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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 [문예정원] 남편의 요리 수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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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진양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20-01-24 10:05 조회2,08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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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c7fb17f304f08b80f39696f6d57c14e_1579889333_2157.jpg김진양/캐나다 한국문협 회원

토스터 오븐(Toaster Oven)에서 따끈하게 구워져 나온 유기농 알감자를 먹으면서 이것은 어떻게 구운
것이냐고 묻는다. 맛이 있나보다. 구워낸 방법을 이야기 하면서 내게는 매우 간단하지만 처음 하는 사람에게는
한 번 설명으로 기억하기 힘들 것 같아 ‘당신만의 기록을 해 두면 어떻겠느냐’고 슬쩍 던져봤더니 그거 좋은
생각이라고 선뜻 받아들였다. 얼른 빈 수첩 하나를 찾아서 첫 장에 ‘알감자 굽기’ 부터 적게 했다. 요즈음엔
인터넷으로 모든 것이 해결 되지만 우리 세대는 아무래도 스스로 쓴 것을 펼처 보는 것이 편하다.
하루 일과 중에 먹는 일 만큼 생각해야 하고 시간 쓰는 일이 어디 있겠는가! 치매를 예방할 수 있는 좋은 방법
중에 하나라고도 하니. 시작이 반이라고 기회 있는 대로 한 가지씩 늘려 가면 어떤 경우에 혼자 있을때라도 걱정
없을 것이다. 오래 전 이야기다. 가까이 지내는 가정의 주부가 모처럼 모국 방문을 가게 되어 홀로 지낼 남편의
음식을 정성껏 만들어서 냉동고에 차곡차곡 넣어 두고 식단을 만들어 잘 드시도록 하고 떠났다. 며칠 후에 안부
전화를 걸어봤는데 목소리에 힘이 하나도 없게 느껴지기에 왜 그런가 했더니 의사가 영양실조라고 했단다.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완전히 아내에게 의지하고 살다 보니 만들어 둔 음식을 녹여서 데워 드는 것 조차
제대로 못 하셨던 모양이다. 평소에 조금씩 훈련을 시키지 않으면 이럴 수도 있구나 하고 깨달은 적이 있다.

어느 날 남편이 텔레비전을 보면서 무언가를 열심히 적고 있기에 슬쩍 넘겨다 보니 젊은 남성의 요리 강습을
보며 식재료를 받아 쓰고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좋아했던 영화 배우 오드리 헵번의 아들이 어느 방송 프로에
출연하여 요리 강습을 하고 있었다. 자기 어머니가 해 주셨던 이탈리안 패스타를 소개하며 시범을 보이고
있는데 이런 음식을 좋아하는 남편의 눈길이 거기에 머무른 것이다. 그 후에 재료를 사다가 직접 시범을
보였는데 설명 적은 종이를 일일이 점검하며 맛도 봐 가면서 그럴 듯 하게 한 접시를 만들었다. 주방 보조
역할도 만만치 않다는 것을 그때 알았다. 그 후에 몇 번 더 만들어 보고 자신이 생겨 옛 직장 캐나디언 동료
내외를 초대해서 오드리 패스타 (Audrey Pasta: 우리만의 메뉴 이름)를 메뉴 중의 하나로 대접했던 일도 있다.
은퇴하면 할 일 중에 하나가 요리학원에 등록하는 일이라고 이야기 하는 것을 여러 번 들었다. 보통 공무원들
보다 늦게 은퇴한 남편에게 회사 운영상 좀 더 일 할 기회가 주어져 아마 십 년 이상 더 사회 생활을 한 것 같다.
그런데 막상 은퇴하는 달에 마침 어떤  선교 단체 활동으로 삼 년 동안 또 바쁘고 보람 있게 지냈다. 지금은
그것 마저도 은퇴 한다고 한다. 이제 요리 실습 프로그램에 등록해 보려고 하니 거의 찾아보기 힘든다. 모여서
같이 만들고 시식을 하는 재미도 꽤 쏠쏠한데.
팔 년 전에 미국에서 대학 동창 모임이 있어서 혼자 5박 6일간 집을 떠난 적이 있다. 남편이 혼자 지내게
된 첫 날 새벽에 집안에서 넘어져 응급실에 갔었다 한다. 집 떠나 있는 사람 걱정 할까 봐 알려주지 않아서
아무 것도 모른채 돌아와 보니 홀로 그런 일을 겪은 것이다. 그때 그에게 첫 번으로 떠오르는 것이 식사 문제
이었다고 한다. 앞으로 거동을 못하게 되면 어쩌나, 누구한테 도움을 청해야 하나, 등등. 검사 결과를 기다리는
동안 의료팀이 꽤 겁을 주었나보다. 다행히 큰 일은 없었지만 자신에 대해 생각 해 보는 기회가 되었음이 분명
하다.
돌이켜 보니 시 어머님께서 사회생활을 하셨기 때문에 가정의 일들을 다른 사람의 손에 맡겨서 하실 수
밖에 없었다. 그래서인지 남편은 식사를 가능한한 집사람의 손을 통해서 하기를 원해서 은퇴할 때까지  늘
도시락을 가지고 출근 했다. 집에서 만든 음식이 제일 건강에 좋고 맛도 있다면서. 새해가 됐으니 한 달에 한
가지씩 이라도 남편의 요리 수첩을 채워서 기본적인 식생활을 해결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할 것 같다.
근심덩어리 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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