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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 [문예정원] [미니 소설] 나팔 불기 좋은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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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안오상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20-02-27 17:21 조회2,08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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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3e880486368b8dc0b4fd8ad9885856_1582852894_275.jpg안오상 / 캐나다 한국문협 회원

 

공팔용씨와 귀덕이 할매가 사는 집에는 작은 전망대가 있다. 기껏 의자 두 개와 햇빛 가리게 비치 파라솔과 볼기짝만 한 테이블 하나가 전부다. 또 있다면 가라지 세일에서 사온 어줍지 않은 망원경이다. 그 망원경을 들고 습관처럼 이 쪽으로부터 저쪽 하늘까지 두루 누비 다간 까닭없이 긴 한숨을 쉬는 곳 이기도 하다. 봄이면 꽃 향기에 취해서 나가고 여름날엔 싱그러운 바람을 찾아 눌러 앉는다. 비가 시작되는 계절이면 파라솔 밑에 매미처럼 붙어 웅크린다. 날씨가 추워지면 두터운 외투에 털모자까지 쓰고 나선다. 팔용씨가 전망대에 자리를 잡으면 눈 꺼풀은 자연스럽게 덮이고 입이 벌어지며 그 다음은 몇개 안되는 치아가 밭고랑 같이 쑥 내민다. 마지막 에는 부드러운 미소가 떠 오르는데 사람이 늙어지면 웃는 얼굴도 슬퍼 보인다고 했다.

“그럼 어쩔 것 이여…? 바꿀 수도 없고” 다만 씁쓸하게 웃고 있을 뿐이다.

귀덕 할매가 찻잔을 들고 나오며 갈라진 쇠 소리를 낸다.

“제발 틀니 좀 껴 유… 빠진 이 사이로 쥐 도 드나 들겠네……”

“아이고 험한 소리도 하네…”

어떤 유행가 가사에 시집와서 첫 애를 낳고는 호랑이로 변했다고 했는데 우리집 할매는 쓸만한 첫 아들도 못 낳았으면서 큰 소리 잔소리만 사납게 늘어갔다.

“허기사 딸 밑으로 알맞게 아들 둘을 낳고 알토란 같이 잘 키웠으니 상이라도 줘야 할 판인디 잔소리하는 재미도 없으면 심심해서 뭔 재미로 살것이여 히 히 히 히” 혼자 재밌어하며 웃음을 담는다.

“당신은 매일같이 이 잡듯 하늘을 뒤지는 디? 금덩이라도 떨어 진데유?

“그건 아니고 사과 꽃 구름 하 하 하 하”

“그런 요상한 구름이 어딧데유?”

“아니유, 내가 봤씨유 고향에서 먼산 나무를 갔다가 손가락 바위께 서 쉬고 있었는디 서해 바다가 시커멓게 보인는 하늘 끝에서부터 하얀 꽃구름이 몰려오지 않것씨유? 마치 우리집 과수원에 늘어지게 핀 사과 꽃같이 말 이지유.”

순간 할매의 얼굴이 토라지며 쏘아붙인다.

“고향에서 본 구름을 왜 여기서 찾아유?”

“같은 하늘을 이고 사니께 “

“좌우단간 꽃이건 열매 건 볼만큼 보고 살았씨유 난 과수원 생각만 해도 허리가 쑤시고 다리가 시리니께 이젠 좀 잊고 살아요.” 쪼르르 안으로 들어간다.팔용씨는 공연한 심통을 부린다는 듯 혀를 찬다.

“아이고! 사과 꽃구름은 있는 기여? 없는 기여?” 초점을 잃고 하늘을 바라본다.

까마귀들이 아우성을 치며 날아 가는데 비 라도 몰고 온 듯 후 두둑 빗방울이 떨어진다. 팔용씨가 질겁을 하며 비명을 지른다. “또 여?”

밴쿠버는 아직도 비…… 작년 추석 땐 고향의 큰 성님이 꼭 다녀가라는 지엄한 명령이 있었다. 할매는 멀미에 시차가 무섭다며 안 가겠다고 했다. 고향 가는 비행기에도 추적추적 내리는 빗속에 출발했다. 비는 해를 넘겨 달력 다섯장을 넘긴 후 에야 겨우 주춤거리는가 했더니 또 비다.

“이런 일기가 세상 천지 어디 있을 것이여? 도데체 무슨 경우여?”

무엇인가 크게 손해라도 본다는 듯 참을성 없이 핏대를 세운다. 많은 사람들이 이 곳을 구백 구십 구당 어쩌고 한다. 여름 날씨 하나만 보면 제법 달콤한 말이다. 그러나 농사꾼 눈에는 택도 없는 소리다. 여름엔 가물다 산불이 나지 않는가? 서둘러 오늘 비가 가을 볕을 가린다. 겨울로 이어지는 비는 늦은 봄까지 뿌리지 않는가? 그러니까 쓸 만한 여름철에 게으름을 떨었다간 한 해 농사를 완전히 망치는 격이 된다. 그런데도 힘 좋은 머슴 등에 업혀 볼 거리가 그득한 장터로 가는 아이같이 세월은 성큼성큼 신바람 나게 잘도 간다. 밴쿠버에 첫눈은 빚쟁이에게 쫓기듯 이리 밀리고 저리 비틀거리며 허둥지둥 빗속을 헤매다가 대충 성탄절을 전후해서 온다. 올해도 눈 소식이 풀풀 날아 들었으나 하늘은 회색으로 차여 있을 뿐이다. 귀덕할매는 아침부터 조바심을 낸다. 이른 저녁을 먹고 마당으로 나왔을 때 날은 이미 어두워졌다. 쓸데없이 구시렁거리다가 소금을 들고 차고 앞에서부터 뿌려 나갔다. 절반이나 뿌리고 허리를 펼 때였다. 앞집의 시커먼 나무 그늘 사이로 한가롭게 떨어지는 것이 있었다.

“아이고 눈이다! 눈이 오네!” 기다리던 첫눈은 손자라도 보는듯 함박 웃음 꽃을 핀다. 서둘러 소금 뿌리기를 마치고 안으로 들어 갔을 때 어지러운 뉴스 소리만이 집안에 가득했다.

“벌써 나간겨?” 젠 걸음으로 베란다로 나가는데 예사롭지 않은 노래 소리에 발걸음을 멈춘다.

“한 송이~~눈을 ~~봐도~~고향 눈 이요~~”

“아이고! 뭔 봉창 뜯는 소리랴?” 밖에는 눈 발이 어울려 하늘은 덮는다.

팔용씨는 술 취한 사람처럼 악을 쓰고 있었으나 노래 소리는 빠진 치아만큼이나 

귀 에 거슬렸다. 그럭저럭 한 자락을 매듭 지어 놓고 한숨을 쉬다 가는 훌쩍이고 있는 것이 아닌가?

“왜 또 귀뚜라미 소리를 넨디야?” 마음이 급해진 할매가 뛰어나간다.

“당신 고향생각 했씨유?”

“우린 이제 고향도 없이유. 온통 개발이 됐시유”

“그럼 애들 키우던 우리 집은요?”

“마을은 물론이고 용두리 갈산까지 아파트 바닦에 묻혀버렸네유”

할매가 몸을 던져 의자에 앉는다.”왜 진작 말 안했시유?”

“알면 어쩔 것이여?” 

그렇다. 알아봤자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 그러나 마음이 아프고 시린 것은 어쩔 수 없다. 처음 큰애가 한참 일 할 나이에 퇴직을 하고 실의에 빠져 있을 때였다. 조심스럽게 이민얘기를 끄집어 냈으나 영감은 한마디로 잘라 안된다고 했다. 할매는 악을 쓰며 난 죽어도 내 자식을 떠나선 못산다며 자식의 앞길을 막지 말라고 몸부림쳤다. 그 후 과수원이 남의 손에 넘어갈 땐 영감이 길게 울며 나팔을 불었다. 나팔소리는 귀뚜라미 소리가 되어 온 집안에서 구슬프게 흘러나왔다.

“울보 영감….!!” “울보 나팔…!!” 새로운 별호가 생겼다.

죄인처럼 머리를 늘어트리고 있던 팔용씨가 밀려오는 설움에 터지려는 울음을 힘겹게 삼킨다. 할매가 손을 뻗쳐 눈물을 닦아준다. 예전에 고집스럽게 당당했던 모습은 이미 아니다. 쓸모 없고 한없이 초라한 노인이 울고 있는 것이다. 그 모습은 아기의 울음보다 못 견디게 가슴을 저며온다 할매의 볼에서 눈물이 구른다.

“울보 영감 나팔을 불거레유?”

“안 되는 감?”

“그럼 일절만 해유. 그 다음은 내가 할라니께”

“당신은 울 일이 없잖여?”

잠시 멋쩍게 미적거리던 할매가 입을 뗀다.

“그럼 뭐 따로 국밥이라고 하지요 뭐”

“뭣이여? 그런 것도 있는가?” 

갑자기 튀어나온 그 한마디에 기가 찬 듯 곧 폭발하려는 울음을 덮고 허탈한 공소가 급하게 터진다.

“헛 허 허 허 허 허 ~~”

말을 해놓고 보니까 제법 웃을 만했다. 할매도 따라 웃는다 

“홋 호 호 호 호 호~~”

“핫 하 하 하 하 하~~”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노 부부는 숨겨두었던 나팔을 꺼내 들었다. 무덤 속 같은 어두움을 이고 쌍 나팔을 분다. 아마 눈 오는 날은 나팔 불기에 좋은 날인 것 같다.

 

사람의 길을 함부로 말 하지 마라 

가고 오고 멈추게 하는 이는 거룩하시다

어려운 길이라고 돌아서지 마라 

내 길이 아니라고 원망 하지마라 

몸 있고 마음 있으니 복되지 아니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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