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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 [문학가 산책] 크리스마스 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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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정숙인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19-12-27 09:02 조회1,41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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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e1123c52b078d155e5a3a734fc74a46_1577466146_7194.jpg정숙인 수필가 캐나다 한인문학가협회 

 

 

 

삼삼오오 거리를 지나거나 쇼핑몰을 돌아다니는 젊은이들을 보면서 유행은 돌고 돈다는 말에 공감하게 된다. 요즘 유행하는 것들 중에서 어떤 것은 아주 흡사한 디자인과 색감으로 내 소녀 시절에도 대단히 유행했던 것들이 눈에 띈다. 색바랜 사진속에 입었던 촌스러웠던 모양의 청바지가 지금의 십대들에게 환영받는 것을 보면 묘하게도 세월의 격세지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어찌되었든 거리를 활보하는 그들을 보며 단발머리 나부끼던 소녀시절의 순수하고 아련했던 추억이 송글송글 피어오르고 모국에 대한 향수마저 무한정 불러 일으키게 하니 유행을 선도하는 그들에게 그저 감사할 뿐이다.

 

 

 

 

쉬지 않고 내린 눈은 동네 전체를 눈의 왕국으로 만들어 버렸다. 오랜만에 떠오른 해는 눈에 반사되어 강렬하고도 눈부신 빛을 쏘아댔다. 그것은 창을 뚫고 들어와 옆구리를 콕콕 찔러대며 나를 밖으로 이끌었다. 밴쿠버에서는 보기드문 맑은 날의 설경인지라 방학인데도 불구하고 이른 시간부터 많은 이웃들이 나와 눈을 즐기고 있었다. 저만치 앞서 달려가는 딸의 털모자가 햇빛에 반짝였다. 그것은 꼭대기에 노란색의 털방울을 매달고 초록의 털실로 짜여진 것이었다. 가느다란 노랑과 보라색 두 줄이 중간에 짜여있어 무척 세련되보였다. 작년에 한국에서 들어오며 어머니의 마지막 뜨개 작품을 고이 가방에 싣고 왔었다. 그것은 딸과 같은 나이에 내가 받았던 크리스마스 선물이었다.

 

 

 

 

어머니는 젊었던 때에 털실로 뜨개질을 하여 양장점에 내다 파는 일을 하였다. 워낙 타고난 솜씨도 있었지만 오남매를 양육하는데 적지않은 생활비가 필요했던 까닭에 나름대로 최선의 일조를 한 것이었다. 낮에는 집안일과 다른 일을 하였고 밤에는 잠을 자지 아니하고 털실로 옷이나 모자, 장갑이나 양말을 만들었다. 어머니는 오로지 걸어온 세월의 발자국을 더듬어 한 올 한 올 모질고 힘들었던 기억을 커가는 자식들에게 기대하며 부푼 희망의 미래를 가슴에 품은 채 힘든 줄도 모르고 밤을 하얗게 짜나갔다. 나는 자다가 깨어 어스름한 형광등 아래 오남매가 길게 누운 머리맡에서 어머니가 뜨개질하는 모습을 지켜보곤 하였다. 들키지 않으려고 이불로 얼굴을 가리고 그 사이로 어머니의 얼굴을 훔쳐보았다. 어머니의 하얀 얼굴은 평소 고운 피부를 타고 났다는 동네 아주머니들의 칭찬과는 달리 이따금 뱉는 어머니 자신의 한숨과 닮아 있었다. 그리고 미술시간에 사람 얼굴을 칠할 때는 더 이상 살색이 아닌 푸르스름한 형광등 색깔로 칠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잠든 오남매 중 누군가 방귀를 뀌거나 잠꼬대를 하면 어머니는 걷어찬 이불을 덮어주고 부지런히 손을 놀려 뜨개질에 전념하였다. 어렸던 나는 무서운 꿈을 꾸어도 자지않고 지켜주는 어머니가 있어 마냥 좋았다. 일곱 살이 되던 해의 성탄절에 나는 어머니로부터 한아름의 선물을 받았다. 그것은 초록색의 털실로 짜여진 모자와 같은 색의 스웨터, 그리고 가느다란 털실이 서로 연결된 벙어리장갑과 초록색의 털목도리였다. 오남매 모두에게 각 각 다른 색으로 만들어진 어머니의 크리스마스 선물이 주어졌다. 우리는 똑같지만 다른 색을 한 옷을 입고 장갑을 꼈으며 모자를 쓰고 목도리를 둘렀다. 키만 조금씩 다른 오둥이들이였다. “모두들 예쁘다!!” 어머니는 막내까지 옷을 입혀 세워놓고 기쁘게 외치셨다. 그 말에는 여름이 끝날 무렵부터 시작하여 기나긴 밤들을 하얗게 토해내던 고통의 넋두리들이 가슴에서 모두 지워지는 기쁨이 서려 있었다. 어머니는 멀뚱히 서있는 우리를 보며 환하게 웃으셨다. 선물같지 않은 선물에 동생들은 말이 없었고 오빠들은 시큰둥했다. “애게, 이게 무슨 크리스마스 선물이야?!” 나 역시 기대했던 크리스마스 선물이 아니어서 실망이었지만 모자의 방울만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밤마다 몰래 어머니의 혼신의 모습을 보아온 나는 차마 오빠들처럼 말할 수는 없었다. 그렇게해서 우리는 이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크리스마스 선물을 받았고 유난히 추웠던 그 겨울을 어머니의 깊은 사랑과 헌신으로 따뜻하게 날 수 있었다.

 

 

 

 

“엄마! 나, 이 모자 쓰고 싶어.” 딸은 초록 털모자가 예쁘다며 자기를 달라고 졸랐다. 어머니의 마지막 뜨개작품을 가방에 고이 넣고 태평양을 건넜다. 돌아오는 기내에서 어머니의 젊은날의 표상이었던 뜨개질을 떠올리며 먹먹한 애잔함으로 가슴이 아팠다. 세월이 흘러도 나는 그것을 고이 간직할 것이며 누가 억만금을 준다해도 절대로 바꾸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어머니가 이 세상에 더 이상 계시지 않을 때 어머니를 대신하여 내게 위로를 줄 수 있는 나의 소중한 보물이 될 것이다. 살다가 힘이 들어 눈물이 날 때면 어머니의 모자를 써보리라. 어머니가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위로해주던 따스한 말을 들으며 어머니를 많이 그리워하리라. 뭐든 잘 먹지않는 나를 많이 예뻐하고 사랑해 주시던 어머니의 정이 그리워질 때마다 어머니가 남긴 털모자를 쓰다듬으며 그렇게 어머니를 많이 그리워하리라. “아야, 뜨개질은 절대로 배우지 말아야, 골병등께.” 대문 앞에서 우리를 배웅하며 계속되던 어머니의 당부가 하얀 겨울 하늘 저 너머에서 메아리쳐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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