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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 [바다건너 글동네] 유리병 뚜껑을 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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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송무석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20-02-27 09:41 조회1,70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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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b3faa3f7049fcfc86c1529ef3e57cf3_1582825310_6939.jpg송  무  석

사>한국문협 밴쿠버지부 회원

 

 

지지난 주 유리병에 담긴 아스파라거스를 샀다. 그런데, 열어서 먹으려 하니 아무리 힘을 주어 돌려도 열리지 않았다. 손이 자꾸 미끄러져서 헛돌기에 음식을 싸는 랩을 병에 감고 돌려 보았지만, 여전히 끄떡도 하지 않았다. 병을 깰 수도 없고 도대체 어떻게 열어야 하나 궁리하다 인터넷 검색을 해 보았다. 유리병 따개 제품은 엄청나게 많았다. 관절염이나 노약자들을 위한 제품이라는 이들 제품은 대부분 병뚜껑을 꽉 조여서 돌리게 되어 있었다. 물론 건전지 힘을 이용하는 자동 제품도 있었다. 하지만, 선뜩 온라인 주문을 할 수는 없었다. 무엇보다 모든 제품이 병뚜껑의 크기가 10cm 미만의 작은 유리병만 열 수 있다고 쓰여 있거나 어느 크기의 병뚜껑을 열 수 있는지에 관한 정보가 없었다.

그래서, 직접 매장에 가서 사려고 월마트, 런던 드러그 등에 들러 보았지만 커다란 유리병을 열 수 있는 제품은 없었다. 마지막으로 캐나디언 타이어에 가서 발견한 병따개는 꽤 쓸모가 있어 보였다. 다만, 어느 크기의 병뚜껑을 열 수 있는지 설명이 되어 있지 않았다. 다행히 간단한 플라스틱으로 포장되어 있어서 제품 포장에 아무런 손상을 주지 않고 쉽게 열어 볼 수 있었다. 그래서, 최대한 크기로 벌리고 줄자를 찾아서 재어 보니 역시 병뚜껑의 직경이 9.5cm가 넘으면 사용할 수 없었다. 포기하려다, 깡통 따개, 음료수병 따개 등 8가지의 기능이 들어 있다는 연두색 제품의 설명을 보다 번득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그 제품은 유리병 뚜껑을 열 때 다른 제품과 달리 밀착해 돌리지 않았다. 대신, 뚜껑의 가장자리를 들어 올려 유리병의 진공 상태를 깨뜨렸다.

‘아하, 그래 진공 때문에 병뚜껑이 그렇게 힘을 써도 열리지 않는구나! 그렇다면 플라이어나 펜치 등 다른 도구로 진공만 깨면 되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래서, 굳이 병따개 제품을 사지 않고 집으로 돌아왔다. 하도 안 열려서 구입한 매장에 가서 열어 달라고 할까, 아니면 반품이라도 할까 고민하던 아스파라거스 병을 꺼냈다. 공구함에서 가져온 플라이어로 병뚜껑의 아래쪽 가장자리를 살짝 들어 올리니 진공이 된 병 속으로 공기가 들어가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그렇게도 꿈쩍도 하지 않던 병뚜껑이 별로 힘을 들이지 않고도 쉽게 열렸다.

이 간단한 원리를 깨닫지 못하고 2주를 방법을 찾았다니 실소가 저절로 나왔다.

초등학교 5학년 때 40명이 넘는 우리 반 남자아이들을 상대로 팔씨름을 해서 단 한 명을 빼고는 다 이겼던 나는 그 무렵부터 이미 종종 어른들이 못 열고 쩔쩔매는 병을 강한 악력으로 쉽게 열었다. 그래서, 손힘이 세니 다른 식구들이 못 여는 병을 나는 열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나 보다. 사실 손에 땀이 나서 미끄러지면 땀을 닦고 돌리면 대부분 병뚜껑을 쉽게 열 수 있었다. 그렇지만, 캐나다에서 산 파스타 소스 병 등은 어찌나 단단하게 조여졌는지 아주 애를 먹였다. 그래서, ‘아니 북미 사람들은 손힘이 엄청 좋거나 아니면 전동 깡통 따개처럼 병따개도 다 가지고 있나 보다’고 생각했다.

한국과 북미 깡통 제품은 참 다르게 만들어진다. 한국에서 오는 통조림은 하나같이 다 뚜껑 위에 달린 고리만 잡아 당기면 쉽게 깡통을 열 수 있다. 하지만, 이곳에서 만들어진 깡통은 그런 식으로 사용자의 편의를 고려한 제품을 발견하기 쉽지 않다. 거의 모두가 깡통 따개를 이용해 열어야 한다. 그래서, 웬만하면 한국 깡통 제품으로 손이 간다. 이것도 문화의 차이인가? 북미 제품들은 한국이나 일본 제품보다 소비자 편의를 덜 신경 쓰는 듯하니.

아무튼, 내가 유리병 따개를 사지 않은 이유는 다른 도구로도 할 수 있는데 굳이 새 도구를 사는 물건을 늘이고 싶지도 않고, 이런 식의 구매는 결국 자원 낭비라는 생각이 들어서다. 진공 포장의 원리만 알았으면 쉽게 방안을 찾을 수 있을 것을 괜히 병을 너무 단단히 조여서라고 짐작하고 죄 없는 손만 괴롭힌 어리석음을 되씹으며 다시 생각해 본다.

나뭇가지를 이용해 개미를 잡아먹는 침팬지 등 “도구를 사용하는 동물들”이 점차로 알려져서 이제는 도구 사용이 인간과 동물을 가르는 특성이라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도구의 광범위한 활용과 제작을 고려하면 인간이 확실히 다른 동물과 달리 두드러지게 도구에 의존하는 것은 명백하다. 그리고, 다양하고 폭넓은 도구 사용이 인간의 환경 적응과 우월적 지위를 확보하는 데 중요한 역할은 한 것도 사실이다. 그렇지만, 가게에 진열되거나 온라인으로 검색해 보면 굳이 저런 제품도 만들어 쓸 필요가 있나 느끼게 되기도 하고 과도하게 세분된 도구도 많이 본다. 특히, 주방 도구들을 보면 거의 칼과 도마 솥 등 몇 가지 조리 도구만 쓰고도 맛있게 요리를 하시던 어머님이 절로 떠올라 도구를 만들기 위해 도구를 만드는 것은 아닌지 의문이 든다. 어떤 제품을 사용한 시간보다 청소하고 닦는 데 더 시간이 걸리고 힘들기도 하니!

캐나디언 타이어나 홈디포 같은 하드웨어 가게에 가면 무슨 공구가 그렇게 많은가? 도구를 만드는 것도 능력이지만 같은 도구를 다양한 용도로 활용할 줄 아는 것 또한 능력이다. 물건이 넘치는 시대, 자주 쓰지 않아 먼지만 쌓이고 공간만 차지하는 물품들을 사서 쌓아 놓고 공간이 부족하다 투덜대지 말고 가능한 작은 불편은 참고, 하나의 도구를 여러 용도로 활용하는 지혜를 발휘하면 좋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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