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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 [바다건너 글동네] 동화 "가래떡의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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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정순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20-01-22 18:03 조회2,11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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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10e65fe20ce61c2e8096890e9982f7c_1579744974_0742.jpg이정순 

 

“할머니, 한인 마트에 떡국 썰어 놓은 것 팔던데 힘들게 썰어요?”

“할미가 옛날 생각이 나서 가래떡을 사 왔단다. 그때는 한 가마니씩 떡국을 썰었어.”

“그렇게나 많이요?”

“식구가 좀 많아야제. 우리 찬우 새해면 병탕이 몇 그릇째니?”

“네?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할머니는 떡을 썰면서 내 얼굴을 보며 말씀하셨다. 칼을 보지 않고도 손가락이 베이지 않는 것이 신기하기만 했다. 나는 연필 깎기가 고장 나면 연필을 깎지 못해 샤프를 쓰는데 말이다.

“할머니, 위험해요. 근데 보지도 않고 쓰시는데 떡 크기가 똑같아요!”

나는 감탄해서 병탕 이야기는 까마득히 잊고 말았다. 그 때 할머니가 내게 물었다.

“찬우야, 한석봉을 아니?”

“네, 책에서 읽었어요.”

나는 눈을 살며시 감아 보았다. 책에서 본 한석봉이가 눈앞에 어른거렸다.

“석봉아, 마당 쓸고 조반 먹기 전에 글공부하자꾸나.”

나는 허름한 옷을 입고 빗자루를 들고 마당에 서 있는 자신을 보고 깜짝 놀랐다.

“서, 선생님!”

“뭘 그리 놀라느냐? 매일 하던 것이 아니더냐?”

한국 있을 때 다니던 한자 학원 선생님이 머리를 박박 깎고 스님 옷을 입고 내 앞에 서 있었다. 내가 빗자루로 마당에 한자를 쓰고 있었다. 땅바닥은 글쓰기 연습장이 되어 있었다.

“햐! 내가 이렇게 한문을 잘 쓰다니!”

한자학원에서 맨날 선생님께 야단만 맞던 자신이었는데, 어리둥절했다.

 

집안이 가난하여 따로 스승을 모실 수 있는 형편이 못 되자 어머니는 석봉에게 말했다.  

“가거라. 가서 네가 글을 다 깨우쳤다고 생각될 때까지 집에 오지 말아라.”

한석봉의 어머니는 석봉을 절로 보내 스님한테 글공부를 배우게 했다. 그때가 석봉의 나이 겨우 여섯 살이었다.

“어머니, 어머니가 보고 싶으면 어찌합니까?”

“어미가 죽었다 해도 글을 다 깨우치기 전에는 와서는 안 되느니라.”

그리하여 석봉은 어머니와 생이별을 했다. 석봉이가 절에 온 지 벌써 4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석봉은 더 공부할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들자 어머니가 몹시 보고 싶었다. 한밤중에 몰래 절을 빠져나와 한달음에 집에까지 왔다.

“어머니, 소자 이옵니다.”

어머니는 방문을 열고 아들을 반갑게 맞았다.

“석봉아, 글공부를 다 깨우쳤단 말이냐?”

“네, 어머니!"

“그래, 내 아들 장하다. 잠깐 기다려라.”

“어머니 절 받으세요.”

한석봉이 어머니께 큰절을 올리고 나자 일어나서 부엌으로 갔다. 어머니는 부엌에서 칼과 도마, 그리고 썰지 않은 가래떡을 가지고 왔다.

“네 문방사우를 가지고 오너라.”

그리고 등잔불을 껐다.

“왜 불을 끄옵니까? 어머니!”

“내가 이 떡을 썰 테니 너는 글을 한 번 써 보거라.”

“불을 끄고요? 어머니 위험합니다. 손가락이라도 베이면 어쩌려고요.”

“내 염려는 말아라.”

어머니의 얼굴은 단호함이 묻어있었다.

‘싹둑싹둑!’

떡 써는 소리만이 고요한 집안에 울렸다. 밤하늘의 별들도 숨을 죽였다. 무심하게도 달은 구름 속으로 얼굴을 감추고 말았다. 주변은 깜깜했다. 한석봉은 의기양양하게 붓으로 글을 쓰기 시작했다. 한참 동안 떡 써는 소리만이 어둠을 가르더니 그 소리가 뚝! 그쳤다.

“어머니, 손을 베였습니까?”

“아니다. 글은 다 썼느냐?”

“네, 어머니.”

어머니는 등잔불을 밝혔다.

“자, 네가 쓴 글을 먼저 이 어미한테 보이거라.”

한석봉이 자신 있게 쓴 글은 삐뚤빼뚤, 한 자도 똑바로 된 것이 없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어머니, 어떻게 된 겁니까? 한 자도 똑바로 된 것이 없사옵니다.”

한석봉의 눈이 동그래졌다. 이제 어머니의 떡을 볼 차례였다.

“어머니! 어쩌면 떡이 이렇게 고릅니까? 불을 켜고 썰어도 이렇게 고르게 썰 수가 없을 것 같습니다.”

“네 이놈! 저기 있는 회초리를 가지고 오느라.”

석봉은 자신이 글공부하러 절로 떠나기 전 어머니가 훈계할 때 쓰던 그 회초리가 벽에 그대로 세워져 있었다.

“어머니, 옛날 그 회초리 아니 옵니까?”

“내 이런 날이 올 줄 알았다. 종아리 걷어라.”

어머니는 그 회초리로 종아리를 후려쳤다.

“썩 다시 절로 돌아가거라! 사내 녀석이 어미가 보고 싶다고 쪼르르 달려오다니. 불을 끄고도 똑바로 글을 쓸 수 있을 때 오너라.”

한석봉은 그길로 흐르는 눈물을 훔치며 어머니께 하직 인사를 올리고 다시 절로 들어갔다. 그 후 한석봉은 글공부를 열심히 하여 조선 시대 최고의 명필가가 되었다.

 

나는 감고 있던 눈을 떴다. 여전히 할머니는 떡을 썰고 있었다.

“우리 찬우 이야기 솜씨가 보통이 아니네.”

“휴! 제가 한석봉이가 되어있는 생각을 해 보았어요. 할머니는 한석봉 어머니보다 떡을 더 잘 썰었어요.”

“그러냐?”

“할머니, 떡을 그렇게 많이 썰어요?”

“며칠 후면 한국 설날이잖니. 캐나다에 너처럼 유학 와 있는 아이들 데려다 떡국이라도 먹여야지. 어린 것들이 공부한답시고 부모 떨어져 있으니 얼마나 외롭겠니. 찬우 친구들 다 불러오너라. ”

나는 작년 3학년 때 캐나다 할머니 댁에서 유학하고 있었다.

“할머니, 잭이 좋아 할거예요. 잭 엄마는 한국인이거든요. 그런데 왜 설날에 떡국을 먹어야 해요?”

“떡국을 먹어야 한 살 더 먹는 게야. 찬우가 한석봉 이야기를 해 주었으니 이 할미는 떡국 이야기를 해줘야겠구나.”

할머니는 이야기를 시작했다.

“요즈음도 그렇지만 옛날에도 처녀들 나이나 어른들의 나이를 바로 묻는 것은 예의에 어긋났단다.”

나이를 물을 때는 떡국을 몇 그릇 먹었느냐고 묻는데, 떡국 떡이 희다고 해서 백탕이라고 하고, 끓인다는 뜻인 병탕이라고 했단다. 그래서 나이를 물을 때 “병탕을 몇 그릇 먹었느냐? 백탕이 몇 그릇째냐?” 하고 물었다고 했다.

“아, 이제야 생각났다. 아까 할머니가 제게 병탕이 몇 그릇째냐고 물으셨죠?”

“내 강아지, 이제야 알아들었구나.”

“새해에는 병탕이 열 한 그릇째예요.”

“떡국에는 어떤 유례가 있는지 말해 줄 테니 들어보렴. 옛날에는 주로 떡을 주식으로 먹었단다. 떡은 보관이 어려워 딱딱해지면 물을 붓고 끓인 것이 오늘날 떡국이 되었지.”

“옛 어르신들이 지혜롭네요.”

“그렇지. 그러면 왜 떡국을 새해에 먹었는지 아니?”

“잘 모르겠어요.”

“떡국을 썰기 전에는 긴 가래떡이었지. 이처럼 말이야.”

할머니는 썰다 만 긴 가래떡 하나를 들어 올렸다.

“설날은 모든 것이 새로 시작되는 날이지.”

흰색은 근엄함과 청결을 뜻하기 때문에 좋지 않았던 일들은 깨끗이 씻어버리고 좋은 일만 있으라는 뜻이라고 했다. 긴 가래떡은 장수를 의미하고, 동글동글 쓴 떡은 엽전을 의미해서 부를 상징하는 뜻이란다. 몸과 마음을 깨끗하게 하고자 맑은 물에 넣어 끓인 하얀 떡국을 새해 첫날에 먹으며, 일 년의 소망을 간절히 빌었다고 했다.

“아, 그런 뜻이 담겨있었군요.”

“그러니까 떡국을 귀히 여기고 조상들의 지혜를 닮으려무나.”

“네, 할머니! 한국 설 연휴에 엄마 아빠 서울에서 낼 오시죠?”

“그려, 할미가 무슨 소용이 있겠어. 어미 아비가 최고지.”

“아, 아니에요. 할머니가 최고예요. 할머니 사랑해요!”

나는 할머니를 꼭 안아드렸다. 할머니 얼굴이 하회탈처럼 환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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