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예정원] 어쩌다 보니 > LIFE

본문 바로가기
사이트 내 전체검색


LIFE

문학 | [문예정원] 어쩌다 보니

페이지 정보

작성자 권응경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20-03-06 09:01 조회1,538회 댓글0건

본문

9ed6c96002f5a13dd8b700ce8655ba72_1583514082_993.png권은경 / 캐나다 한국문협 회원 

 

우리의 삶에는 저마다 감당해야 할 책임, 갈등과 스트레스가 가득하다. 그러기에 만족스럽지 못한 현실과 타협하며 인내의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이루고 싶은 꿈에 대한 욕망이 파랑새라는 이름으로 자리 잡고 있다. 파랑새는 인간이 추구하는 행복으로 아직 이루지 못한 꿈일 수도 있고, 이미 우리의 삶 속에 자리 잡고 있으나 그 존재를 인식하지 못하는 것일 수도 있다. 세상살이가 점점 각박 해질수록 파랑새를 꿈꾸는 사람들은 늘어난다. 그러나 언제가 손에 넣을지 모를 행복만을 동경하며 지금 하는 일에 열정을 쏟지 못하는 사람들은 항상 불행하다. 어딘 가에 있을 것만 같은 파랑새는 언제나 자신과 멀리 있는 미래의 행복이기 때문이다. 행복의 진정한 의미를 깨닫지 못한 채 허황한 꿈 만을 이루려 한다면 동화 속에서처럼 우리가 찾는 파랑새는 손에 넣자 마자 색깔이 변하거나, 죽거나, 날아가 버려 끝내 취할 수 없는 신기루와 같은 것일지도 모른다.

 

도로를 꽉 매운 차들과 사람들로 가득한 토론토 다운타운. 그 한가운데에서 전기충격이 가해진 듯 과거에서 현재까지의 시간이 빛의 속도로 머릿속을 뚫고 지나갔다. 나고 자란 곳을 떠나 모든 것이 새로웠던 곳에서 무엇을 하며 살아갈지 막막하기만 했던 시간. 어느덧 그 시간도 흘러 나는 직업을 갖게 되었고, 회사에서 주관하는 교육을 받기 위해 도심의 빌딩 숲 사이에 서 있었다. 여전히 넘어야 할 산이 많이 있지만, 지금은 과거의 어느 시점에서 간절히 바라던 순간임이 분명했다. 그러나 미래의 꿈이었던 나의 파랑새는 틸틸과 미틸이 추억의 나라에서 가지고 나온 새처럼 소유하는 순간 새까맣게 죽어 버렸다. 성취의 기쁨을 느낄 틈도 없이 후회와 애탄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출퇴근하며 밟던 내 나라의 거리와 빠르게 돌아가던 바쁜 일상들, 마음 밑바닥까지 다 보여도 부끄럽지 않던 동료들과의 교제, 삼겹살에 소주잔을 기울이며 하루의 피로를 씻어내던 회식 자리… 때로는 벗어나고 싶은 감옥처럼 느껴지던 순간들이, 나를 이역만리 타국으로 밀어내었다고 생각되었던 고국에서의 보통의 삶이 그리움이 되어 돌아왔다. 그때는 미처 알지 못했지만 나는 행복했었다.

 

과연 행복이란 무엇이며 고통은 무엇에서 비롯되는 것일까? 늘 마음속에서 묻고 또 물었다. 그것은 고통 없이 행복하게 살고 싶은 인간 본연의 욕구였다. 그러나 추억의 나라에 한 발을 들여놓고 보니 그동안 간과했던 행복의 본질이 현상을 통해 투시 되어 나타났다. 현재에 만족하지 못한 채 미래에 더 큰 기쁨이 있다고 생각한 것은 큰 오산이었다. 훌륭한 궁전에 살면서 온갖 혜택을 다 누리고 있었는데 그걸 몰랐다. 부모님, 형제, 자매, 안락한 집, 친숙한 언어와 일상의 소소한 모든 것들이 나의 육체와 영혼을 풍성하게 채우고 있던 자양분이었다. 크게 자랑할 만한 것은 아닐지 몰라도 내 삶에는 봄 햇볕 못지않게 따스했던 순간들이 많이 있었다. 무심코 흘려보낸 추억들 속에 파랑새는 살고 있었다. 소중한 것들은 그것이 없다는 것을 가정할 때 그 가치가 매겨지듯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나의 지난날은 아름다웠다. 어쩌다 보니 나는 젊음을 담보로 미래의 행복에 베팅했고, 과거의 영광을 되새김질하며 여전히 멀리 있는 행복을 쫓고 있었다. 지난날에 대한 묵직한 성찰이 필요했다.

 

소외되기 쉬운 이방인의 삶은 인간은 본질적으로 고독하고 절망적인 상황에 부닥칠 수 있다는 것을 알려주었다. 그러나 되돌아보면 그 고독과 불안 속에도 자유와 기쁨이 있었다. 눈이 부시게 새하얀 눈꽃, 푸른 하늘, 새들의 지저귐, 노란 민들레… 자신의 존재를 과시하지 않는 소박한 것들을 통해 전해지는 만족감은 절망적인 인간의 실존 앞에서도 기쁘게 살게 하는 동력이고 신의 선물이었다. 행복이란 삶의 자리를 옮기는 것과 같이 외적인 환경에 의해 좌우되는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이미 소박한 삶 속에 존재하고 있었다. 단지 허망한 욕망을 꿈으로 여기며 오늘에 만족하지 못하는 인간의 마음속에서 잠시 멀어졌을 뿐이었다. 잠에서 깨어난 틸틸과 미틸이 파랑새를 향해 걸어가듯 오늘 누릴 수 있는 행복을 찾아 진한 커피 향이 풍기는 카페 안으로 들어갔다. 김이 모락모락 피어 오르는 커피를 받아 들고 연기 속으로 작은 날개를 퍼덕이며 날아오르는 파랑새의 환영을 보았다. 따뜻한 컵의 온기가 손끝에 전해지니 보일 듯 말 듯한 미소가 가느다랗게 입가에 어렸다.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플러스로 보내기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LIFE 목록

Total 1,126건 1 페이지
게시물 검색
회사소개 신문광고 & 온라인 광고: 604.544.5155 미디어킷 안내 개인정보처리방침 서비스이용약관 상단으로
주소 (Address) #338-4501 North Rd.Burnaby B.C V3N 4R7
Tel: 604 544 5155, E-mail: info@joongang.ca
Copyright © 밴쿠버 중앙일보 All rights reserved.
Developed by Vanple Netwroks Inc.
모바일 버전으로 보기