴쿠버지부회원

 

  2004년 3월 어느 오후, 밴쿠버에서 우송한 일간지를 받았다. 이미 헌 종이가 되어버린 그 신문을 펴는 순간 ‘일가족 자살’이란 머리기사가 눈에 들어온다. 주인공은 한국교민이었다. 놀라움으로 심장이 멈추는 듯하다. 가장이 목 맨 상태로 며칠 후에야 발견되었다니 얼마나 끔찍스러운가. 피아노 특기로 UBC 음대 입학 허가를 받고 희망에 부풀어 있을 딸까지 동반자살을 하였으니 무엇이 그들을 이 지경으로 몰고 갔는지 가슴이 아리다.

 

  온 가족이 죽음을 택할 정도로 현실이 심각했을까. 사업 실패에서 오는 허무와 불안 그리고 우울증, 이런 상황을 추측은 할 수 있지만 아무도 그 진상은 알 수 없다. 가까운 사람과 허심탄회하게 속내를 드러내 놓고 상의라도 해 보았다면 죽음을 피할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이민지에서 우리들은 시간이 나면 끼리끼리 만나 식사도 하고 대화도 나누지만 왠지 속이 후련하지가 않다. 정작 하고 싶은 이야기는 하지 못한 체 마음속에 담아놓기 때문이다. 누구나 가슴을 헤쳐 보면 다하지 못한 언어들이 앙금 마냥 남아있을 것이다. 모두가 한 자락의 베일로 마음을 가리고 사는 지도 모른다. 그래서 늘 답답하고 외롭다. 강산이 변한다는 세월을 훨씬 넘게 살았어도 아직 나그네 길을 걷고 있는 것만 같다. 이제 지친 것 같기도 하고 쉬고 싶기도 하다.

 

  우리는 그 동안 숨차게 헐떡이며 살았다. 누가 누구를 어루만져줄 여유가 없었다. 남의 아픔보다는 내 아픔이 커 보였고, 저 사람보다 내가 적게 갖은 것 같고, 다른 사람이 겪은 고생에 비해 내가 고생을 더 많이 한 것 같고 모든 것이 자기중심이었다. 달팽이처럼 자기 보호만 하며 살아왔는지도 모른다.

 

  내 이웃이 힘들어 할 때 우리는 무엇을 하였으며 이미 생명을 끊고 하늘나라로 떠났을 때 그 기척을 느끼기나 했을까.

 

  누군가와 밤을 밝히며 누에고치에서 명주실이 뽑아져 나오듯 거침없이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내가 슬퍼할 때 달려와 손 마주 잡아주고 함께 울어줄 수 있는 따뜻한 사람이 그립다. 팥으로 메주를 쓴다 해도 믿어주고 푼수 짓을 해도 그 뒤에 숨은 뜻을 알고 있는 친구가 그립다. 지금 이 땅에서 우리에게 절실히 요구되는 건 밥줄이 되고 자식들의 학비가 되는 사업체나 직업 이상으로 인간의 정과 사랑이다.

 

  우리는 고향을 떠났고 고향을 잃었다. 모든 것을 품어 주고 많은 것을 베풀어주는 고향이야말로 정신적인 지주가 아니던가. 일가족 세 명은 고향을 잃었기에 죽었다고 본다. 우리는 실향민이 된 서글픔에 종종 허기(虛氣)를 느낀다. 모국어인 한국말을 쓰고 있는 한 아무리 시민권을 따내고 이곳에서 교육을 받았다 해도 캐나다가 고향이 될 수는 없다. 여기서 태어났거나 어릴 적 옮겨와 영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할 수 있는 2세들과는 사뭇 다르다. 언어가 다르다는 것은 풍습과 문화, 사상이 다르다는 뜻이다. 한국어로 생활을 엮어 가는 한 이곳 캐나다인과 동화되기는 어렵다. 

 

  이 땅에서 영원한 타향살이를 하고 있는 우리들 서로 서로에게 포근한 고향이 되어 주어야 한다. 체력으로 따라잡을 수 없는 백인들 속에서 지칠 때 돌아와 쉴 수 있는 고향, 잘 한다고 격려해 줄 수 있는 고향, 생각만 해도 힘이 솟는 고향, 우리만이 알고 느낄 수 있는 정서가 흐르는 고향, 이런 고향을 만들자.

 

  벙어리 냉가슴 앓듯 혼자서 속으로만 고뇌하지도 말고 사면 초과로 죽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 닥친다 해도 나를 감싸고 보듬어주는 고향이 내 곁에 있다는 것을 자각한다면 그리도 쉽게 목숨을 포기할 수 있을까.

 

  행복은 나누면 커지고 불행은 나누면 적어진다고 서로 믿고 마음을 열자. 나보다 더 참담한 사람이 나를 위로해 주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이 세상에서 자기가 가장 무거운 짐을 지고 가는 것 같지만 색깔이나 모양만 다를 뿐 누구에게나 자기 몫의 짐이 있는 법이다. 다시는 ‘일가족 자살’이란 말이 신문 일면 톱기사가 되지 않도록 우리 서로 마음의 고향이 되어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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