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예정원] 두 시간의 여행 > LIFE

본문 바로가기
사이트 내 전체검색


LIFE

문학 | [문예정원] 두 시간의 여행

페이지 정보

작성자 정재욱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20-01-08 11:51 조회2,082회 댓글0건

본문

 

f4e2a76c9ddcb7d84f7beab9765ebd74_1578513044_8847.jpg정재욱 / 캐나다 한국문협 회원 

 

   난 지금 두 시간의 여행을 떠난다. 

 

   두 시간은 집에서 출발해 목적지까지 걸리는 시간이다. 버스를 이용하고, 스카이 트레인을 타고, 걸어서 간다. 출발지는 포트 무디이고, 도착지는 리치몬드이다. 구글 지도에서 내가 가는 경로를 그려보면 최단 거리로는 30.5 km, 차로는 42분가량 걸린다. 메트로 밴쿠버 지역의 동북쪽 끝에서 남서쪽 끝자락에 이른다. 스카이트레인을 탄다면, 에버그린 라인, 밀레니엄라인, 엑스포 라인, 캐나다 라인까지 밴쿠버 전철 노선에 나와 있는 전 노선들을 다 거쳐야만 갈 수 있다. 버스를 타더라도 엑스포 라인의 22번가 역에서 출발하여 한 시간쯤 걸려 거의 종점에 다다른 정거장에서 내린다.

   두 시간의 여정을 떠나기에 앞서 이것 저것 준비를 한다. 먼저 간단한 스낵거리와 물을 챙긴다. 도서관에서 빌린 책 한 권과 전자책도 배낭 안에 넣는다. 언제 내릴 지 모르는 비를 대비해 접이 우산을 배낭 바깥쪽에 꽂는다. 딸아이가 크리스마스 선물로 준 토크1)를 윗머리만 조금 남기고, 귀 밑까지 눌러쓴다. 무선 이어폰을 귀에 꽂고, 텀블러에 방금 내린 커피를 채우고, 콤파스 카드2)를 확인한 후 서둘러 집을 나선다. 

   일단 버스나 전철에 자리를 잡고 앉고 서야 겨우 한숨을 돌린다. 휴대폰의 묵주기도 앱을 켜서 기도를 하고, 스포티 파이3)에서 내가 선곡한 음악을 듣는다. 전철 입구에서 받아든 무가지 신문을 보기도 하고, 오늘 해야 할 일들을 생각나는 대로 휴대폰 메모장에 적기도 한다. 도서관에서 빌린 소설책을 읽기도 하고, 이북 안에 있는 만화를 보기도 한다. 책을 읽다가 히터에서 나오는 따뜻한 공기와 주기적으로 움직이는 전차의 진동, 주위의 백색소음이 저절로 내 눈을 감기게 한다. 엄마가 아이를 안고 흔들며 자장가를 불러 아기를 재우듯 금세 스르르 잠이 든다. 머리를 창가에 기댄 채 달콤한 꿀 잠을 자다 보면 시간은 금세 지나간다. 버스나 스카이트레인 안은 내 겐 달리는 이동형 카페가 된다. 텀블러의 아직 따뜻한 온기가 남아 있는 커피를 마시고, 이어폰으로 들려오는 음악을 들으며, 차창 밖으로 보이는 풍경을 바라본다. 복잡한 시내를 지나고, 강을 가로지르는 다리를 건너고, 탁 트인 벌판이 나오기도 한다. 해가 떠오르는 아침 하늘이 아름다운 색채로 물들이고, 갈매기 무리가 지나간다. 

   예전엔 공항까지 가는 일이 무척 멀게만 느껴졌다. 공항에서 멀지 않은 목적지까지 자주 다니다 보니 이젠 더 가깝게 다가왔다. 처음의 낯섬과 설렘은 익숙함과 친근함으로 바뀌었다. 스카이 트레인역에서 내려 목적지까지 가려면 아직 더 1 킬로미터 남짓 걸어가야 한다. 역에서 내려서 걸어가다 보면 새로 짓는 콘도 빌딩이나 새로 신장 개업을 준비하는 상가들로 즐비하다. 가게의 간판들은 모두 한자로 쓰여져 있는 곳이 많고, 중국 사람들이 많이 사는 지역이어서 그런지 여기가 캐나다인지, 중국인지 헷갈릴 정도이다. 길을 걷다가 굉장히 커다란 굉음 소리에 하늘을 쳐다본다. 하늘 위를 비행기가 힘차게 솟구치며 날아간다. 시간이 좀 여유가 있을 때에는 스카이트레인 역의 한 정거장 전에 내려서 프레이저 강변도로를 따라 걷는다. UBC 조정팀이 강물을 가로지르며 힘차게 힘을 다해 노를 젓는 모습을 본다. 바람에 따라 유유히 흐르는 강물을 바라보며 천천히 걸어가는 것도 색다른 경험이다. 거의 두 시간을 경과해서 드디어 목적지에 도달한다.

   지금까지 두 시간의 여행은 나의 출근길의 모습이다.  때론 이 여정이 출근길이 아니라 여행하는 기분이 든다. 많은 사람들이 왔다 갔다 하기가 힘들겠다 하지만, 난 오늘도 두 시간의 여행을 떠난다.

 

1)토크 (Toque): 작고 챙이 없으며, 골무처럼 생긴 겨울에 쓰는 털모자. 비니 (Beanie)라고도 함.

2) 콤파스 카드 (Compass Card): 밴쿠버의 대중 교통카드

3)스포티파이 (Spotify): 세계 최대 음원 스트리밍 서비스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플러스로 보내기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LIFE 목록

Total 5,756건 1 페이지
게시물 검색
회사소개 신문광고 & 온라인 광고: 604.544.5155 미디어킷 안내 개인정보처리방침 서비스이용약관 상단으로
주소 (Address) #338-4501 North Rd.Burnaby B.C V3N 4R7
Tel: 604 544 5155, E-mail: info@joongang.ca
Copyright © 밴쿠버 중앙일보 All rights reserved.
Developed by Vanple Netwroks Inc.
모바일 버전으로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