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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 [바다건너 글동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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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전종하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20-02-20 09:03 조회1,87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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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edc59fd52a9832171733cd879293f3_1582218199_8528.jpg전종하 

사)한국문협 밴쿠버지부 회원)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해 세상이 아주 시끄럽다. 누구에게나 죽음은 두렵기에, 어느 한 도시에서 시작된 전염은 전 세계인을 두렵게 만들었다. 흡사 좀비 영화를 연상케 하듯 사람들이 살기 위해 발버둥 쳤고, 고국뿐 아니라 캐나다에서도 마스크와 손 세정제가 다 동나는 현상이 벌어졌다.

 

정월 초 코로나바이러스와 함께 한국에서 들려온 또 하나의 소식이 있었다. 바로 어머니의 사고였다. 새벽 예배를 마치고 교회에서 나오시던 중 미끄러지셔서 다리가 부러지신 것이다. 다행히 설을 맞이해 동생이 고향에 내려가 있어서 나 대신 두 아들의 역할을 한 덕분에 수술과 치료가 일사천리 진행되었지만, 먼 타지에서 이러한 소식을 접할 때면 바로 달려갈 수 없는 상황에 언제나 마음이 아프다.

 

몇 달 동안 거동이 어려우실 것이라는 소식에 어머니 병간호를 위해 간호사인 아내가 한국에 몇 주 다녀오기 위해 일하고 있던 병원에 근무 시간을 조절하려 했는데, 코로나바이러스가 창궐하기 시작할 즈음인 터라 주변 동료들이 감염에 대한 우려의 말들을 했다고 하여 방문을 포기하였다.

설상가상으로 나 또한 휴가를 내고 한국에 가기에는 어려운 상황에 부닥쳐 있었다. 2월 중순에 만료가 되는 영주권이 지난해 11월에 연장 신청을 들어갔음에도 불구하고 승인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사이에 영주권 연장 승인이 되면 다시 돌아오는 것에 큰 문제가 없지만, 혹시나 다른 문제가 생기면 여러 가지로 복잡해질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답답한 마음에 이민국에 전화를 걸었다. 이란 여객기 추격과 관련 하여 난민 신청에 관한 공지가 3분 정도 나오고, 미리 녹음된 보이스 메뉴들을 따라 계속해서 들어가기 시작하니 15분 정도 걸려 상담사 연결 메뉴까지 올 수 있었다. 상담사 연결 버튼을 누르고 나니 30분 이상 기다려야 한다는 말과 함께 연락처를 남기면 다시 연락을 주겠다는 안내를 받고, 그렇게 30분을 더 기다려 결국 상담사와 연결을 할 수 있었다.

상담사는 내게 진행 상황에 대한 뚜렷한 정보는 줄 수 없다며 메모를 남겨 주겠다는 말과 함께 궁금한 것이 있냐고 물었다. 연장 승인 전 해외여행을 갈 수 있는지에 관해서 물어보았는데 궁금한 것이 많아 질문에 질문을 이어가고 있었다. 그러자 상담사는 나의 반복된 질문이 짜증 나기 시작했는데, 갑자기 짜증 나는 말투로 “Listen, you don’t belong to us!”라며 내가 자국민이 아니기 때문에 외국에 나가는 것은 내 마음대로 할 수 있지만, 돌아오는 것은 까다롭다고 대답했다. 순간 상담사의 태도에 나도 화가 났다. 하지만 나를 더 분노하게 했던 것은 행여나 영주권 진행에 문제가 생기지는 않을까 하는 마음에 화를 삭이어야 했다는 것이다.

 

고단했던 하루를 마치고 퇴근 후 집으로 걸어가는 길, 마침 해가 지고 어둠이 찾아오기 시작했다. 세상은 코로나바이러스로 시끄럽고 어머니는 사고로 병원에 누워 계시는데 집 떠나 타향살이하며 겪는 신분의 불안정까지 더해지니 서러움과 분노가 마음속에 교차하였고, ‘개와 늑대의 시간’ 속에서 무거운 발걸음을 하던 중, 문득 성경 구절 속 한 지역이 떠올랐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

지금 내가 사는 환경이 딱 그곳이었다. 어느 한 곳도 안전하지 않고, 모두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 치고 있는 기분이었다. 그리고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 속에서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는다’라고 고백을 한 시편 저자의 믿음이 부러웠다. 나는 시편의 저자처럼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서도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신다’라는 믿음의 고백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을까?

어릴 적 성경학교에서 강제적으로 암송하게 했던 이 시편 23편에는 ‘푸른 초장’과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가 나온다. 성경에서는 비록 우리가 ‘푸른 초장’이 아닌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서도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신다고 기록되어있음에도 나는 ‘푸른 초장’으로 인도해 주실 하나님에 대한 믿음만을 가지고 살아 온 것은 아니었을까?

 

집에 들어와 SNS에 그날 이민국 상담사와 있었던 일을 포스팅하며 나의 답답함을 주변 사람들에게 나누었는데, 어느 목사님께서 댓글로 다른 시편의 구절을 남겨 주셨다. “그들이 눈물 골짜기로 지나갈 때 그곳에 많은 샘이 있을 것이며 이른 비가 복을 채워 주나이다.” (시편 84편 6절) 우리 기독교인들에게는 이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도 복이고 감사인데, 항상 ‘푸른 초장’만 기대해 온 내 삶이 부끄러웠다.

 

며칠 후 주유소에서 기름을 넣고 계산대에 갔는데, 얼마 전까지 해도 구하기 힘들었던 손 세정제가 휴대용으로 통에 담겨 판매되고 있었다. 반가운 마음에 몇 개를 사려고 하자, 계산원이 언제 다시 들어 올지 모르니 더 사가라고 한다. 마음은 거기에 남은 것들을 다 사 가고 싶었지만 필요한 만큼만 구매하였다.

몇 주가 지난 지금도 세상은 바이러스 공포 속에서 살아가며, 이제는 특정 인종을 혐오하는 인종차별까지 생겨나기 시작했다. 분명 아직도 이 세상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 일지라도, 그 골짜기 속에서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는 모두가 힘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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